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앞두고 대학생들이 원룸 등 주거시설 부족과 치솟는 방값 때문에 극심한 주거난을 겪고 있지만 오랜 기간 대학가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하숙집에서는 대학생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한국외국어대 근처에서 거주하고 있는 대학생 차모(23) 씨는 얼마 전 1년 간의 하숙 생활을 접고 자취로 돌아섰다. 매일 오전 7시 하숙집 아주머니가 밥을 먹으라며 깨우는 통에 늦잠을 잘 수 없고 청소를 해준다며 방에 불쑥불쑥 들어오는 통에 불쾌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 씨는 “요즘은 가족끼리도 서로의 사생활을 중요시하는데 하숙집 아주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관심이 불편했다”며 “하숙집에 있던 학생 6명 중 절반 가량이 같은 이유로 하숙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살고 있는 대학생 김모(28) 씨는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들어간 2년 전부터 하숙집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각종 스터디 모임과 공모전 준비, 인턴 생활 등으로 눈코뜰 새없이 바쁜 그는 “하숙비에는 식비도 포함돼 있는데 하숙집에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돈이 아까웠다”며 “잠만 잘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에 월 50만 원을 내야 하는 하숙집 대신 월 35만 원 짜리 고시원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30일 서울 주요 대학 인근 부동산업소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 시내 대학가에는 기존 하숙집들이 원룸이나 고시원 등으로 개조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그나마 남아 있는 하숙집들도 공실률이 50∼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숙집들이 점차 사라지는 원인으로는 대학들의 기숙사 확충과 상대적으로 낡은 주거시설 기피, 사생활을 중시하는 요즘 대학생들의 의식 변화 등이 꼽힌다.
하숙집을 기피하는 풍토 속에 하숙집 운영주들은 가격 할인 등에 나서고 있지만 사정은 그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서울 성동구 한양대 근처에서 방 2개짜리 하숙집을 운영하는 이모(여·56) 씨는 월 100만 원 가량 하던 소득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 씨는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는 경우 방값을 할인해준다는 조건을 내걸고 45만 원하던 방세를 35만 원으로 내려도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계속 올라 겨우 입에 풀칠하는 지경”이라고 말했다.
하숙집을 원룸으로 개조하는 경우도 늘고 있지만 상당수 하숙집 주인들은 경영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서울 관악구의 부동산업체 대표 박모(55) 씨는 “하숙집을 원룸 형태로 개조하는 주인들도 있지만 대부분 건축법 등의 제약을 받아 쉽게 집을 수리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전했다.
고서정·김대종 기자 himsg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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