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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삶,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떠올리며

[온바오] | 발행시간: 2013.11.25일 11:33

80년도 후반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입니다. 의정부 수락산 밑의 호원 파출소에 간첩신고 한 건이 접수 됩니다. 수락산 중턱에 어떤 이상한 사람이 혼자서 밥을 해 먹고 있다는 겁니다. 그 시절만 해도 이른 아침에 산에서 까닭 없이 이리저리 헤매는 사람은 소위 수상한 사람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신고를 받은 파출소에서는 일단 상황 조사를 위해서 경관 한 명을 출동시킵니다. 다름 아닌 해병대를 제대한 제 친구였습니다. 자기 말로는 자기가 해병대 출신이라 혼자서 출동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경찰관이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뻥”이었습니다. 그날 친구가 당직을 섰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아주 불안하고 무서운 마음으로 어깨에 칼빈소총을 메고 허리에는 많은 탄창을 끼고 총알을 장전한 채 간 겁니다. 해병대 출신도 총을 맞으면 죽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았던 겁니다.

긴장된 마음으로 제발 무장 간첩이 아니길 간절히(?) 기도하며 산 중턱에 올라 가보니 어떤 허름한 행색의 중년이 툇마루에 걸터앉아 먼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일단 간첩은 아니라는 직감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물어봅니다. 뭐하는 양반이냐? 이윽고 파출소로 연행된 사람은 간첩도 아니고 우리가 생각하는 아주 수상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귀천'의 천상병 시인이었던 겁니다.

지난번에 한국에 가서 보니 의정부시에서는 천 시인을 기리는 문학 축제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세상인심은 이런 겁니다. 시인의 진정성은 뒷전이고 그 사람의 유명세를 타고 뭔가 사업(?)을 벌리는 겁니다. 물론 축제의 의도가 전부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아무튼 간첩으로 신고까지 당했던 그는 죽어서야 대접(?)을 조금 받나 봅니다.

아주 먼 옛날에도 이런 사람은 또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작은 시골 마을에서 목수 집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언젠가 집을 나간 후에 홀연히 선지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일단 그를 무시합니다. 그가 하는 모든 진리의 말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목수 집 아들이 무슨 선지자냐?"는 가당치 않은 표정과 언동으로 그를 몰아세웁니다.

그는 할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청년은 예수였습니다. 세상의 인심은 이렇게 예나 지금이나 진리를 찾아 인생을 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냉담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는 눈은 오로지 세상에서 성공했느냐 아니냐의 잣대입니다. 시가 밥 먹여주고 선지자가 쌀이라도 한 됫박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인심은 이런 겁니다.

저는 요즘 제 노년의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과연 나는 노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깊이 고민해 봅니다. 가능한 웬만한 세상의 명예와 화려함 그리고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굴레를 다 내려놓고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사실 물질이라는 굴레에서 아주 자유로울 수 있을 겁니다. 있으면 조금 허기진 배를 채우고, 없다고 굳이 배고픔에 안달하지 않는 삶, 누가 뭐래도 내면의 진리를 추구하며 편안하게 하늘을 쳐다 볼 수 있는 삶이라면 아주 행복할 겁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삶을 살려면 보통의 내공으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이런 사람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칫 이상한 행동을 하면 파출소에 신고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세상은 아주 불합리한 모순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토록 애를 쓰며 치열하게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정년퇴직을 하면 바로 패배자 또는 낙오자의 대열에 흡수되고 맙니다. 밤을 새워가며 노력했던 지난 과거의 삶이 주는 대가치고는 아주 허무합니다. 노년의 삶이 다름 아닌 이런 좌절에서 출발이 되는 겁니다. 뭔가 잘못된 겁니다. 아내와 자식들도 상무, 전무가 못된 아버지를 무능력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세상에서 돈을 못 버는 남편과 아버지가 되는 겁니다.

왜 일생을 세상의 성공을 위해서 죽도록 땀을 흘린 사람들의 노년의 삶이 이런 신세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요? 왜 어느 날 찾아 온 인생의 허무 앞에서 속절없이 좌절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리하여 그제야 세상 성공이 사실은 모두 부질없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일까요?

지난번에 한국에 갔을 때 저는 한국 사회의 이런 내면의 가치가 없이 아주 빨리 돌아가는 긴박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지하철과 버스 그리고 수많은 차량이 출근과 퇴근길에 난무하더군요. 그러나 그 속에 있는 대다수의 군중은 세월이 지난 어느 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같은 신세로 될지 모릅니다.

낙엽은 떨어지면 끝이 나는 겁니다. 저도 내년이면 사회에서 퇴직을 해야 하는 낙엽의 나이가 됩니다. 해마다 세상은 낙엽을 정리합니다. 안간힘을 쓰며 더 붙어 있으려 해도 안 됩니다. 말을 안 들으면 작대기로 내려쳐서라도 떨어트립니다. 있고 싶다고 있어야 하는 세상의 자리가 아닙니다. 이래서 우리는 노년의 삶을 대비한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 합니다. 안 그런가요?

비록 낙엽 같은 신세가 되더라도 그 동안 내려놓는 연습을 통해서 다져진 더 깊은 내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패배자가 안 됩니다. 낙오자도 안 됩니다. 아내와 자식들이 한심한 눈으로 바라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냥 준비도 없이 뚝! 떨어지다 보니 허망한 겁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겁니다. 막걸리에 빈대떡으로 때우는 노년도 하루이틀일 겁니다. 잠시의 위로는 그저 잠시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글쓰기를 즐깁니다. 글을 써 보면서 자꾸 저를 내려놓아 봅니다. 자존심과 허영 그리고 멋지고 화려한 노년의 로망 같은 것을 다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책 한권 분량의 원고를 들고 지난번에 한국 출판사를 방문했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난 주변의 지인들과 친척,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대로 별로 달갑지 않은 표정이었습니다. 중국에 가서 엄청나게 돈을 많이 벌어서 금의환향을 해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뜬금없이 원고 한편을 달랑 들고 나타나서 책을 만든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세상의 기준은 이게 아닌 겁니다. 성공의 기준도 물론 저 같은 종류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행복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기 보다는 이제 정년의 나이가 되는 시점에 그래도 좀 더 내면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수 있다는 행복감이 왔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성공을 진정한 성공으로 여기는 세상을 향해서 더 이상은 좌절과 고독을 느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삶을 이렇게 글을 쓰면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도인의 반열에 든 것은 아닙니다. 그럴만한 내공을 쌓으려면 한참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 겁니다.

중국 땅에도 의외로 50대가 많더군요. 많은 고민이 있을 겁니다. 중국에서 성공해서 돌아가야 하는 세상적인 부담도 있을 겁니다.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좌절과 허무는 집착이 차 있는 마음에 찾아옵니다. 비우고 비우는 연습을 하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dw6784@hanmail.net)


귀천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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