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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조선족 기업가 주홍철씨, "기업은 전략과 운을 떠날 수 없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11.27일 14:05
  종말이 묘연한 코로나19로 인해 움추리는 기업과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이 적지 않은 중, 지금이 바로 기업전략을 세우는 시기라며 그 도미노사태를 피하고 있는 기업인이 있어 만나보았다.

  그가 바로 현재 일본 관공서, 은행, 병원, 기업 등을 위해 프로그램 개발, 임베디드 시스템(嵌入式系统)개발, WEB・서버・데이터베이스 계렬설계와 개발, 시스템 구축, 변경, 개선을 맡아 해주는 K&K소프트주식회사의 대표 주홍철이였다.



  그가 젊은 시절에 꾸었던 꿈은 의외로 작전가, 지휘관이였다.

  룡정시 백금향 출신인 주홍철은 룡정고급중학교를 졸업한 후 대련륙군학원 군사지휘전업에서 4년간 전투지휘능력 함양을 위한 전문교육을 받았다. 국가가 부르면 실제 전방에 나가 몸바쳐 싸우려는 오래 된 꿈을 가졌던 그는 대학졸업후 룡정수십사(守十师) 28퇀, 훈춘변방부대에서 평화시기의 장교시절을 보내다가 제대하게 되였다.

  한동안 꿈과 현실간의 경계선에 서서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하며 방황했던 그가 오직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책임감 하나로 일본을 향한 때가 2002년 2월이였다.

  일본 “닷컴버블시대” 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었던 때라 취직은 쉬웠다. 일본어는 물론 IT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였던 주홍철은 꼬박 1년간 친구가 경영하는 IT회사에서 일을 배웠다. 전혀 기초지식이 없었던 그는 시키는 일만 꾸벅꾸벅 하면서 현장단련을 했다.

  면접에서 합격되였다가 현장에서 해고되는 일이 수없이 많았다. 팽개치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어린 딸애와 김치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안해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어설펐던 프로그램 코딩에 익숙해져 그나마 독립적으로 프로그램 작성과 수정을 맡아 하게 되기까지 거의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일본에 온지 3년만에 경제적인 안정을 찾은 그였지만 일벌레에 지나치지 않은 그때의 생활이 그닥 즐겁지만은 않았다. 더우기 인생종착역을 엔지니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던 주홍철은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 시작했다.

  때마침 2003년부터 《중소기업도전지원법(中小企業挑戦支援法)》이 실시되기 시작했는데 그 혜택을 외국인들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이미 영구화된, 기본자금 1엔으로 누구나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는 특례가 실시되기 시작한 때였다.

  2005년 11월, 주홍철은 대학교를 갓 졸업한 류학생 넷을 이끌고 기본자금 백만엔의 IT파견회사를 설립했다. 말그대로 운좋게 회사를 설립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더는 리더를 따라 현장에 나가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몸이 아니였다. 주홍철 자신이 리더가 되여 직원들을 이끌고 영업을 해야 하며 모든 프로그램 작업을 이끌어야 하고 아직 일본사회에 발도 붙히지 못한 젖내나는 애숭이 사회인들의 생활을 보장해 줘야 했던것이다.

  당시는 일반기업들에서의 IT화가 진척되고 있었고 전반 사회가 인터넷에 대한 대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어 기술인재에 대한 수요가 많은 시기였다. 물론 IT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교육을 통하여 훌륭한 엔지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업종이기는 하지만 회사경영은 간단하지 않았다. 회사의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노력과 과정이 필요했다.

  구체적으로 어느 IT관련업체에서 어떤 조건의 인재를 수요한다는 정보를 수입한 후에는 그 요구에 해당되는 인재를 선출하여 그 기업에 파견해야 한다. 매개 사원들의 단가, 즉 엔지니어의 몸값이 IT파견회사의 리익을 결정하게 된다. 게다가 파견된 현장에서의 즉전력(即战力) 이 단가를 높이는 결정적인 요소로 되는데 내세울만한 인재가 부족했던 한동안은 저렴한 단가로 일을 많이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를 되돌이켜 보면서 주홍철대표는 말했다. “나 자신도 채 꿰뚫지 못한 분야인데 그렇다고 망설일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나를 쳐다 보는데 발로 뛰거나 작전을 세우는 일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실무를 담당하는 개발부문의 IT엔지니어, 클라이언트(고객)와 교섭하여 안건을 획득해야 하는 영업엔지니어, 프로젝트 진행을 관리해야 하는 프로젝트매니저를 혼자 감당했던 주홍철이였다. 점차 인재영입이 순조로워지고 직원수가 30여명을 넘게 되자 주홍철대표는 또다른 전략을 세웠다.

