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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기발은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9.17일 14:04
-공군 락하산병 ‘황계광련’을 찾아서



 

공군 락하산병 모 부대는 “황계광의 영웅 혈맥을 이어 황계광 영웅의 계승자가 되자”를 인재 육성의 중요한 내용으로 삼고 장병들을 인도해 영웅 정신에서 동력을 섭취하며 봉헌하고 감당하고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사진은 이 부대 장병들이 락하 훈련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류치흠 촬영

항미원조전쟁에서 중국인민지원군 전사 2명이 ‘특급전투영웅’칭호를 받았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바로 황계광이다. 68년 전, 세계가 주목한 상감령 전역에서 21세 나이의 황계광은 ‘가슴으로 기관총구를 막는’영웅적 장거로 중국 군인의 전투적 기개를 보여줌으로써 인민군대의 휘황한 사책에 영원히 기록되였다.

순간은 영원을 만들어냈다. 황계광이 생전에 소속되였던 부대인 락하병 모 부대의 한세대 한세대의 장병들은 시종 ‘조국에 충성하고 영용하고 완강하며 용감히 중임을 떠메고 대담히 희생’하는 황계광 정신을 전승해 상감령 영웅 전투기발을 높이 휘날리며 앞다투어 황계광 영웅 계승자로 되고 있다.

이야기 하나

“전공을 세우지 못하면 전장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중국 락하산병, 필승!” 쩌렁쩌렁 울리는 선서 소리는 격정으로 끓어넘쳤다. 8월 하순의 어느 날, 락하산병 군력사관에 있는 5메터 높이의 황계광 동상은 또 한번 영웅의 계승자들의 피끓는 출정을 견증했다.

이 동상은 영웅이 적의 총아구리를 덮치는 순간을 살아움직이듯이 생생히 보여주면서 응고된 언어로 세인들에게 중국 군인의 기개란 어떤 것인가를 진술하고 있다.

사책에 기록된 상감령 전역, 세계 군사사상 보기 드물게 장렬했던 이 전역은 지금도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3.7평방키로메터 밖에 안되는 진지 우에‘유엔군'이 발사한 포탄 190여만발, 작탄 5000여매가 투척되면서 옹근 산봉우리가 2메터나 깎여나갔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지원군 부대는 갱도에서 《한 보통병사》란 영화를 방영했다. 영화에서 마뜨로 쏘브가 자기 몸을 날려 총구를 막는 영웅적 장거는 황계광을 깊이 감염시켰다.

“마뜨로 쏘브는 참 대단해! 관건 시각이면 나도 그처럼 할 것이야.” 황계광은 이렇게 말했고 또 전장에서 정말로 이렇게 행동했다.

1952년 10월 19일 밤, 지원군은 련속 몇시간의 격전을 벌이며 5차의 돌격을 들이댔으나 ‘0호’진지의 적들은 십여정의 기관총을 집중해 사격하며 최후발악을 했다. 많은 지원군 전사들이 장렬하게 희생되였다. 이때 황계광이 탄원해 나섰다. 자기가 가서 적의 화력점을 폭파해버리련다고. 적진을 향해 달려나간 황계광은 일곱 곳에 부상을 입고 탄약마저 다 써버린 상황에서도 완강하게 화력점을 향해 포복 전진했다. 또치까에 접근함과 동시에 몸을 솟구치며 일어난 그는 두 팔을 벌리며 적의 기관총 아구리를 향해 덮쳤다. 그는 자기의 가슴으로 불을 토하고 있는 적의 총아구리를 단단히 막은 것이였다. 황계광의 장렬한 최후는 전사들을 격려했다. 부대는 신속히 진지를 점령하고 적들을 전멸했다. 전투는 승리했다.

상감령 전역에서 미군 비행기 3대를 쏘아 떨군 올해 86세 나는 로영웅 가여공은 전투영웅 황계광의 최후를 회억하면서 목메인 소리로 이렇게 감개했다. “총알이 박힌 그의 가슴은 벌둥지처럼 되여있었고 지어 등뒤까지 뚫려나갔었다… 황계광의 희생은 우리들 최후의 승리를 위한 것이였다. 그는 특급영웅에 손색없다.”

