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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림박한 어느날 아침의 산책(외14수)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4.06.03일 15:22
 김혁일 시15수

  


설이 림박한 어느날 아침의 산책

정자(亭子)

짜룽습지

낮잠





잉태

락타

한 남자가 걷고 있다

좋은 옷 한 벌

낚시터 지나는 시인

봄아가씨

空園

빈집

소싯적 원족 가던 강



  설이 림박한 어느날 아침의 산책





  오늘도 신기한 하루다

  오늘도 아침이 되니 눈이 뜨여졌고

  밝은 세상 하나가 보였다



  설이다

  쥐하고 돼지가 무엇엔가 날인하고 인계하는 날이라던데

  나에겐

  또 출장 한번 하는 일이겠다



  올해는 내 발에 맞는 새 신 한켤레 사 신고

  좀 더 거뜬하게 걸어보자

  너무 과욕을 부려

  너무 큰 신발을 신는 일은 없도록 하자



  너무 옹졸하여

  너무 작은 신발을 신고 고생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



  새해는

  따뜻한 사람과 따뜻한 이야기 많이 나누자

  은근히 수작이 많은 나무가 되자

  꽃에는 마음 팡팡 주고

  바람에는 머리칼 날려보자



  새해에도 나는

  녀자를 바라볼수 있는 남자여서 행복할것이다

  사랑 같은것에 아직 면역이 안돼

  고뿔 같은데 한두번 걸리는 일

  그런 일은 건강에도 좋다더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각의 모든것에 감사하자

  지금 이 시각 하고 있는 짓을

  서너번은 더 할수 있다는데 감사하자



  지금 나는

  새로운 아침 하나를 걷고 있다

  텅 빈 길에 흩어지는

  자신의 발걸음 소리에 희열한다



  길옆 잎새들의 서걱거리는 소리에 희열한다

  신기하다 오늘도

  산다는것이

  살아서 이것 저것 보고 하고 느낄수 있다는것이

  마냥 신기하다



  새삼스럽게 신기하다





  정자(亭子)



  마음이 훤한 정자는

  유독 바람을 좋아했다

  지나는 바람

  잠간 들르는 바람

  주말이면 꼭 와서 같이 자는 바람

  모든 바람과 바람기가 있는 남자와 녀자를

  정자는 좋아했다



  가슴이 트인 정자는

  시야가 넓었다

  산기슭 껴안고 도는

  강 하나

  그리고 강 건너

  평야 하나 쯤은

  넉넉히 품을수가 있었다



  정자는

  벽이 없다

  고로 문이나 창이 따로 필요없다

  정자에겐

  꿋꿋한 기둥들과

  높은 삿갓 하나가 필요할 뿐이다





  짜룽습지



  (짜룽, 흑룡강성 치치할시 근처에 위치한 야생조류 서식지. 특히 두루미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짜룽습지는 새들의 천당이다



