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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생님12]《민족교육은 곧 민족의 숨결이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06.25일 09:16
—교하시조선족중학교 리송춘교장을 찾아서

교하조중 리송춘교장

길림성 교하시조선족중학교는 현재 180명 학생에 교직원 72명을 둔 교하시의 유일한 조선족완전중학교이다.

1952년에 창설된 교하시조선족중학교는 올해까지 장장 61년이란 반세기가 넘는 력사를 거쳐왔다.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집채같은 파도의 충격은 우리의 삶만이 아닌 우리의 민족교육에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외국으로의 진출, 남방으로의 진출, 대도시로의 진출로 민족교육은 한번만이 아닌 여러차례의 칼도마에 오르게 된다. 민족교육은 시시때때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민족교육의 터전을 굳건히 지켜온 교하시조선족중학교는 오늘날에도 민족교육의 기치를 높이 추켜들고있다.

<<교하시조선족중학교가 오늘까지도 산재지구에서 민족교육의 터전을 굳게 지킬수 있은것도 어떻게 보면 민족에 대한 교장선생님의 깊은 애정과 민족교육을 지키자는 뚝심이 큰 힘을 썼다고 볼수가 있지요.>>

교하시조선족중학교 리송춘교장에 대한 주위의 평가다.

1986년 7월, 연변대학 력사학부를 졸업한 리송춘교장이 교육사업에 몸을 담근지도 어언간 근 30년 세월을 바라보고있다.교하에서 출생해 1982년에 교하시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교하시조선족중학교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해에 영길조일중에 배치를 받은 그는 자신을 양성한 고향의 민족교육사업에 힘을 바치려는 심정으로 1987년 교하시조선족중학교로 전근했다.

교하조중으로 전근했을 때의 첫 감수가 어떠했는가고 물었을 때 그는 마치 집에 온듯한 편안한 느낌이였다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훌륭한 <<농군>>이였다

교하시조선족중학교로 전근해온 그는 전근해서부터 고중 3학년 력사과임을 맡게 되였다.그는 자신의 모든 정력을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쏟아부었다. 그에게 어떤 비법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의 극성어린 가르침이였는지 그가 맡은 력사과 성적은 전 길림지구 조선족학교 대학입시에서 해마다 첫자리를 차지하군 하였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퇴근했지만 그때는 젊어서 그런지 힘드는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대학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을 따냈을 때는 학생들보다 오히려 나자신이 더 흥분한것 같았습니다. 농사군이 농사를 지어 가을에 풍년을 맞이한 기분이라 할가요.>>

그의 우수한 교수수준은 학교령도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의 희생적인 정신은 교직원들의 인정을 받았다.그는 많은 동년배들의 경쟁을 물리치고 1995년에 교도처 부주임으로 승급되였고 고중 3학년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게 되였다. 그후 1998년 새학기를 맞으면서 부교장으로 임명되였고 2005년 8월에 교하시조선족중학교 교장 겸 당지부서기로 부임되였다.

교장직책을 맡아서부터 그는 <<학생을 근본으로, 교수질을 령혼으로, 발전을 첫째로>>라는 학교운영리념을 내새웠다.이 리념을 실현하자면 우수교원대오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성실, 우수성과>>를 교풍으로 내세고 우수교원대오 양성에 모를 박았다. 교사들의 교수질은 학생들과 직접적인 련계를 갖는다는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전체 교직원들의 다함없는 노력하에 교하시조선족중학교에서는 북경항공대학, 북경사범대학, 천진대학 등 일류대학에 입학한 우수한 학생들이 속출했고 교하시조중은 길림시보통고중 질제고상, 길림시고중교수우수성과상 등 수많은 상을 수여받았을뿐만아니라 리송춘교장 본인은 길림시조선족교사 전능시합 고중조 1등에,1998년에는 길림성 우수교사로 당선되였고 2005년부터는 해마다 교하시교육계통 우수교장으로 당선되였다.

<<평교원으로부터 교도처 부주임, 부교장, 교장으로 부임되였지만 처음에는 마음도 무거웠습니다. 두 어깨가 갑자기 무거워지는 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몇심년을 같이 어깨곁고 싸워온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에 자신감도 생겼어요. 우리 학교가 오늘까지 존재하고 좋은 성적을 쌓게 된것도 전체 교직원들이 땀 흘려 가꿔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고맙기만 할뿐입니다.>>

민족교육은 곧 민족의 숨결이다

시장경제체재의 충격으로 우리 조선족학교들이 많은 시련을 겪고있다. 특히 학생류실로 인해 민족교육은 더욱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다.일부 학교는 한족학생을 모집하게 되였고 일부 학교는 한족학교와 합병하기까지도 하였다. 민족교육은 다시 한번 거세찬 소용돌이를 맞이하게 되였다.

