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문화/생활 > 문학/도서
  • 작게
  • 원본
  • 크게

[책읽는 룡고인 4] 선녀와 나무군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9.05.31일 13:57



리경

어려서부터 익숙히 들어온 전래 동화 중 하나다. 

유래는 중국의 견우직녀전이라는 얘기도 있고 일제시대 일본의 어느 이야기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설도 있지만 이야기의 기본 맥락에는 변함이 없다. 

줄거리를 간단히 적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옛날 어느 산골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나무군이 있었다. 

어느 날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사냥군에게 쫓기는 꽃사슴 한 마리를 구해준다. 그 꽃사슴은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나무군에게 하늘나라의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하는 곳을 알려준다. 

선녀들이 목욕하는 곳이 어디이며 그중 한 명의 날개옷을 숨기면 그 선녀를 안해로 맞을 수 있다는 것과, 선녀와 백년해로 하기 위해서는 선녀가 아이를 넷 낳을 때까지 날개옷을 돌려줘서는 안된다는 것까지 자세히 알려준다.

나무군은 꽃사슴이 가르쳐 준 대로 한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그 선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아이도 낳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허나 선녀는 하늘나라를 그리워했고 그런 선녀가 안쓰러워 나무꾼은 애 셋을 낳았을 때 날개옷을 돌려준다. 그냥 날개옷 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고 선녀가 애원했기 때문이다.

허나 선녀는 날개옷을 입고 애 셋을 데리고 훨훨 날아 하늘로 가버렸다. 한 명은 등에 업고 두 명은 량팔에 한명씩 안은 채 말이다. 

하루아침에 안해와 세 자식을 다 잃어버린 나무군은 날마다 슬피 울었고 사슴이 다시 나타나 하늘나라에 가서 아내와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수년 전 선녀폭포에서 선녀납치사건이 생긴 이후로 선녀들은 다시는 내려오지 않았고 목욕물은 나무통을 내려 보내 길어다 쓰게 되였는데 그 때를 기다려 나무통을 타고 올라가면 된다는 것이다. 뭔 놈의 사슴이 이렇게 많은 고급정보를 알고 있는 거지?

나무군은 이른 아침 말을 타고 선녀폭포로 떠날 준비를 했고 그의 홀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뜨거운 팥죽을 건네주며 먹고 나서 출발하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죽을 받아먹던 나무꾼은 실수로 뜨거운 죽을 말 등에 흘렸고 말은 놀라서 뛰어올라 나무군을 땅에 내 팽개쳤다. 나무군은 그렇게 죽었고 환생해서 수탉이 되어 하늘을 쳐다보며 울게 되였다고 한다. 



어릴 적 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약간 리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납득을 했었고 좀 더 성장한 다음에는 머리속에 저장되여 있는 이야기 중 하나일 뿐 다시 꺼내 사고해본 적은 없었다.

애가 생기고 나서 이야기책을 읽어주려고 준비하던 중 다시 마주하게 된 기억 속 먼지투성이 이야기, 무심코 기억해낸 이야기 속 숨겨진 내용들이 갑자기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건… 내가 알고 있던 애절한 사랑이야기가 아니였다. 스토킹, 랍치, 강제 혼인, 강제 출산, 사기 등 암흑스토리에 필요한 요소를 두루 갖춘 호러였다. 

한낱 꽃사슴이 선녀들이 비밀스럽게 하계하여 목욕하는 곳을 알지를 않나, 그가 알려준 공략 또한 지극히 치밀하고 철저한 랍치, 감금, 강제혼인의 방법이 아닌가? 

나무군은 선녀의 날개옷을 감춰 선녀가 탈출하는 길을 막았고, 랍치해 집으로 데려가 강제로 혼인을 한다. 아이를 낳으면 차마 아이를 버리고 떠날 수 없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선녀가 아이 셋을 낳을 동안 아무리 애원해도 날개옷을 돌려주지 않는다. 

선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건 악몽과도 같은 끔찍한 범죄였고, 그녀가 이곳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법도 나무군이 장악한 상태다. 

어쩔 수 없이 애를 세명 낳으니 나무군은 그제서야 약간 안도를 했고 이렇게 오랜 세월 같이 살았으니 설마 날 버리고 떠나지는 않겠지 하는 요행심리에 날개옷을 꺼내 보여준다. 

만약 그가 꽃사슴이 일러준 대로 했더라면 선녀는 진짜 날개옷을 돌려받더라도 하늘나라로 돌아가지 못했을 수 있다. 애 네 명을 한꺼번에 데리고 떠날 방법은 없으니까, 그 위대하다는 모성애가 이렇게 발목을 잡는다.