황계광이 희생된 후 그의 소속 부대에서는 그를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추인했다. 중국인민지원군 지도기관에서는 그에게 특등공을 기입해주고 ‘특급영웅’칭호를 수여했다. 그는 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와 금성상장, 일급국기훈장을 수여받았다.

영웅이 우리를 떠난 지도 어언 68년이 되였다.‘황계광련'의 장병들은 대대로 이 영광스런 전통으로 령혼을 응집하고 사기를 북돋우며 영웅 정신이 혈맥 속에 깊이 융입되도록 해왔다. 이들은 98홍수 방지 구조, 지진재해 구조, 중로 련합 군사연습, 수도 국경 열병 등 30여가지 중대한 임무를 원만히 완수하면서 1등공 4차, 2등공 12차, 3등공 21차를 세웠으며 공군으로부터 ‘락하병 모범 6련', ‘홍수방지 최전선 선봉련', ‘황계광 영웅련’등 영예칭호를 수여받았다. 2013년 8월, 습주석은 명령에 서명하고 이 련에 ‘모범락하병련’영예칭호를 수여했다.

이야기 둘

‘황계광련’영예실에는 황계광 반신 동상이 진렬되여있는데 높이 34센치메터, 너비 32센치메터이다. 새 간부가 오고 신병이 입대해올 적마다 먼저 이 영예실에 와 ‘뿌리를 찾아 령혼을 주조하는 첫 수업’을 치른다. 즉 영예실을 참관하며 황계광 동상과 합영을 하고 련의‘족보'에 서명하고 〈특급영웅 황계광의 노래〉를 배우며 영화 《상감령》을 관람하고 회억대비 찬을 먹는다. 이처럼 장병들이 처음부터 영웅의 락인을 깊이 새기도록 한다.

항미원조전쟁 승리 후 황계광이 생전에 소속되였던 6반은 국방부로부터 ‘황계광반'으로 명명되였다. “6반 반장이 조정될 때마다 우리는 장중한 교대의식을 진행한다.”‘황계광련’제38임 지도원 오건이 하는 말이다. 68년래 ‘황계광반'의 전사들은 한번 또 한번 바뀌고 반장도 지금껏 제39임으로 이어오고 있지만 6반은 시종 아래와 같은 전통만은 꼭 유지해오고 있다. 반에는 황계광의 침대가 있는데 매일 저녁 반장이 자리를 펴고 다음날 아침에 다시 잘 개여놓는다. 부대가 나가 야영 훈련을 하거나 중대한 임무를 집행할 때면 전문인원을 지정해 황계광의 배낭을 메고 떠난다. “영웅은 늘 우리와 함께한다. 이는 정신의 계속이며 또한 사명에 대한 책임이다.” 오건 지도원이 하는 말이다.

“편지를 써 황계광에게 부친다. 우리들의 맹세를 전한다. 우리도 그처럼 군인의 앞가슴을 당당히 내밀었다고…” 8월 말, 락하산 부대는 ‘장엄한 70년, 군가 하늘가에 울려퍼진다'는 노래 경연을 거행하며 이 부대 건립 70돐을 기념했다. 〈황계광에게 편지를 쓰네〉란 익숙한 선률이 울려퍼질 때마다 장병들 마음속 자부감도 따라서 재차 물결쳐오른다. 이 노래는 전 군 제9회 전사 문예상 1등상을 받았었다. 감동적인 선률에 격앙된 노래소리는 너도나도 영웅의 계승자로 되려는 장병들 마음의 소리를 전하고 있다.

