만델라 전 대통령의 "용서와 화해"로 무지개나라로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이 일자리와 주택·전기 부족 등 내부적 불만의 화살을 곧잘 외국인 이주자들에게 돌려 외국인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남아공에서 3번째 큰 도시인 더반에서 지난 10일을 전후해 이른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폭력사태가 벌어져 6명이 숨지고 외국인 상점들이 불에 타거나 약탈당했다.
이번 사태는 실업률이 높은 흑인 빈민지역에서 외국인 이주자들이 일자리와 사업을 빼앗아간다는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외국인들과 직접 관계없는 정치적·사회적 불만을 다른 아프리카 출신 이주자들을 통해 해소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
오고 있다.
◇ 재발한 외국인 혐오증…2008년 재판(再版)
지난 10일을 전후해 남아공 남동부 인도양 항구도시 더반에서 외국인 이주자들에 대한 집단 폭력사태가 발발, 에티오피아인 등 6명이 숨지고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약탈당하거나 불에 탔다.
더반 외곽에서 시작된 제노포비아 공격은 지난 14일 도심으로 번져 약 2천 명의 무장한 이주자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경찰이 성난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고무탄을 발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아공 텔레비전에서는 일부 이주자들과 지역 주민이 손도끼와 마체테(날이 넓고 긴 칼)를 휘두르는 섬짓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주요 공격 대상은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서 이주해온 상인들로, 1천여 명이 집을 나와 경찰 보호 아래 임시 캠프에서 지내야 했다.
콩고 출신 타시세 발로레(34)는 지난 10일 자신의 양념 가게에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시위대에 머리를 맞아 36바늘이나 꿰맸다.
그는 "그들이 와서 나를 죽이겠다고 말했다. 그들이 모든 것을 가져갔다"고 전했다.
브룬디 출신 압두라흐만 하키지마나는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자들이 산 채로 불에 타고 있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남아공에서는 2008년에도 일자리 부족 등에 분노한 주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면서 주로 아프리카 외국인 60여 명이 사망했으며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철폐 이후 처음으로 치안을 위해 군대가 동원됐다.
요하네스버그 비츠대학 교수와 학생 수백 명은 거리로 나와 제노포비아 반대행진을 벌였으며 제노포비아 반대 온라인 그룹 운영자 마이클 모스(17)는 "많은 사람들이 아파르트헤이트를 피해 도망친 남아공 사람들을 위해 문을 열어줬던 그들
에게 이런 일을 저지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고 밝혀 공감을 샀었다.
◇ 더반은 진정됐지만…완전 진화될까?
경찰력이 증강 배치된 더반은 16일부터 진정 기미를 보이고 있으나 제노포비아 불씨는 꺼지지 않고 남아공 최대도시인 요하네스버그로 옮아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태가 확산되자 제이콥 주마 남아공 대통령과 집권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외국인 철수를 주장하는 연설로 폭력시위를 촉발한 줄루족 왕 등이 뒤늦게 폭력시위 자제를 촉구하는 등 진화에 나섰으나 효과는 미지수다.
외국인 보호 시민단체 음쿠룰리 화이트는 "많은 외국인 이주자들이 사업자 등록을 하고 세금을 내며 우리 경제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 제노포비아 운동가들은 16일 더반에서 당국이 외국인 이주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것을 할 것을 촉구하는 평화행진을 벌였다.
이주자들을 자기 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해 이번 공격을 부채질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줄루족 지도자 굳윌 즈웰리티니 왕은 뒤늦게 제노포비아 공격을 비난하면서도 반 이주자 정서에 불을 붙인 것에 대한 책임을 부인했다.
툴라니 줄루 왕자는 즈웰리티니 왕을 대신해 "왕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로 슬퍼하고 있다.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계의 진화노력에도 16일 밤 요하네스버그 동부의 한 지역에서는 경찰이 날이 넓고 긴 칼로 무장한 아프리카 이주자 무리를 해산하기 위해 고무탄과 섬광수류탄을 쐈다고 로이터 통신이 17일 보도했다.
흑인 주민들의 공격을 받은 이주자 일부는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며 스스로 무장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맞서 수십 명의 주민 시위대가 몰려왔다가 경찰에 의해 해산되기도 했다.
◇ 겉으로는 "일자리"…실제로는 "화풀이 대상"?
공식 실업률이 25%에 달하는 남아공은 외국인 이주자들이 가난한 지역주민들의 일자리와 사업을 빼앗아간다고 불평하는 흑인 빈민지역 주민들에 의한 폭력과 약탈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짐바브웨·말라위·모잠비크 등 출신 흑인들은 노동의 질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해 남아공 흑인들이 일자리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또 이들은 남아공 흑인들에 비해 더럽고 힘든 소위 3D 직종도 마다하지 않아 5천여만 명의 남아공 전체 인구 가운데 외국인이 5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남아공에서는 최근 일자리와는 별도로 비위생적인 주거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서 온 흑인 이주자들이 "약방의 감초" 격으로 종종 희생양이 되고 있다.
정부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대한 분풀이를 만만한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남아공의 상황은 일반적인 외국인을 겨냥한 "제노포비아"가 아니라 아프리카 흑인을 타겟으로 한 "아프로포비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외신
료녕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