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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게이 사우나’ 단속한 이유는?

[기타] | 발행시간: 2013.08.29일 11:55

[한겨레] 외진 곳 자리한 ‘게이 사우나’

성매매 등 불법 없었는데도

방송보도뒤 ‘풍속법 위반’ 단속

동성애자 공간이 필요한 건

‘보는 눈’들이 두렵기 때문

“평범한 데이트 공간을

그들도 즐길 수 있도록

사회 편견을 거두어야 한다”

동성끼리 카페·공원서 데이트하면… 이상하게 볼 거면서!

서울 강남 한 유흥가의 화려한 불빛을 비켜간 언덕길. 멋없이 상호만 적힌 검은 간판을 단 5층 건물 하나가 서있다. 저녁 8시를 넘어 어둑해진 거리는 다음 술자리를 찾는 취객들로 붐볐지만, 검은 간판은 행인을 유혹하지 않았다. 건물 밖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오르면 검게 코팅된 문이 입을 꽉 다물고 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평범한 목욕탕 입구처럼 신발장이 ㄴ자 모양으로 늘어서 있다. 카운터를 지나 가림막을 헤치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가 보면, 14개의 방과 5개의 샤워장이 나온다.

■ ‘게이 사우나’를 단속한 까닭 <한겨레> 취재진은 지난 21일 이른바 ‘게이(동성애자) 사우나’를 찾았다. 한 방송이 “이젠 동성애자 성매매까지 등장했다”며 집중보도하자 경찰이 단속에 나선 곳이다. 이 업소를 운영하는 김현철(가명·48)씨는 지난 14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풍속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방송 보도는 진짜 동성애 성매매 업소와 게이들의 만남의 장소를 구분하지 않았다. 둘을 뒤섞어 불쾌하고 불법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게이 휴게텔이나 사우나는 오래전부터 동성애자들이 만나왔던 곳이었다. 김씨의 게이 사우나에서 성매매는 이뤄지지 않는다. 김씨는 “우리 사우나에서 동성애자들이 만나고 하룻밤을 보내는 것은 맞지만 종업원을 두고 성매매를 하는 곳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찰도 김씨에게 풍속법 3조 2항 위반 혐의를 적용했을 뿐이다. 풍속법 3조 2항이 금지하는 것은 ‘음란행위를 하게 하거나 이를 알선·제공하는 행위’로, 숙박업소에서 음란방송을 틀어주는 행위 등이 이에 해당한다. 3조 1항이 규제하는 ‘성매매 알선행위’와는 분명히 구분된다.

경찰은 동성애자들의 만남을 음란행위로 취급한 셈이지만, 김씨는 항의하지 않는다. “이성애자들은 성매매나 휴게방이나 사우나나, 게이들이 만나는 건 모두 똑같은 걸로 보니까 나서봤자 의미 없어요. 사람들한테 안 알려지는 게 가장 좋아요.”

단속 경찰도 동성애자들의 이런 속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게이 사우나를 단속한 것도 언론 보도 영향이 크다고 했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최근 몇년 사이 (관할지역에서) 동성애 관련 업소를 단속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두 번밖에 없다. 언론이 이런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고 해서 단속을 나갔을 뿐이다. 김씨 업소의 경우 (성매매 알선이 없었기에) 법 위반 정도가 벌금형 수준이다. 단속의 우선순위도 높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경찰서도 최근 관내에 있는 동성애 관련 업소 점검에 나섰지만 법 위반 사실은 발견하지 못했다.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동성애 관련 업소 점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론 보도 때문에 나갔지만 법 위반 사항은 발견하지 못했다. 앞으로도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곳을 반드시 척결한다는 식으로 단속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그런 소수자들이 모일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털어놨다.

■ 그들은 왜 사우나에 모이나 동성애자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에 모이는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동성애자 아닌 ‘일반’의 시선 탓이 크다. 스스로를 일반과 구분해 ‘이반’이라 부르는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은다. 정민석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이반’은 주변 시선 때문에 ‘일반’처럼 길거리에서 손을 잡거나 가벼운 애정표현조차 하기 어렵다. 게이 사우나나 휴게방 같은 곳은 동성애 인권운동이 척박했던 1970년대부터 이반들이 세상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고 전했다.

