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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학,이제는 번역이 대접받아야 할 때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11.26일 09:19
심승철(沈胜哲) 간력:

1955년 길림성 교하시 출생,

장춘시관성구조선족소학교 졸업,

장춘시제11중학교(한족학교) 졸업

1980년, 공개시험으로 길림성대외무역부문에 취직.

1980년대 조선에서 일년간 단위 주재원으로 근무.

1991년-1998년사이 한국에서 단위 주재원으로 근무.

근년에 업여로 번역사업 종사,

연변작가협회 회원

현재 장춘대학 관광학원 한국어학부에서 근무.

번역은 나에게 운명처럼 왔다

기자: 선생님은 대외무역부문에서 통역을 하시다 문학작품을 번역했는데 번역에 발들여놓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

심승철: 중학교를 다닐 때 엄격한 아버지의 강요하에 울며겨자먹기로 매일 《길림일보》를 랑독하고 닥치는대로 중국고전문학, 당시, 송시를 읽었다.

번역에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기간 아주 우연하게 손을 댔다. 한국친구의 안해가 장편소설을 썼는데 중국어로 번역해 출판하려 했다. 통역만하던 나는 실험삼아 번역했다. 물론 그 친구의 경제사정으로 번역된 소설이 출판되지 못했지만 첫시작부터 장편소설을 번역하면서 번역에 대한 여러 가지 체득이 깊었고 번역기교 등도 많이 터득한것 같다.

기자: 선생님의 경력을 보면 재미있는것이 소학교는 조선족학교, 중학교는 한족학교를 다녔고 직장은 한족이 많은 단위에서 다녔다. 선생님은 조선과 한국에서도 7-8년 체류했다. 이중언어학습과 두 문화권에서의 생활체험이 번역을 하는데 독특한 사회대학이 된것 같은데 어떻게 보는가?

심승철: 참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명이 날 번역일을 하도록 만들어놓은것 같다. 조선족소학교 교육은 나에게 우리 민족 언어와 문화의 뿌리를 심어줬고 중학교와 단위에서 난 한족 문화에 익숙했고 한족친구도 많이 사귀게 됐다. 이런 마당에 조선과 한국에 체류했던 경력은 날 우리 언어와 문화의 정수와 자양분을 가물에 단비처럼 받아들이게 했는데 이런것들이 내 모든것을 승화시켰던것 같다.

기자: 그게 선생님의 번역에서 독특한 우세가 되였겠다. 한어와 우리 말가운데 어느것이 더 손에 익은가?

심승철: 나는 번역과 문학 전공을 전문적으로 배운적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내 경력이 상대적으로 한어를 내 몸에 더 배고 손에 익게 한다. 난 또 우리 말을 깊이 료해하고 언어의 묘한 맛도 비교적 정확하게 느낄수 있다. 우리 작품에서 반영된 조선민족 언어와 문화의 고유하고 미세한 느낌과 정감을 중국문화와 한어작품에 교묘하게 불어넣는것이 내 우세라고 스스로 본다. 난 한어를 조선어(한국어)로 번역하는데는 자신이 없으나 우리 말을 한어로 번역하는데는 느낌이 온다.

한국작가의 작품을 번역해 대만학생 필독서가 되게 하다

기자: 선생님의 번역작품이 대만지역에서 중학생들이 꼭 읽어봐야 할 문장의 하나로 선정되였다는데 사실인가?

심승철: 맞다. 이는《어머니와 함께한 900일 려행(和妈妈一起度过的900天旅行)》(한우국제문화유한회사. 2008년 7월 출판. 사이트: http://www.doc88.com/p-7030278681.html)이라는 실화소설로 몇만자의 단행본으로 번역돼 출판된 책이다. 원작은 한국 유현민작가가 썼는데 한국에서는 베스트셀러작품이였다.

책내용은 흑룡강성 막하에 사는 70대 아들이 90대 어머니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어머니를 밀차로 끌고 중국 여러곳을 구경시켜준 감동적인 내용이다. 《효도》가 점차 사라지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중국에서 발생한 교육의의가 있는 이야기를 한국작가가 다루었다는데서 중국독자들한테 번역해 보여야겠다고 여겼다.

작품에서 주인공의 원형인 70세 로인을 취재하러 간 한국 유현민작가도 중국의 많은 작가들처럼 찾아갈 땐 거절을 받았다 한다. 어느 한번 로인의 집까지 찾아갔지만 거절받고 되돌아오려다가 폭설이 내려 로인의 집에 주저앉게 되였는데 로인이 마음을 열고 이국작가에게 이야기를 터놓았던것이다. 로인은 꼬박 한주일동안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이 소설의 소재다.

나는 이 작품에 크게 감동돼 번역에 달라붙었다. 후에 대만 중학생들이 읽어야 할 60가지 책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였다.

기자: 그동안 어떤 작품을 번역했는가? 이번에 준마상을 받은 작품 《불멸의 영렬-최채》를 번역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심승철: 나는 말 그대로 업여시간을 타 그냥 번역하는 일이 즐거웠다. 기실 이번 번역작품은 정말 부끄럽고 초라하다. 난 전에 조철학의 《비등하고있는 중국》과 리혜선의 《터지는 꽃보라》를 번역했다. 당시 길림신문사 사장과 장백산잡지사 사장을 하던 남영전선생님이 작품을 주며 번역해보라고 했던것이 대분분이다.

