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다섯 감독이 뭉쳤다. 아파트에 단 둘이 남겨진 오누이의 공포(정범식 감독 '해와 달'), 항공기 안의 유혈낭자(임대웅 감독 '공포 비행기'), 전래 동화의 현대판 잔혹 버전(홍지영 감독 '콩쥐, 팥쥐'), 한국판 좀비 영화(김곡 김선 감독 '앰뷸런스')까지 총 4편의 이야기가 영화 '무서운 이야기'에 담겼다. 19일 문을 여는 1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자 26일 개봉하는 이 영화의 다섯 감독을 17일 만났다.
'무서운 이야기'는 2009년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를 제작한 데이지엔터테인먼트가 공포영화 연출 경험이 있는 감독들에게 연출을 의뢰해 만든 작품이다. 다섯 감독 중 유일하게 호러 연출 경험이 없는 홍지영 감독은 "다음 작품으로 공포영화를 준비하던 중이어서 주저 없이 참여했다"고 했다. 홍 감독의 남편이자 최근 '내 아내의 모든 것'을 흥행시킨 민규동 감독이 영화의 앞뒤, 네 에피소드의 연결 부분을 맡았다.
네 개 에피소드의 제작에 든 총비용은 고작 8억원. '공포 비행기'를 연출한 임 감독은 "돈을 안 받고 도와준 분들이 많아서 실제 제작비는 그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공포영화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여러 항공사로부터 거절당한 뒤 대구의 한 영어마을에서 쓰고 있던 폐비행기를 빌려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해와 달'의 촬영에 쓰인 아파트 중 하나도 배우 남성진 김지영 부부의 것이다. 정 감독이 대학 동창 남성진으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인데, 김지영은 우연찮게 김곡 김선 형제 감독의 '앰뷸런스'에 출연했다.
판타스틱영화제의 개막작답게 네 영화는 현실에서 겪기 힘든 독특한 소재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해와 달'은 정 감독이 유년 시절의 악몽과 환상을 뒤섞어 만든 밀실 공포극이고, '공포 비행기'는 임 감독이 승무원들 사이의 괴담에서 힌트를 얻은 유혈 낭자 호러다. 홍 감독은 "'콩쥐팥쥐전'의 여러 버전 중 하나에 팥쥐를 인육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착안했다"고 밝혔다.
좀비 호러 '앰뷸런스'는 소재 면에서 가장 이색적이다. 김곡 감독은 "여러 아이템 중 옴니버스에도 어울리고 가장 극장에 잘 걸릴 만한 것을 찾다 보니 좀비물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두 감독은 제작비가 부족해 특수분장과 컴퓨터그래픽, 군중 신에 출연한 단역배우를 쓰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김선 감독은 "스태프들이 의류 재활용함을 뒤져 찾은 옷을 입고 직접 시체로 출연했다"며 웃었다.
인터뷰가 무르익자 다섯 감독은 공포영화에 대한 예찬을 펼쳐 보였다. 보는 것보다 만드는 것이 좋다는 정 감독은 "어른이 돼서도 영화를 통해 어린 시절의 장난을 칠 수 있고 사회적 은유도 마음껏 할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가장 영화적인 장르"라는 홍 감독의 말에 맞장구를 친 김곡 감독은 공포영화 연출을 "일종의 대결"이라고 했다. "누가 이기나 대결하는 것 같아요. 관객은 '얼마나 무섭게 하나 보자' 하고 극장에 오고, 감독은 그런 관객을 무섭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