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약속이나 공언을 했으면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친구지간에 약속을 했다면 변함없이 지켜야 한다. 국가가 대국민 공언을 했어도 역시 가차없이 지켜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들뜬 공담이 휘오리치고 가짜가 살판치는 한심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수십년 동안 중국에서는 어딜 가나 벽에 써붙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자'란 구호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구호 아래서 '인민의 피를 빨아먹는' 행위가 자행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사람들은 극단적 '공산주의'에서 극단적 '이기주의'에로 흘러버렸다. 지켜야 할 규정이나 공약은 남의 몫이고 내 이익을 위해서는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이다. 규칙을 위반하는 행위가 너무 보편화되어 악성적인 문화를 형성했다고 까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실례로 교통규칙을 예로 들 수 있다. 내가 횡단보도를 건느려는데 빨간 신호등이 나왔다. 나는 멈춰서서 푸른등을 기다리려고 한다. 그런데 오가는 차량은 없다. 그러자 곁의 다른 보행자들은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차는 없는데 빨간신호등이다. 다른 사람들은 천연스럽게 길을 건넌다. 나는 어쩔까. 우두커니 서있는 내 자신이 너무 고지식해 보이고 어리석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서있었다. 얼굴이 간지럽다. 남들이 나를 보고 중뿔나게 군다고 비아냥거릴 것만 같았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낯이 간지러워지는 세상, 고정하고 어진 사람이 비아냥을 받아야 하는 세상. 바르지 못한 문화다. 성실한 사람이 대우를 못받는 세상은 비뚤어진 세상이다. 사람들이 규칙을 만드는 것은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내게 이익될 때만 지키고 남을 위해 내가 견뎌야 할 차례에는 나몰라라 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사람들 눈에 고지식하다고 보일 정도로 나 죽었소 하고 규칙을 지키는 것이 소중하다. 무조건 정직해야 한다. 무조건 어져야 한다. 나 죽었소 하고 규칙을 지키는 동안 남들은 규칙이 주는 혜택을 향유한다. 반대로 내가 규칙의 혜택을 보는 동안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죽었소 하고 규칙을 견디고 있을 수가 있다.
우리들은 신선도 아니고 성인도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사는 백성이다. 우리에게는 문제도 많고 결함도 많다. 한 사람이 하루 동안 하는 모든 일을 녹화해서 이튿날 보면 너무도 문제가 많고 심지어 역겹기까지 하다고 했다. 만일 한 사람이 하루종일 하는 모든 생각을 다 기록해서 읽어본다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진단다. 그래서 인간세상은 법이 필요하고 각종 규칙들이 필요하다. 규칙을 지키는 것이 곧 이세상의 정직을 지키는 것이요, 나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인내력을 가지고 꾸준히 지킬 것을 지킨다.
무조건 지키고 본다. 이렇게 열심히 지키다보면 내 마음이 습관된다. 그 습관에 길들고보면 내가 이 세상을 위해 뭔가를 책임진다는 그런 자긍심이 생길 수도 있다. 텅 빈 대통로에서 빨간등을 바라보며 횡단보도에서 묵묵히 서있는 내 자신이 더는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소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일종 경지이다. '죄'가 많은 우리 인간들이 '천당에서의 기분'을 체험할 수 있는 소지가 될 것이다.
그럴진대 왜 규칙준수를 마다할 수 있겠는가. 평범한 인간이 행복으로 가는 데는 많은 규칙들이 있다. 한가지 규칙을 지킴으로 당신은 한단계 더 성실해지고 더 착해진다. 이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이 많아야 좋은 것이다. 악한 사람이 악을 떠나 착해지고 착한 사람들은 갈수록 더 고상해지는 세상이 우리들의 환상이다. 이렇게 착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어떤 규칙들은 철폐시켜도 무방해질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오늘 규칙을 지키는 것은 앞으로 모든 규칙을 없애도 무방할 이상사회로 가기 위해서다. 규칙은 나 죽었소 하고 지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