“황계광의 영웅 혈맥을 이어받아 황계광 영웅의 계승자가 되자.” 이는 시종 이 부대가 령혼을 주조하고 인재를 육성하는 중요한 내용으로 되여왔다. 이들은 전투영웅을 부대에 요청해 전통을 이야기하는 것을 통해 《홍색기억-군사문물 배후의 이야기》란 책을 펴냈고 ‘전투력사를 배우고 전투장령을 회억하며 전투실례를 평가하며 영웅이 되자',‘나와 영웅의 이야기’등 활동을 조직 전개하는 것으로 장병들이 영웅의 불후의 공훈을 새기도록 하고 실제행동으로 영웅의 혈맥을 전승하도록 해왔다.

“황계광의 영웅정신을 발양해 홍수와 끝까지 싸워이길 것을 맹세한다!” 금년 장강 중하류 지역의 홍수방지 재해구조에서 이 부대 장병들은 ‘황계광영웅련'의 전투기발을 언제의 가장 험요한 곳에 꽂아놓고 언제를 보강하고 위험을 제거하는 최전선에서 싸웠다. 이들은 29시간을 련속 분전하며 모래주머니 5만 7600여개를 날라다 펴 언제가 터질 위험을 철저히 제거했으며 황계광 영웅 정신에도 새로운 시대적 내함을 부여했다.

“몇십년래 우리 부대에서는 황계광을 대표로 한 1만 3000여명 공신 모범과 상감령 특등공 8련을 대표로 한 181개 영웅 집체가 용솟음쳐나왔다.” 부대의 영웅 력사를 떠올리는 이 부대 신문네트워크실의 책임자의 말에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자부감이 묻어났다.

‘인터넷상감령'을 수호하고저 근년래 이 부대는 영웅의 이야기를 인터넷에로, 스크린에로 옮겨왔다. 이들은 〈진정한 사내대장부〉,〈우리는 영웅과 함께-인터넷 명인 군영에로〉등 텔레비죤 종목 제작에 참여했고 시리즈 미니 영화〈영웅정신 선양하며 다투어 영웅의 계승자 되자〉를 제작했으며 동영상〈영광을 갈망하며〉를 창작했다. 또한 ‘우리네 하늘’이란 뉴미디어 플래트홈을 령활하게 운용해 틱톡 등 인터넷 매체에 〈나의 ‘슈퍼영웅’에 경례〉이란 전문란을 내오고 〈영원히 아로새긴 황계광〉, 〈락하용사 15명〉, 〈렬화영웅 리도주〉 등 감동적인 군대 력사 이야기를 올리고 부대 내지 전사회적으로 영웅을 숭상하고 다투어 영웅이 되려는 량호한 분위기를 끊임없이 형성했다.

이야기 셋

금년 5월,‘황계광련'은 신형의 륜식 장갑차를 갖추면서 련대 건설의 새 편장을 열었다. 력사적으로 이들은 여러차의 중대한 시험훈련 임무를 담당해 원만히 완수하면서 많은 것들을 견증해왔다. 즉 락하산병이 ‘락하산 한폭에 보총 한자루'의 공중보병으로부터 공중과 지면의 일체화, 모듈 작전의‘전략 첨단'에로 전변하는 전 과정을 견증했다. 이 배후에는 이 부대 장병들의 “영웅의 부대에는 졸병이 없다, 황계광의 계승자는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박하면서도 견정한 정신에 대한 공동한 인식이 뒤받침하고 있는 것이였다.

2005년,‘평화의 사명-2005’중로 공동 군사연습에서 이들은 합성풍속 20메터/초의 공중 합성풍, 11메터/초의 지면풍, 가시도가 300메터 이내인 렬악한 날씨에도 필승의 신념을 안고 추호의 두려움도 없이 결연히 비행기에서 뛰여내렸다. 착륙시 많은 이들이 강풍에 휘말리고 넘어져 상하고 했다.‘황계광반’반장 팽강림은 발목을 접질렀다.

“영웅의 련대에는 영웅 병사들 뿐이다.‘황계광반’반장으로서 긴요한 관두에 반드시 앞장설 수 있어야 한다.” 팽강림은 가까스로 아픔을 견디며 백메터 라스트 속도로 전사들을 이끌고 돌격했다. 이 장면은 로씨야 국방부장 이완노브를 감동시켰다. 연습이 끝난 후 그는 직접 영예훈장을 팽강림의 가슴에 달아주고는 엄지를 치켜들며 “중국 군인은 대단합니다.”라고 치하했다.