  “중국혁명은 농촌으로부터 성시를 포위했기때문에 승리했습니다. 적이 쳐들어 올 수 없는 농촌에 혁명근거지를 세운 전략이 중요했습니다.”

  주홍철대표는 회사리익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기술을 련마하고 경험을 쌓게 하기 위해 단가의 높고 낮음은 물론,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지방에도 직원들을 이끌고 서슴없이 내려갔다. 독립적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 우수한 직원들만 도꾜에 남겨두고 일본 전국 어느 곳이든 안건만 생기면 지체없이 그 현장에 내려갔다. 미숙한 직원들에게 현장에서 배우고 단련할 기회를 주기 위한 지휘관으로서의 그의 기업전략이였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훌륭하기만 하면 일주일내에 현장업무에 적응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는 늘 현장에서 해고통보를 받을 각오로 지방에 내려가군 했다. 해고받기까지의 단 일주일간이라도 현장일을 배우게 하고 싶어서였다.

  2007년 히타치(日立) 개발센터의 의탁을 받고 히로시마 중부전력 현장으로 세명의 기술자와 일곱명의 초보 직원들을 이끌고 내려 갔었다. 셋이 일곱을 돌봐야 하는 현장이였다.

  설계서(仕様書)를 받고 직원들에게 여러가지 기초지식을 가르치느라 코딩을 시작도 못했는데 불행중 다행으로 3일후 갑자기 설계서를 고쳐야 하니 일주일간 기다리라는 통지를 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그 통지는 그들에게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가다리는 일주일간 햇내기 직원들은 밤낮으로 복습하여 코딩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아직 IT화 보급이 충분하지 않았던 지방의 안건을 택하는 전략이 정확했다. 그 후에도 중부전력주식회사의 과오로 여러번 작업을 중단하는 “행운”이 생겼던 것이다. 히로시마 중부전력의 안건을 맡아하는 그 1년 사이에 “행운”만을 바라지 않고 필사적으로 분투했던 직원들의 노력도 가상했다. 덕분에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준을 빨리 제고할 수 있었던 한해였다.



  K&K에는 불운도 따라 다녔다. 회사가 갓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을 때인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인 리먼 쇼크가 발생했다. 그 영향으로 2009년과 2010년의 회사매출액은 제로였다. 50명중 열명밖에 남지 않은 직원들마저도 자체로 일을 찾거나 다른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유지했다. 주홍철사장도 IT엔지니어로서는 최하급 단가로 일했다.

  출퇴근시간이 왕복 다섯시간을 넘는 현장에서 반년동안 고생한 끝에 회사의 직원 4명을 그 현장에 인입하게 된 것을 계기로 점차적으로 회사가 다시 제모습을 찾기 시작했던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고 후쿠시마 제1전자력발전소의 사고로 전 일본이 불안속에 처했다.

  하지만 늘 최악의 경우에 대처할 전략과 방안을 준비해두는 주홍철대표의 방침덕분에 회사에는 아무런 혼란도 생기지 않았고 거래처와의 제휴관계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신용은 얻기 힘들지 잃기는 순간이라며 한번 얻은 신용은 오래가기때문에 리익보다도 신용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홍철대표이다. 그때 얻은 신용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어 2011년이후 회사는 빠른 속도로 성장을 보였다.

  2020년 7월 결산에서 매출 6.3억엔을 올린 K&K이다. 대학교시절 늘 ‘작전’과 ‘지휘’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왔지만 일본에 와서 실제로 그것을 두고 머리를 짜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그, 월드옥타 치비지회 제6대회장을 맡으면서 기업인으로서 또 한번 성장의 기회를 가지게 되였다는 그, 현재 월드옥타 본부 제3통상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주홍철대표에게 앞으로의 타산을 물었다.

  “2020년 코로나19로 IT업계도 큰 타격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도 100여명이였던 직원이 80명으로 줄었습니다. 아마 2,3년간은 고비를 잘 넘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태 그러했던 것처럼 이런 시기에도 멈추지 말고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대기업과 K&K 소프트사이에는 층층이 이어지는 수주관계인 원청,하청관계가 많은데 그것을 하나씩 허물고 단 한단계라도 원청에 가까운 위치에까지 도달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리만쇼크때로부터 함께 회사의 어려운 시기를 겪어온 직원들이 현재 회사의 중직을 맡고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믿고 싶어요. K&K와 우리 직원들에게 있어서 이 기간은 한발 더 내디딜 목표를 세우고 그 것을 실현하기 위해 충전하는 시기가 될것입니다.”

  해마다 한번씩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초대하여 해내외 려행을 조직하였는데 요즘 코로나때문에 중지된 그 행사가 제일 아쉽다고 주홍철대표는 말했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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