교하시조선족중학교에 역시 합병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2009년 상급정부에서 한족학교와 교하시조선족중학교를 합병하자는 의견을 제기해왔다. 자원이 절약되고 학생수가 늘어나며 경제적으로도 많은 리익을 보게 되며 교수질도 많이 제고될수 있다는것이 상급에서 학교합병을 주장하는 리유였다.

하지만 이는 절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리송춘교장은 생각했다.그는 상급지도부를 찾아가 자신의 반대의견을 피력했다. 상급의 출발점과 민족학교에 대한 관심은 리해할수 있지만 한족학교와 합병하게 되면 한족학생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여 민족교육이 자연적으로 소실되고 조선족주체교육이 소실되는것은 물론이며 더우기는 민족교육의 터전이 없어지고말것이라는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수차 오고가는 신경전속에 상급부문의 압력이 만만치 않았으나 절대 양보할수 없는 일이였다.그의 완강한 고집,타당성있는 반대론에 상급정부에서는 결국 합병방안을 접게 되였다.

<<민족교육은 곧 민족의 숨결입니다. 조선족들이 이민을 통한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 최우선으로 세운것이 학교였어요.민족교육이 없는 조선족사회는 없다고 봅니다.>>

그동안 1만 3000여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한 교하조선족중학교,그속에는 현임 룡정시 시장 안명식,중국조선족 료식업계 항공모함으로 불리우는 북경한라산그룹의 장문덕리사장 등 걸출한 인물들이 사회에서 큰 활약을 하며 모교와 민족사회에 보답하고있다.

《학생들이 볼수록 이뻐요》

<<이젠 나이가 들어가면서 학생들이 볼수록 이뻐요.>> 리송춘교장은 이 말을 하면서 조용히 웃었다.

학생원천의 결핍으로 학생수가 줄어들고 또 그에 따르는 경제적인 곤난은 학교운영에서 하나의 큰 걸림돌이 되였다.

그는 학교운영에 필요한 사회의 원조라면 사심없이 요청했다.

교하시조선족중학교에서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천사장학금, 애심장학금, 효도장학금, 지혜장학금 등 많은 장학금을 설치하여 많은 생활이 궁핍한 학생들이 혜택을 보고있으며 학습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큰 고무가 되고있을뿐더러 그들의 애심교육에도 한몫하고있다.

그중에는 1997년부터 지금까지 쭉 16년간 천사장학금을 설치해 후원해온 해외동포도 있고 돈을 벌어 모교를 잊지 않은 제자들도 있다며 리송춘교장은 심심한 사의를 표시했다.

<<지금 학생들을 보면 부모들과 같이 있는 학생들이 기본상 없어요. 부모들은 모두 돈을 벌러 외국이나 도시로 진출하여 학생들이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있습니다.그들에게 우리는 선생이기전에 부모가 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사업은 숙명인가 봅니다》

<<근 30년간 교육사업에 몸 담고있는 지금 돌이켜보면 교육사업은 숙명인가 봅니다.>>

그의 부친 리용희씨는 1950년대 교하시조선족중학교 초창기의 서기였다.군인이였던 그의 부친은 제대한 후 교육사업에 일생을 바쳤다. 아버지의 영향에서였던지 그는 어려서부터 교원사업에 깊은 감정을 지녔다. 그 당시의 환경과 가정배경으로 말하면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직장으로 전근할수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교하조중을 졸업한 그의 안해도 그와 똑같은 해에 교하조중에서 교편을 잡아 지금까지 교하시조선족중학교에서 교원사업을 해오고있다.딸 리려단은 2009년 우수한 성적으로 북경사범대학에 입학해 지금 연구생과정 수료중이다. 과연 교육세가라는 말은 이들 가정에 어울리는 말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새일대 조선족교원의 초빙난으로 인한 교직원대오의 로령화,학생원천의 감소로 인한 재정곤난,편벽한 현성도시로 인한 교원들의 동요심리 등 많은 곤난앞에서 오직 무한한 민족애와 굳건한 뚝심,교육사업에 대한 불타는 열정으로 교하시 조선족민족교육을 지켜가는 이, 오늘도 리송춘교장은 교하조선족중학교의 발전을 위해 로심초사하고있다.

/리상학 차영국기자

교하조중 교사 락성 기념비



편집/기자: [ 차영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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