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민동훈 기자][고액 전세 '비과세' 형평성 논란… 집 주인, 가격 하락 박탈감 더 커]
#2010년 초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2단지 푸르지오 85㎡(이하 전용면적)를 4억원에 매입한 한모씨(39·회사원)는 최근 30여만원의 재산세를 내고 짜증이 밀려왔다.
이미 집을 살 때 취득세로 800여만원을 낸 상황에서 재산세를 1년에 2차례씩 매년 60만~70만원 가까이 내야 하는 상황이 못마땅했다. 게다가 매달 대출금만 120만원씩 내는 것까지 감안하면 차라리 전셋집 살던 시절이 행복한 듯하다.
#피부과전문의 전모씨(56)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 갤러리아포레 218㎡에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 전셋값이 20억원에 달하지만 올해 재계약을 했다. 취득세를 한푼도 안내도 되는데다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도 전혀 과세되지 않고 전셋값을 올려줄 만큼 벌이도 충분해 이사할 생각이 없다.
올 가을 시집갈 딸에게도 전셋집을 해줄 요량이지만 국세청이 전세보증금에 대해 자금출처 조사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수천만원의 증여세를 신고할 생각도 없다. 조사가 들어오더라도 나중에 돌려받기로 했다고 하면 그만이어서다.
수십억원 넘는 고액 전세아파트 거주자에 대한 과세 여부를 두고 형평성 논란이 뜨겁다. 주택 보유자의 경우 취득세, 재산세는 물론 일부는 종합부동산세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지만 수십억원에 달하는 강남의 고액 전세아파트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거주에 따른 세금부담이 전혀 없어서다.
하지만 전세보증금의 경우 일종의 채권이라는 점에서 과세할 근거도 없고 과세를 하더라도 이중과세가 된다는 점에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현행 세법에 따르면 전세보증금의 경우 집주인에게만 일정한 범위에서 소득세가 과세된다. 3주택 이상 보유하거나 1주택자라도 공시가격 또는 기준시가 기준으로 9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임대한 경우에 한해 보증금의 60%에 대해 임대소득세를 부과하는 것.
반면 세입자의 경우 전세보증금을 자산으로 볼 수 있지만 물건이 아닌 채권이라는 점에서 과세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게 세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집주인에게 이미 보증금에 대해 세금을 과세한 상황에서 또 세입자에게 세금을 부과할 경우 이중과세가 된다는 점도 문제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물건이 아닌 채권에 과세할 근거도 없고 전셋집을 세입자의 자산으로 보긴 어렵고 이중과세 문제도 있어 고액 전세주택에 살고 있는 세입자라 하더라도 과세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세보증금의 경우 계약 종료 후 자본이득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과 자본기회비용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세입자가 손해를 보는 구조란 점에서 과세 자체가 논의대상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 부동산팀장은 "보증금 규모를 떠나서 세입자 입장에서는 주거편익 외에 다른 자본이득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과세형평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주택가격의 하락세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주택보유자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
즉 집을 여러 채 갖고 임대하는 등 전·월세시장의 공급책 역할을 담당하는 다주택자들은 여러 세목으로 세금을 납부하지만 충분한 자금력을 갖췄음에도 절세 등의 목적으로 고액 전세주택에 거주하는 세입자들은 과세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어서다. 자녀에게 고가의 전세주택을 마련해주는 경우엔 증여세 탈루 수단이 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정재호 목원대 교수는 "고가 전세주택을 자녀에게 마련해주는 과정에서 증여세 탈루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고액 전세주택이 부유층의 세금을 피하는 방법으로 이용되는 상황에서 어떠한 형태로든 고가 전세 세입자에 대한 과세 논의를 조심스럽게 시작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세권도 등기가 가능하고 확정일자를 받아 대항력을 갖출 수 있는 등 일부 재산권 행사가 가능한 만큼 재산세 부과도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는 "독일의 경우 최근 세입자의 주거권도 재산권으로 봐야 한다는 판례가 나왔다"며 "가격과 규모, 거주기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고액 전세 세입자에게 재산세를 부과하는 방안 정도는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