다행히 선녀는 세 아이와 함께 나무군의 집을 떠났고, 나무군은 또 다시 혼자 홀어머니를 돌보면서 지내게 된다. 그러나 이미 한번 행복을 맛본 그가 예전의 생활상태에 만족할 수는 없었고, 다시 사슴을 찾아 해결할 방도를 찾는다. 

이 놈의 사슴은 심지어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해결책까지도 알고 있었다. 대체 정체가 무엇이냐?!

사슴이 일러준 대로 가족 상봉하러 떠나는 길에 이제까지 존재감 제로이던 홀어머니가 갑자기 뜨거운 팥죽을 들고 나타난다. 

아들 배고플까 봐 이른 아침에 죽을 쑤어 낸 엄마의 지극한 사랑이 잘 보여지는 대목인 줄 알았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또다른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자, 이제 홀어머니 입장에 서서 이 이야기를 다시 훑어보자면 이렇다. 

내 입 하나 풀칠하기 바쁜 우리집 살림에 남정네도 없으니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장가보내기는 다 글렀다.  

그런데 이 아들놈이 무슨 복이 터졌는지 갑자기 예쁘디 예쁜 선녀를 데려가 혼인을 하겠다네? 그것도 공짜로? 

이런 횡재가 어디 있나? 기뻐 죽겠네. 

나도 이제야 시어미 노릇 좀 해 보겠네. 

불 때고 밥 짓고 하는 힘든 집안 살림 다 며느리한테 맡기고 나는 편히 쉬여야지. 아들놈이 이제야 효도를 제대로 하는구먼.

오호라…애까지 잘 낳네? 우리 형편에 손주는 꿈도 못 꿨는데. 이제는 세상 부러울 게 없단 말이야. 호호호

.....

아이쿠야, 이놈의 며느리가 그동안 먹여주고 재워준 은정도 모르고 남정네 버리고 하늘로 도망쳤네!

내 금쪽같은 손주 셋 다 끼고 도망쳤네! 이걸 어찌 한다는 말인가!

다 저 못난 아들놈이 그년 여우짓에 홀려 날개옷을 내준 탓이야, 사슴이 일러준 대로 애를 하나 더 낳은 담에 돌려줬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을!

이제 또 내가 불 때고 밥하고 설겆이하고 빨래하고 다 해야겠네! 아이고, 이 늙은 에미 뼈가 다 빠지겠네!

......

옳거니, 사슴이 또 방법을 대주는구나, 어여 아들놈이 가서 그 년과 내 손주들을 잡아와야 할텐데.  

아… 잠간만,

그런데 이놈이 혹시 하늘 나라에 갔다가 아예 거기서 살림을 차리면 나는 어떡하나? 이 늙은 로모는 여기 남아서 혼자 굶어 죽으란 얘기인가?!  

절대 그렇게 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며느리가 없어도 아들만 곁에 있으면 적어도 굶어 죽지는 않겠지, 손주놈들이 보고 싶긴 해도 내 목숨만큼이야 소중할가? 

그래, 어떻든 내일 아들놈이 그 폭포로 가는 걸 막아야 해, 

그런데 어떻게 막지?

......

말에서 떨어져 다리라도 부러지면 당분간 떠날 생각은 못하겠지?

이상 나무군의 홀어머니 립장에서 다시 각색해본 이야기이다. 

불편하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전개 아닌가? 

내가 쓰면서도 오싹해 난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의 결말은 그야말로 신나는 해피엔딩이다.  

수년간 감금당해서 갖은 고난을 겪은 선녀는 끝내 탈출에 성공했고, 범죄자 가족은 응징을 받는 그런 이야기이다.

헌데 그 꽃사슴의 정체가 너무 마음에 걸린다. 혹 선녀에게 앙심을 품은 신선이라든지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재작년에 애독했던 웹툰 ‘계룡선녀전’에서도 사슴의 정체가 서브 남주일 정도로 중요한 단서임을 립증했다.

아… 그리고 선녀의 친정은 대체 뭐지? 소중한 딸내미가 랍치당해 애까지 셋이나 낳아 기르는 동안 하늘나라 옥황상제는 나무통으로 목욕물을 받았다 나머지 딸들 목욕시키고 앉았네? 딸이 아닌가? 딸이 아니라 해도 분명 선녀는 천상계 어느 부문에 소속되여 있었을 진대 그의 상사든 동료 그 누구도 구하러 오지 않았잖은가? 신통방통한 신선들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해결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아이 셋 낳아 길렀다는 건 자그만치 오륙년은 지났다는 얘기인데...

선녀는 천계로 돌아가서 다시 그곳에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홀몸도 아니고 하찮은 인간의 아이 셋까지 딸린 몸인데. 

