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31)는 지난해 1월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후즈히어’를 통해 신모씨(52)를 만났다. 신씨는 자신을 보험사인 AIA사의 홍콩 지사에서 헤드헌터 겸 국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랜 해외생활로 한국이 그리워 말을 걸게 됐다며 호감을 표시했다. 대화는 거의 매일 새벽까지 이어졌다.
사진교환 외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신씨는 “올해 안에 당신과 결혼하고 싶다”며 청혼을 했다. ㄱ씨는 지난해 2월 신씨를 만나기 위해 신씨가 요구하는 한국제품과 옷가지, 중국돈을 소포로 부치고 홍콩으로 갔다. 신씨는 ㄱ씨의 호감을 사기 위해 홍콩 시내를 함께 구경했다. 홍콩에서 머무는 마지막 날 신씨는 “지갑이 무거워서 그러니 좀 맡아달라”며 자신의 지갑을 ㄱ씨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호텔에 돌아와 “지갑이 없어졌다”며 IC카드를 재발급 받을 때까지 신용카드를 빌려달라고 했다.
자신의 가방에 지갑을 넣었다 잃어버린 것에 죄책감을 느낀 ㄱ씨는 순순히 신씨에게 신용카드 한 장을 건넸다. 홍콩 체류비와 소포값 1500여만원은 고스란히 ㄱ씨 몫이 됐다. 신씨는 ㄱ씨의 카드로 2050여만원을 빼 썼지만 단 한 번도 돈을 갚지 않았다. 그는 “IC카드가 배송됐지만 직접 받지 못해 반송됐다”는 핑계를 대며 돈과 물건을 요구했다. 2011년 1~11월까지 ㄱ씨가 신씨에게 보낸 돈과 물건은 7000만원이 넘었다. 그 사이 ㄱ씨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ㄱ씨는 “제발 일부만이라도 갚아달라”고 사정했지만 신씨는 연락을 끊어버렸다. 중국 광저우 집까지 찾아갔지만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그 와중에 ㄱ씨는 자신과 같은 수법으로 사기를 당한 여성이 4명이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의 피해금액만 2억원이 넘었다. 중국 현지 피해여성도 3명이나 있었다. 신씨는 4건의 사기혐의 등으로 한국에서 지명수배가 되자 2008년 중국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이들을 도와주지 않았다.
경찰은 “지명수배를 했으니 기다려라”는 말만 반복했다. 광저우영사관은 신씨의 중국 현지 집주소까지 알려줬지만 “수사권이 없다”며 연락을 피했다. 대전 중부서 관계자는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뿐 아니라 ㄴ씨의 고소장을 접수받은 대전 둔산서도 기소중지 처리했는데 뭐가 문제냐”며 “인터폴 공조는 고려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ㄷ씨의 금전적 피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소장 접수를 거부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내에 피해자가 많아도 중국 현지 피해자의 고소·고발이 없으면 중국경찰이 협조를 잘 해주지 않는다”며 “피해상황을 확인한 뒤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류인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