  봄과 여름이 요를 깔면

  구름이 그 위에 이부자리를 펴고

  그러면 모든 암컷과 수컷들이 와서

  사랑을 하고

  합방을 하고

  새끼를 친다



  짜룽습지엔

  목이 길고 다리가 긴 두루미가 서식한다

  키가 큰 갈대가 서식한다

  머리칼이 긴 바람이 서식한다



  짜룽습지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왈츠 추려는 늙은부부처럼

  짜룽의 하늘과 땅은

  두 팔 벌려 맞잡고

  종일 마주본다

  그러면 보다못해

  왈츠는 바람이 추고

  쌍을 지은 두루미가 추고

  흐르는 계절이 춰준다



  짜룽습지는

  새들의 천당만이 아니다

  짜룽습지엔

  도시에서 밀려난 불타는 노을과

  찬란한 별들이 서식한다

  그리고 나의 야하고 순한 애인 하나가

  서식한다





  낮잠



  한여름의 정오를

  대자로 누워

  낮잠을 잔다

  바람과 제비가 마음대로 드나들게

  사립문 현관문 다 열어놓고

  낮잠을 잔다

  멍멍이도 주인을 닮았는지

  집을 지키지 않는다

  개가 안지키는 마당엔

  꽃들이 무성하다

  나에게

  이제 더 잃어버릴게 무엇이 있는가

  바람아

  재간 있으면 내 마음을 훔쳐가라

  핸드폰은 끄고

  전화선은 빼고

  낮잠을 잔다

  나에게

  낮잠보다 더 큰 일이 무엇인가

  이세상

  낮잠 자고 일어나는 오후보다

  더 찬란한것이 무엇인가

  초음속으로 아찔아찔하게 회전하는 세상 하나를

  저만치 지척에 두고

  한여름의 정오를

  대자로 눕힌다

  그렇게도 원통하던 인생이

  이젠 더 원통하지도 않으려나 보다

  그렇게도 야속하던 세상이

  이젠 더 야속하지도 않으려나 보다

  흘러가는 세월을 내가 어쩔것인가

  낮잠이나 자자





  풀



  꿀벌과 나비가 찾지 않는

  풀은



  작은 비방울에도 휘청이는

  풀은



  혼자 그리워하고

  혼자 설레이는

  풀은



  호소할 억울함보다

  호소할 행복이 많은것 같은

  풀은



  아

  어느 봄날

  원족 갔다 둑에서 본 풀은



  끝내

  뭐라고

  나에게 말을 못하는 풀은



  나와

  풀은





  꽃



  나무는 아프지 않다

  나무는 꽃이 아프다



  나무는 아프지 않다

  나무는 꽃이 아픈것이 아프다



  나무는 아프지 않다

  나무는 많이 아프다





  잉태



  긴긴 세월 당신을 찾는 동안

  내가 당신을 잉태하고 있는줄을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날 아침

  스치는 바람에 잉태하고

  나의 속에서 은밀히

  당신은 하루하루 커갔고

  만삭이 되여서도 자기가 산부인줄을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그립고

  당신이 그렇게 먼것은

  당신이 바로 내 안에 있기때문인줄

  나는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 당신을 생산하고 나면

  나는 참으로 허전할겁니다

  갑자기 가벼워지는

  너무나 너무나 가벼워지는

  그 허무와 같은 무게를

  내가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아 이제 나는

  당신을 찾아 하늘 끝까지 날아온 새

  이제 나는 오히려

  더는 날지 못하는

  한마리 비만한 새이고싶습니다

  평생 당신을 품고

  평생 당신을 기다리는

  미욱한 펭귄이고싶습니다





  락타



  먼 길을 가는 락타는

  목이 길다

  희망은 절망보다 길어야 하기때문에

  락타는 목이 길다

  밤에도 락타의 목은

  별들을 향한다

  털도 모래의 색이고

  등도 모래산의 능선이지만

  그 순한 눈을 보면

  맑은 샘이 보인다

  갈증과 인고의 흔적은 없고

  오로지 너그러움이 고여있다

  낙타가 있는 한

  사막엔 길이 있다

  낙타가 있는 한

  사막엔 샘물이 있다

  무수한 마을과城과 력사를 묻어버린 사막은

  언젠가는

  저 락타도 묻어버릴것이다

  그러나 저 선한 눈

  모든 고난을 초월한 저 눈빛은

  묻히지 않으리라

  오늘도

  래일도

  긴 목을 장검처럼 뽑아들고

