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그막에 결혼하여 아기자기 살다가 풍을 맞은 저는 재혼한 남편의 사랑으로 건강을 되찾고 있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렇게 저의 남편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올해 72세인 저는 1992년에 전 남편과 리혼하고 상해에 있는 회사를 다니다 1998년 3월 아들이 있는 대련으로 왔습니다. 그러다 2017년 5월 십자거리를 지나다 갑자기 들이닥친 승용차에 부딪쳐 심한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치료를 거쳐 많이 호전되여 실외 출입을 할 수 있게 되였으나 홀로 살다보니 많이 외로웠습니다.
조태만, 전춘옥 부부
언녕부터 저의 고충을 헤아린 친구들이 나서서 울란호트에서 사는 지금의 남편 조태만을 소개하였습니다. 키가 작고 나보다 8살 년상이였습니다. 그의 소박한 옷차림과 따뜻한 눈길이 저의 마음을 끌어 저는 그와 재혼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아끼면서 행복하게 살 것을 약속하며 관광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눈치가 빠르고 부지런하며 때를 맞추어 먹거리를 사들이는 남편이였습니다. 남편은 장장 50년 력사가 있는 애연가였지만 저와 재혼한 후 자기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난다며 담배까지 끊었습니다.
쏠쏠한 황혼 재혼의 재미를 보는 와중에 우리에게 시련이 닥쳐올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2020년 8월, 광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갑자기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고 머리가 어지러워지면서 그만 땅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남편과 아들이 급기야 달려와 저를 대련 개발구 신경병원에 입원시키고 응급치료를 했습니다. 치료를 거쳐 생명은 구해냈지만 오른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여 자기절로 밥도 먹지 못하는 불구자로 되였습니다. 회사를 차리고 있는 아들은 매일 회사 일에 팽이처럼 바삐 돌아치다보니 저를 간호하는 무거운 짐이 남편의 어깨에 지워졌습니다.
남편은 아침마다 따뜻한 물로 저를 세수시켜주고 옷을 갈아입히고 화장실 심부름까지 해줍니다. 어떤 때 속옷이 어지러워지면 남편은 아무 군소리 없이 깨끗하게 씻어주군 합니다. 어찌 이뿐이겠습니까?! 하루 빨리 회복하라며 소탕이며 보신탕을 끓여주고 한숟가락씩 떠주며 “그래도 보약보다 밥을 먹어야 몸을 춰 세울 수 있는 거야.”라고 하면서 어깨를 다독여 줍니다.
어느 날, 점심때였습니다. 남편이 뜨끈뜨끈한 생선국을 끓여다 밥상에 놓고 식기전에 먹으라고 부탁한 후 장보러 나갔습니다. 저는 떨리는 왼손으로 부들부들 국을 뜨는 순간 국그릇을 바닥에 떨구고 말았습니다. 국그릇이 깨져 사방에 널리고 국물이 바닥에 쏟아져 주방이 아수라장이 되였습니다. 나절로 청소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엉망이 된 주방을 보며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바로 이때 남새구럭을 들고 남편이 주방에 들어섰습니다. “미... 미... 미안해요.”라고 제가 미안해서 말하니 남편은 허허 웃으면서 “괜찮아, 당신의 심장소리만 들어도 난 행복하오.”라고 말하는 것이였습니다.
근 3년간 사랑하는 남편의 간호로 저는 지금 날마다 건강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밀고 매일 5,000보 이상 걸어다닐 수 있고 친구들과 채팅도 할 수 있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늦가을에 핀 코스모스처럼 인생 갈피에 묻힌 가슴 아픈 지난날을 뒤로 하며 아름다운 황혼 생활을 만긱하고 있습니다.
/전춘옥 구술 리삼민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