‘목숨 바쳐 국난에 림하며 죽음을 초개같이 여기노라'. 황계광이 전장에서 강한 적을 마주하고도 추호의 위축감이 없었던 담력과 기백은 세월의 세례를 거치며 날로 더 사람을 분발시키는 정신적 위력을 발산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 5월 12일, 문천 대지진에서 지진 중심의 문천, 모현 등지가 ‘고도'로 되면서 몇십만 군중들의 생사가 묘연해졌다. 5월 14일 오전 11시 47분, 15명 락하산병으로 구성된 선견 소분대가 기상자료도 없고 지면 표식도 없고 지휘 인도도 없는 ‘3무’조건에서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5000메터 고공에서 모현 지역을 향해 ‘맹인 락하'를 했다.

“당과 인민이 가장 수요할 때 황계광의 계승자들로서 미룰 수 없는 책임이였고 응당한 것이였다.” 집이 사천 덕양 엄중한 재해구에 있는 인도대 반장 임도는 임무 수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지진으로 할머니가 사망되고 장모가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그는 비통을 가슴 속 깊이 묻고 가장 무겁고 가장 어렵고 가장 위험한 정찰 임무를 떠메고 나섰다.

70년 전, 황계광을 대표로 하는 열혈 남아들은 국문을 나서 단연 총칼을 번득이며 가장 강대한 적수에게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주었었다. 한 군대오의 사기가 전투력 중에서 어떻게 선진적인 무기 장비로도 영원히 대체할 수 없고 계산할 수 없는 기의한 변수로 되는가를. 시대는 변하고 있지만 정신은 영원한 것이다. 영웅의 전투기발은 영원히 퇴색하지 않는다. “조국에 충성하고 영용 완강하고 용감히 중임을 떠메고 대담히 희생하는” 영웅 혈맥은 오늘도 여전히 황계광 계승자들의 몸에서 굽이치고 있다.

2015년,‘금매’국제 특종 정찰병 무예시합에 이미 나이 서른인 ‘뢰신돌격대’대장 사건강이 대오를 이끌고 출정했다. 요추간판돌출병이 있는 그는 의사로부터 고강도의 훈련을 정지하라는 권고를 받은 터였다. 그러나 그는 매일 치료를 마치고는 고약을 붙이고 허리보호대를 띠고 훈련을 견지했다. 시합하는 날 그들은 섭씨 40도 기온에서 30키로그람의 부하로 30키로메터 거리를 침투 행군해야 했다.

시합 도중, 한 가파로운 비탈을 지나다가 부주의로 넘어진 그는 4메터나 미끄러져 나가면서 여러 곳이 돌에 맞혀 상하고 부어오르고 피가 흘렀다. 그래도 그는 시종 이를 악물고 견지했다. “황계광은 우리 마음속의 영원한 ‘전투신’이다. 당년에 로반장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자신을 희생했다. 오늘 우리는 국제시합에서 외국군대와 겨뤄야 하는데 마찬가지로 물러설 수 없다.” 최종, 그는 팀을 이끌고 탄탄한 실력과 뛰여난 군사기능을 바탕으로 5일 낮, 4일 밤의 격렬한 대항 끝에 11개 과목 중 8개 제1을 쟁취함으로써 절대적인 우세로 단체 일등을 안아왔다.

“황계광!” “옛! 옛! 옛!”  취재를 마칠 무렵 마침 련대에서는 저녁 호명이 진행되고 있었다. ‘황계광련’ 전 련 백여명 장병들이 일제히 대답하는 “옛” 소리가 또 한번 저 멀리 하늘가에로 멀리 울려퍼져갔다.

/래원: CCTV-군사, 해방군보

https://military.cctv.com/2020/09/10/ARTIHwJoVcr5Fq9U0Eobdgww200910.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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