《불멸의 영렬-최채》는 원작이 연변대학 고 류연산교수인데 《장백산》잡지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을 번역하라고 추천해준분은 평소 나에게 번역작업을 많이 주던 장백산잡지사 리여천사장이다. 또 꿈에도 생각 못하게 고마운것은 얼굴도 모르는 연변작가협회분들이 이 작품을 준마상에까지 추천하여준것이다. 생각해보면 난 참으로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행운스러운 사람이다.

수상통지를 받고 놀랐다. 그야말로 꿈같았다. 이번 준마상은 상금도 10배나 올렸는데 난 그야말로 행운아였다. 남영전선생님, 리여천선생님과 연변작가협회에 특히 감사를 드리고 고 류연산선생님 령전에도 감사의 절을 올린다.

조선족문학 중문번역 이제는 대접을 받아야 할 때

기자:노벨상을 받으면서 막언은 중국의 참말로 많은 좋은 작품들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것은 우리 작품들이 세계에 잘 알려지지 못한탓이라 했다. 그는 문학작품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조선족문학작품 번역을 하면서 선생님이 받은 감수는 무엇인가?

심승철: 제 민족의 우수한 작품은 제 민족이 스스로 번역해 주동적으로 널리 알려야지 나무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현재 조선어작품을 한어로 번역하는 사업에 투입이 적고 중시하지 않는것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번역비만 보더라도 아직도 십여년전의 수준에 머물러있으니 번역가는 번역만 해서 죽도 먹지 못한다. 나처럼 업여로 즐겨서 하는 사람들은 몰두할수 있지만 번역능력이 있고 번역사업에 종사하려는 사람들은 대우때문에 아예 떠나가버린다.

또 작가와 번역가 그리고 출판사간의 정규적인 시스템이 없기에 그냥 안면으로 번역을 받고 해주는 유격대식이다. 앞으로 작가협회나 잡지사 등 부문에서 조직적으로 좋은 작품을 소개해주고 출판사와도 련계해주어 번역가들은 번역에만 정력을 기울이게 해야 한다. 번역가가 개인흥취에 맞는 소설이나 작품을 번역해놓았는데 출판사 취미나 요구에 맞지 않아 출판 못되는것이 안타깝다. 또 우수한 작품을 쓴 작가들은 알맞는 번역가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경우도 있다.

조선족문단에서 번역사업을 진정으로 중시하고 활성화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서북지역의 문단활동에 참가한적이 있는데 그곳 소수민족문단에서 번역가들의 모임은 활성화되였고 번역사업에 유리한 여러 가지 시스템들도 잘 조성돼있었다.

조선어작품이 한어로 훌륭히 번역되지 못하는 원인의 하나가 번역관련 문학비평이 따라가지 못하는것도 있다 하겠다. 번역가의 한 번역작품을 책임지려면 문학비평 평론가가 엄격히 검사해야 하는데 원 작품 내용이 제대로 번역되지 못해도 평론가측에서 방관하는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기자: 번역꿈을 가진 후배들에게 번역기교장악에서 강조하고싶은 점은 무엇인가?

심승철: 나는 번역전공이 아닌 토배기로 번역리론은 없고 그냥 내 체험을 말한다.

우선 쌍방의 언어를 잘 료해하고 풍속이나 사투리, 전통문화를 잘 장악해야 한다. 매 민족마다 자기민족만 알아듣는 특수하고 오묘한 어구나 말이 있는데 그 말들의 미세한 느낌과 분위기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번역할 때 단순히 글자번역에만 치우치지 말고 전반 문장에 함유된 뜻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초보자들은 많이 듣고 많이 말하고 작품을 많이 읽으라. 먼저 구두어 번역을 하고 익숙해진 다음 작품번역을 시도하는것도 방법이다.

특히 우리 문단에는 물론 우리 문자를 다루는 신문잡지의 기자편집선생님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작품이나 기사중의 인명은 꼭 한자를 덧붙여 표기해주었으면 좋겠다. 순 우리 글 이름은 섯갈리기 쉽기에 번역가운데 인명 하나를 정확히 밝히는데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지 모른다. 또 한자로 밝히면 이후 검색을 하거나 자료를 찾는데도 정확하게 찾을 수 있고 많은 정력을 절약할수 있다.

기자: 지금 몰두하고있는 번역이 있는가?

심승철: 오래전부터 조선시조에 관심을 가지고 한어로 번역하고있다. 조선시조는 <3.4조> <4.4조>가 특점인데 한어로 역시 <3.4조> <4.4조> 되게 번역해 우리 민족 전통시가문학을 한족들한테 널리 알리고싶다.


아래것은 고려말기 학자인 우탁(禹倬. 1263——1342)의 시조 《탄로가》인데 심승철이 번역한것이다..

우탁의 원작

한 손에 막대 잡고(3.4조) 또 한 손에 가시 쥐고(4.4조)

늙는 길 가시로 막고(3.5) 오는 백발 막대로 치러더니(4.7)

백발이 제 먼저 알고(3.5) 지름길로 오더라(4.3).

심승철의 번역작품

一只手 紧握棍棒(3.4조), 一只手里 高举荆棘(4.4조)。

举荆棘 欲拦衰老去(3.5), 白发来临 欲期待 棍棒猛击(4.7)。

看白发 早已先知觉(3.5), 挑选捷径 来路急(4.3)。

한어글자를 조선글자수에 맞추며 원 문장의 뜻을 정확히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번역가의 조선문학과 중국문학의 풍부한 지식을 알수 있다. 현재 심승철이 번역한 시조는 《시가월간(诗词月刊)》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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