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수교 20주년… 베트남을 가다]
[3·끝] 한국 온 新婦들… '문화충격' 줄일 사전교육 필요
민간의 교육센터 입소한 신부들… 한국의 화려함만 상상
"한류 드라마같은 자상한 남편… 운전기사·도우미 두겠다"
잘못된 지식이 정착 방해… 하루 8시간짜리 정부교육은 부족
"여러분, 한국 시어머니가 왔을 때 여기서 낮잠 잘 때처럼 팔다리를 쭉 뻗고 자면 혼나요."
지난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한베문화교류센터의 한국문화교실. 20~30대의 베트남 여성 25명이 김영신 원장으로부터 '한국 결혼 생활에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이곳 수강생들은 이미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신부들로, 결혼이민비자를 받아 한국에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 김 원장의 설명이 끝나자 베트남 신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나요?" "쓰레기를 분리 수거해야 한다던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요?"….
지난해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은 7636명에 달한다. 2000년대 초반에 시작된 베트남 신부의 한국행은 최근 그 수가 급격히 늘어 올해까지 베트남 여성 4만7000여명이 한국에서 가정을 꾸렸다. 현재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결혼 이주 여성(19만7000명)의 약 24%가 베트남 여성이다. 특히 지난해엔 한국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 수가 처음으로 중국 여성(7549명)을 앞질렀다.
“시어머니에겐 이렇게 하세요” 교육받는 베트남 신부 - 베트남 하노이의 한베문화교류센터에서 김영신 원장이 한국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여성들에게 ‘한국 결혼 생활에서 주의할 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한국 입국을 기다리는 베트남 신부들에게 2주간 한국어와 전통 요리·문화 등을 교육한다. /이송원 기자
하지만 결혼과 함께 한국땅을 밟는 대부분의 베트남 신부들은 한국의 현실을 잘 모른다. 한국인 남편 월급이 200만원인데 그 돈이면 한국에서 가사 도우미와 운전기사를 두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베트남 여성도 있다고 한다. 한베문화교류센터의 김 원장은 "베트남 신부들은 한국 남성들이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모두 자상한 줄 안다"고 했다. 한국 생활이 화려하고 풍족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경험도 정보도 부족한 베트남 신부들을 위해 한베문화교류센터에선 2010년부터 한국말과 요리, 문화를 가르친다. 간단한 한국말은 물론이고,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콩나물 무침과 멸치볶음 등 밑반찬 만드는 법도 가르친다. 베트남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고, 먼저 한국에 시집간 선배들이 전해주는 생활의 지혜도 전수한다. 베트남 신부들은 이 센터에서 2주 동안 합숙하면서 "한국살이가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배우는 것이다.
이런 강의를 듣고 나면, 한국에서의 삶이 드라마에서 본 것과 비슷할 것으로 기대했던 베트남 신부들은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한베문화교류센터에서 만난 한 베트남 신부는 "한국의 현실이 상상하던 것과 달라 놀랐다"며 "그동안 한국생활에 기대가 컸는데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한국에 대해 알면 알수록 오히려 걱정이 커진다"고 했다. "한국어만 잘하면 다른 일은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말을 못해 걱정"이라고 말한 신부도 있었다.
베트남 여성들이 중매를 통해 현지에서 한국 남성과 결혼한 후 한국에 오기까지 보통 2~6개월이 걸린다. 그사이 남편과는 2~3번 정도 만날 뿐이다. 호찌민, 하노이 등에서 한국 정부가 제공하는 하루 8시간짜리 '사전 정보 제공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여기선 한국 날씨, 은행과 대중교통 이용방법 등 기초 한국생활 정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 정도 정보를 가지고 남편도, 한국말도, 한국문화도 잘 모르는 베트남 신부가 한국생활을 순조롭게 시작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현지의 한 관계자는 "사전 교육기간이 짧고 내용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면서 "가능하면 한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해부터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베트남 신부 사전 교육 기간을 3일로 늘려 실시하고 있다.
주베트남한국대사관에서 '국제결혼이민관'으로 일하는 고시현 영사는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의 한국에 대한 정보 부족과 잘못된 지식은 한국 생활 조기 적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베트남 가정의 정착을 돕기 위해 베트남 신부들에 대한 정부·민간 차원의 입국 전 교육을 늘리고 이를 입국 후 적응 프로그램과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선닷컴 하노이=이송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