서울 종로에는 1970년대부터 이반들의 만남 공간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사라진 파고다 극장이 대표적이다. 모이다 보니 자연스레 파고다 극장 근처에 ‘게이 바’들이 만들어졌다.

번화가에서 벗어난 종로의 골목길. 양팔을 벌리면 손이 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을 따라 에어컨 실외기를 5~6개쯤 피해 걸으면 허름한 건물 지하에 ‘게이 디브이디(DVD)방’이 있다. 이곳 업주 정연우(가명·61)씨는 “이반들만 왔다갔다하면 일반이 보기에 이상하니까 가게도 일부러 으슥한 곳에 차린다. 건물 주인들은 우리가 그런 곳을 찾는다는 걸 알고 세를 오히려 높게 부른다”고 말했다.

정씨의 디브이디방은 대학가 주변의 일반 디브이디방과 쓰임새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씨는 “이반들이 편안하게 영화 보고 쉬고 그러다가 서로 좋은 사람 만나면 사랑을 나눌 수도 있는 공간이다.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커피숍에서 남자 둘이 다정하게 앉아 연애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해민 한양대 엘지비티(LGBT, 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인권위원회(준) 위원장은 “이반들은 카페나 영화관 등에서 공개적으로 만나기 힘든 측면이 있다. 그래서 게이 사우나나 찜질방에 모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공간에서 성인들이 합의 아래 성관계를 맺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편견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일반이 주는 위협과 위험도 그들만의 공간을 마련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서울 서초구에서 ‘게이 휴게텔’을 운영하는 현수민(가명·48)씨는 “일반 사우나인데 이반들이 많다고 소문난 곳이 있다. 이런 곳에는 일반이 이반인 척한다. 이반이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 손이라도 대면 그때부터 때린다. 그렇게 기를 죽인 다음 성폭행으로 고소할 거라고 협박한 뒤 돈을 뜯는다. 주변에 있던 이반들은 괜한 사건에 엮여 커밍아웃 당하는 것이 두려워 지켜만 본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현씨는 “이반 사이에서는 성폭행 사건이 별로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 온화하고 여성적인 사람들이 많다. 싫으면 거절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경찰 단속을 받은 게이 사우나 운영자 김현철씨는 “남자들끼리는 서로 완력이 있어서 쉽게 제압되지 않기 때문에 성폭력이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3년간 게이 사우나를 운영하면서 그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전했다.

■ ‘이반’을 위한 공간은 어디에 일반적인 성애는 아름답고 때로 추하기도 하고 또한 평범하다. 동성애자도 다르지 않다. 불가피하게 ‘게이 사우나’ ‘게이 휴게방’ ‘게이 클럽’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만남이 이뤄질 뿐이다.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이반들은 뭔가 특별하고 은밀한 곳에서 따로 성문화를 즐기려고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고 영화 보고 공원을 거니는 게 일반적인 데이트라면 이반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평범한 데이트 공간들을 즐길 수 있도록, 이반들을 억압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성애자들 스스로도 1970년대 종로의 외진 골목에서 벗어나 공간의 자유를 얻으려 하고 있다. 지난 6월1일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걷고싶은 거리’에는 2000여명의 동성애자들과 지지자들이 모여 ‘게이 퍼레이드’를 벌였다. 14년째 이어진 행사다. 동성애자인 김조광수 감독과 영화사 ‘레인보우팩토리’의 김승환 대표는 다음달 7일 공개 결혼식을 열 예정이다. 동성애자들은 스스로 좀더 당당해졌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유연해진 건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 주류는 여전히 이들을 불편해하며 배제하려고 한다.

박지훈 고려대 교수(미디어학부)는 “다수의 언론들은 게이 휴게텔 등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변태라고 왜곡하고 사회적으로 격리하려 한다. 이런 보도는 동성애자 전체가 무조건 성적인 욕구만 충족시키려는 이들이라는 오해와 편견을 고착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환봉 방준호 이재욱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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