  락타의 먼길은

  계속되리라





  한 남자가 걷고 있다



  한 남자가 걷고 있다

  한 시대를 걷고 있다



  한 남자가 걷고 있다

  반듯이 걷고 있다



  잘 걷는것은 타고난 천성인지

  긴 다리와 큰 보폭은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남자 가라사대



  남자는 좇지 않는다

  남자는 쫓기지 않는다



  남자는 날지 않는다

  남자는 날리지 않는다



  들을 지나는 구름의 투영처럼

  혼잡한 거리를

  남자는 소리없이 간다



  먼 길만큼이나

  남자의 그림자는 길다

  락조만큼이나 길다



  한 남자가 걷고 있다

  한 세상을 걷고 있다



  걷는 남자의 뒤를

  하얀 살수차가 따라 지나고



  거리엔 소리없이

  이 겨울의 첫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좋은 옷 한벌



  좋은 옷 한벌은 평생의 친구다



  좋은 옷은

  좀 구겨도

  주름이 오래가지 않는다



  좋은 옷은 성품이 너그럽다



  좋은 옷은 다른 옷을 질투하지 않는다

  아무 옷 하고나 잘 어울린다



  좋은 옷은 옛친구같다



  좋은 옷은

  입을수록 편하고

  헐고 퇘색할수록 멋이 난다



  좋은 옷은 류행을 타지 않는다

  사랑처럼 쉽게 식지도 않는다



  좋은 옷 한벌은

  죽을 때까지 같이 간다





  낚시터 지나는 시인



  오늘도 제방 아래쪽엔 낚시군들이 진을 치고 있다



  낚고 낚이는 일

  먹이를 위한 음모와 공방과 겨루기는

  이 아름다운 봄날 아침에도 계속된다



  자유와 미끼 사이를 맴돌며

  고기들이 기웃거리고

  고기 이외의것들이 호시탐탐 노린다



  오늘도 제방 아래쪽엔 강물이 흐른다



  오늘도 빈손의 시인은

  마른 팔뚝으로 바람을 휘저으며

  제방 위를 활보한다



  흐르는 강을 거슬러

  실날같은 외길 팔십리

  봄을 마중간다





  봄아가씨



  뭐가 속상해

  질질 사나흘을 거푸 울더니



  뭐가 좋아

  어제부터는 해쭉해쭉

  낯이 간지럽게 웃더니



  오늘은 아지랑이로 가물가물

  밭머리까지 찾아와

  누구와 밀회하냐



  변덕 많은 아가씨야

  변덕이 많아도 마음은 꽃씨 같은 아가씨야



  너무 사랑하는 마음 하나 탈없이 그냥 주기엔

  조금은 억울하겠지



  조금 미치지 않고는



  봄이 아니겠지

  사랑이 아니겠지





  空園



  공원은 空園이 좋다



  사람도 가고 새도 가고 바람도 가고

  잔잔한 비만 가득한

  空園이 나는 좋다



  빈 자리가

  오히려 더욱 충만하다



  空園은

  마음을 비운

  스님같은 나의 친구



  아무 말 없으셔 너무 좋다

  길 하나를 비워 날 맞아주셔

  정말 고맙다





  빈집



  아무도 안사는 집을

  빈집은

  그래도 잘 치우고 산다



  매일 유리창을 닦고

  마당을 쓴다

  오는 이 없는

  길가의 풀도 뽑고

  꽃씨도 뿌려보고

  그리고

  도연명을 흉내내며

  잠간 먼 산을 바라보기도 한다



  빈집은

  외로운것보다

  빈것이 좀 힘들다

  빈것보다도

  꿈에 왔다 간 사람이 남긴

  체취와 온기가 더 힘들다



  그러나 빈집은

  겨울 창턱에도

  꽃은 피고 진다



  아무도 안사는 빈집에는

  바람이 드나들고

  나무가 벗이 된다



  아무도 살지 않는 빈집에는

  빈집이

  혼자 산다





  소싯적 원족 가던 강



  들꽃 꺽고 노래 부르며

  원족 가던 뒷강



  소년이 뒷강으로 원족가면

  강도 흥얼거리며 어디론가 원족 가고 있었다



  원족 간 소년은

  원족 가는 강을 붙들고 종일 놀다

  황혼무렵에야 놓아주군 했다



  아득히 세월이 흐른 뒤

  소싯적 원족 가던 소년은

  그때 같이 놀던 뒷강을 다시 찾아간다



  아득히 세월이 흐른 뒤

  그 때 원족 가던 강도 한번쯤은 돌아와

  그 때 소년과 놀던 모래톱을 서성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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