랍치당해도 꿈쩍도 안하던 신선들이 돌아왔다고 받아줄까? 

인간세상의 인간성으로 미루어 보면 그들은 선녀가 천계의 명성을 어지럽혔다는 명의로 내칠 가능성이 크다. 다시 인간계로 내쫓기거나, 천계에 남는다 해도 갖은 수모와 모욕을 밥 먹듯이 당해야 할 것이다.   

말하다 보니 선녀의 처지가 시집간 녀인네 처지랑 똑같다. 시집을 가고 나면 친정집 사람도 아니요, 시집 사람도 아닌 그런 애 낳고 집안일 하고 남편 대신 시집 어른에게 효도하는 몸종으로 한평생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작년 칠월칠석에 누군가 공유한 글에서 이 이야기를 현실사회에 대입해 보면 분명 귀족집 녀식이 놀러 나갔다가 인신매매를 당해 가난한 산골에 팔려가 갖은 고난을 당하다 탈출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완전 가능한 일이다. 지금까지도 길가는 여인들을 랍치해 농촌에 가져다 파는 인신매매범들이 창궐하지 않은가? 

이 이야기를 계기로 나는 지난 삼십년동안 당연한 걸로 알고 있던 전래동화의 내용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가 아름답게 포장해서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던 그림동화 역시 원본은 보는 이가 절망할 만큼 냉혹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암흑동화이지 않은가?

앞으로 더 많은 이야기들을 지금의 나의 립장과 시각으로 다시 정리해 봐야겠다. 

/리경(룡정고중 독서회〈책 읽는 룡고인〉)

애엄마, 그리고 30대 중반에야 사춘기를 겪고있는 아줌마

 

[독서회 소개]

2016년 10월 설립된‘룡정고중 독서회’는 룡정고중동창회 쟝쩌후(江浙沪)분회 산하의 동호회로서 ‘룡고인’(龙高人)의 다채로운 문화생활과 풍부한 독서를 실천하고저 이루어졌다.

설립된 이래 이 독서회에서는 매달 한번의 오프라인 정기 모임을 가지고 룡고 내부와 외부 강사를 모시고 읽었던 책 혹은 지식점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해오고 있다. 둥둥  떠있는 독서가 아니라 현실과 생활에 밀착된 유용한 독서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프라인 독서회 외 온라인에서도 현재 읽고 있는 책, 생활에서의 생각을 공유하여 활발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 모임에서는 ‘독서’라는 매개물을 통해 서로를 좀 더 알아가는 유익한 장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모임 외 룡정고중 독서회에서 2년째 견지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독후감 쓰기다. 책을 그냥 휙 읽고 지나가는 독서가 아니라 책을 읽은 뒤 그 자리에 멈춰 정리해보는 시간, 내 자신을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한편 2018년 11월에는 대본, 연출, 출연진 전부가 룡고인으로 구성된 연극을 공연하여 상해 여러 독서회들과 문화 교류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10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10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범죄도시 4' 개봉 4일째 200만 관객…올 개봉작 최단 기간[연합뉴스] 마동석 주연의 액션 영화 '범죄도시 4'가 개봉 4일째인 27일 누적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배급사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가 27일 밝혔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올해 개봉한 전체 영화 가운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빙설의 꿈, 하나로 잇는 아시아'... 2024년 할빈시조선족중소학생 랑독대회 개최

'빙설의 꿈, 하나로 잇는 아시아'... 2024년 할빈시조선족중소학생 랑독대회 개최

도리조선족학교 초중부 김가영, 소학부 하의연 학생 특등상 아성조중 두사기, 오상시조선족실험소학교 강봉혁 학생 1등상 2025년 제9차동계아시안게임과 할빈빙설문화의 풍채 및 2024년 세계독서의 날을 맞아 최근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할빈시교육연구원민족교연부,

중국 의학계, 인재 육성∙AI 접목한 교육 강화에 박차

중국 의학계, 인재 육성∙AI 접목한 교육 강화에 박차

"현대의학은 단일 질병에서 동반 질환으로, 질병에 대한 관심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즉각적 효과에서 장기적 효과로, 개체에서 단체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의료 업무는 '질병 치료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더 나아가 '사람과 인류 중심'으로 전환돼야 합니다.

중국 로동절 련휴 겨냥, 소비 진작 위한 다양한 활동 전개

중국 로동절 련휴 겨냥, 소비 진작 위한 다양한 활동 전개

지난 21일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正定)현의 한 야시장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을 드론 사진에 담았다. (사진/신화통신) 중국 정부가 로동절(5월 1일) 련휴를 앞두고 소비 진작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하아동(何亞東) 중국 상무부 대변인은 25일 상무부 정례브리핑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