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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4)-지식청년대오속에서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2.02일 15:28

지식청년시절(앞줄 왼쪽 첫사람).


1974년 초중을 졸업하고 나는 다른 동학들과 마찬가지로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을데 대한 당과 국가의 호소에 호응하여 안도현 복흥향 봉원촌에 지식청년으로 내려갔다.

지식청년이 된후 나는 환경의 변화속에서 시대의 조류에 순응하면서 기회를 틀어쥐고 자기의 운명을 개변해야겠다는 결의를 또한번 다지였다. 나는 내 자신의 운명을 개변하여야만이 우리 가정의 운명도 개변시킬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가정의 중임을 한몸에 맡아나선다고 생각하니 신심과 희망으로 충만되였다.

참다운 고려를 거친후 나는 우선 입당부터 쟁취하려 하였다. 당시 공산당조직에 가입한다는 것은 사회의 인정을 받는것으로 될뿐만아니라 가정의 크나큰 영광이기도 했다. 더우기 입당하면 좋은 직장을 찾기에도 편리하고 돈도 벌수있어 어려운 우리 가정살림에 보탬할수 있다고 생각했던것이다.


당원에 빨리 가입하기 위해 나는 집체호에서 죽기내기로 일했다. 매일 새벽 3시도 채 되지 않은 때에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불을 지피고 집체호의 밥을 지었다. 밥을 짓고난후에는 집체호청년들을 깨워 식사를 하게 하고 자기도 몇숟가락 뜨고는 또 바삐바삐 탈곡장에 나갔다. 그리고는 즉시 호르라기를 불면서 사람들에게 일터에 빨리 나올것을 재촉하군 했다.


낮에는 농민들과 남성지식청년들과 함께 힘든 농사일에 뒤질세라 따라했고 저녁이 되여 일터에서 돌아오면 또 일군들의 공수를 기입하느라고 바삐 돌아치군 했다.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나는 죽기내기로 일했다. 남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해 나는 또 집체호 청년들의 빨래를 도맡아해주었다. 틈만 나면 집체호청년들의 이불, 양말, 신 같은것을 도맡아 씻어주군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나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몇달간의 시간이 흐르자 집체호의 청년들은 모두 《최정금이는 사람됨됨이도 좋고 밥도 잘 지을뿐만아니라 부지런하고 약삭바르다.》며 극구 나를 민병대장으로 선거하였다. 나는 끝내 구슬땀을 흘려가며 적극 진취하여 출세의 발판을 닦아놓았던것이다.


1976년 1월, 나는 당조직에 정중하게 입당신청서를 써바쳤다. 그런데 나와 함께 입당신청서를 써바친 사람중에는 또 한집체호에 있는 동창생도 있었다.


그녀는 나의 동창생이지만 나와는 비할데 없이 가정조건이 우월하였다. 아버지가 연길시 모 국 국장으로 사업하고있었던 관계로 그는 꽤 여유가 있었고 자유롭게 집체호생활을 누리고있었다. 그녀는 나처럼 일찍 일어나 여러 사람들을 위해 아침밥을 짓지 않아도 되였고 더우기 남을 위해 옷가지들을 씻어주지 않아도 되였다.

입당신청서를 써바친 한달뒤 그녀의 입당신청은 순조롭게 비준통과되였으나 나의 신청은 비준되지 않았다. 원인은 사회에 불만이 많았던 큰어머니가 《모주석을 타도하자》는 반동표어를 써서 울분을 토로하였다는것이다. 당시 력사조건하에서 이런 표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것이다. 그것은 엄연한 《현행반혁명》이였다.

친척가운데 현행반혁명분자가 있다는것은 나의 입당을 더욱 묘연해지게 할뿐이였다. 반년 넘게 쌓아온 나의 노력의 대가가 일시에 물거품이 되여버리는 좌절감과 실망감 그리고 망연함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그러나 나의 지극정성이 주위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조직에서는 연구를 거친후 나에게 다시한번 고험할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 고험의 시간들은 그야말로 나에게 하루가 천추같은 힘든 시간들이였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집체호터밭에서.


나는 갑절 힘내여 사업했고 죽기살기로 일했다. 집체호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면서 그들의 긍정을 받기 위해 나는 멈출줄 모르는 기계마냥 분주히 돌아쳤다. 다른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만류할 때에야 일손을 멈추군 하였다. 반년후 나의 입당도 마침내 비준되였다.


그때 동창생은 이미 공사부녀주임으로 발탁되여 사업하면서 월급생활을 하고있었다. 나는 그저 속으로만 운명의 불공평함을 탓하는수밖에 없었다. 능력은 물론 내가 들인 공력과 치른 대가에 비하면 결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던것이다.

당시 내가 하향했던 마을에는 대과교원이 부족하여 촌에서는 나에게 교원사업을 할것을 요구했다. 비록 한족학교에서 몇년간 한어를 배우긴 했지만 나의 한어수준은 한족들과는 비할수조차 없이 차이가 많았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기어이 나에게 정치과 교학을 하도록 배치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지 일체 정력을 몰부어 최선을 다하는 성질이 있다. 하는바 하고는 가장 뛰여나게 잘해보자고 나는 작심하고있었다.

과당수업을 잘하기 위해 나는 교수내용을 기록할뿐만아니라 어법과 발음에 각별히 주의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1시간 준비할 교수안을 나는 항상 두세시간 품을 들여가며 완수하군 했다. 무슨 일에서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만 성공할수 있었던것이다.

매달 로임을 6원씩 받는 대과교원일터에서 나는 옹근 3년간 사업했다. 비록 힘들긴 하지만 가정의 생활부담을 덜수 있다는것이 그리고 어머니를 위해 뭔가를 할수 있다는것이 가장 큰 위안이였다. 이렇게 살아가는것이 내게는 가장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이였다.


당시 내가 교학하던 농촌학교는 안도현에서 60여리나 떨어져있어 한번 집에 다녀오자 해도 여간만 힘들지 않았다. 해마다 겨울방학이거나 여름방학때에라야 집으로 돌아올수 있었다. 돈을 절약하기 위해 나는 마을에서 산 닭알이며 개구리기름(페결핵치료에 좋다고 함)을 큰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도보로 산을 넘고 령을 넘어 60여리 길을 걸어 안도현 기차역까지 와서는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군 했다.


해마다 집으로 돌아올 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 마침내 집에 당도하여 부모형제를 만나는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비록 받은 로임은 얼마 안되고 또 집에 갖고온 물건도 많지는 않지만 딸자식으로 태여나 가정을 위해 어려움을 분담할수 있다는것이 그토록 즐거웠고 나로서도 대견스러웠다. 오빠의 병은 충족한 영양을 공급받아야 했기에 나는 로임의 대부분을 거의 집에 부쳐보내군 하였다. 가급적이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라도 자기한테는 1전한푼도 허투로 랑비하지 않았다. 나는 그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악물고 견지하면서 가정의 중임을 두어깨에 짊어지고 끝까지 가려고 뼈물었다.


/연변국제무역구룹 회장 최정금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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