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의 "초원의 만바"이며 18차 당대회 대표인 왕만청은 묵직한 의료상자를 메고 아침 일찍부터 마곡초원 목민들의 천막을 찾는다.
3만여명 장족목민을 키워낸 1만평방킬로메터의 마곡초원은 감숙성 서남부의 감남장족자치주 마곡현에 위치해있다.
"만바"는 장족어로 의사라는 뜻이다. 왕만청은 "나라의 보살핌으로 마곡현은 의사가 적고 약이 결핍하던 력사에 이미 종지부를 찍었으나 장족목민들의 전통적인 생활방식 등 원인으로 의료일군들이 해야할 일들이 아직도 많다"고 말했다.
1968년, 상해제1의학원을 졸업한 24살의 왕만청은 감남장족자치주로 자원해 가 목민들을 위한 의료사업을 시작했다. 감남에 도착해서 마곡현이 제일 어려운 곳이라는것을 안 왕만청은 주저없이 마곡초원에 자리를 잡았다. 왕만청은 당시를 회억하며 "머리가 뜨거워서도 아니고 자기를 나타내기 위해서도 아니였다. 사람이란 평생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였다"고 말했다.
지난 세기 60년대말 마곡현 아만창향은 교통이 통하지 않아 말이 유일한 교통도구였다. 해발 3600여메터에 위치한 향 "중심위생원"의 정경은 더욱 그를 놀라게 했다. 두칸짜리 낡은 흙집이였는데 칠이 떨어진 책상 몇개에 몇병 안되는 약이 들어있는 약궤가 보일뿐 침대도 없었다. 위생원에서 제일 비싼 의료설비라야 원장이 직접 관리하는 혈압기였다. 그리고 전혀 알아들을수 없는 장족말은 왕만청에게 또 다른 세계로 온듯한 감을 주었다. 하지만 왕만청은 초원의 만바로 되려는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환자에게 자주 묻게 되는 말들을 한자음으로 번역해서 짬만 나면 외웠다. 결과 반달도 안되여 왕만청은 장족환자들의 병을 단독으로 진료할수 있게 되였다.
엄혹한 자연환경과 간고한 생활조건으로 마곡초원의 목민들은 전에는 병이 나도 치료할수 없었다. 왕만청의 출현은 장족목민들에게 있어서 훌륭한 "만바"였다.
/중국조선어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