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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39)—용감무쌍한 김성범련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12.01일 08:41
1948년에 이르러 도처에서 동북민주련군의 심한 타격을 받은 국민당군은 새로 부임한 동북국민당군 사령 위립황의 지휘에 따라 동북의 주요 대도시에 포진하고 중점방어에만 여념이 없게 되였다. 당시 장춘과 길림의 국민당군병력을 보면 장춘에 신7군과 지방보안부대 4만여명이 있었고 길림시에 60군과 보안부대 약 3만여명이 포진하고있었다. 동북에서의 전황이 날로 불리해지자 길림시의 국민당 60군은 소풍만발전소를 파괴하고 장춘으로 철수해 신7군과 합류하기로 했다. 이를 미리부터 감지한 동북민주련군 총부에서는 길림시와 소풍만사이의 적거점을 제거하면서 60군으로 하여금 쉽게 길림시를 포기할수 없게 만들려 했다.

동북민주련군총부의 명령에 따라 새로 편성된 조선족위주의 독립6사는 길남군분구의 72퇀, 74퇀의 배합하에 소풍만쪽으로 진격했다.

1948년 1월 21일, 독립 6사 16퇀 2영 7련은 눈길을 헤치며 행군하던 도중 오마툰(五马屯)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소풍만으로 통하는 주요한 적의 거점인 오마툰에는 국민당 60군 림시편성한 21사 3퇀 한개 영이 수비하고있었다.

토비숙청시기부터 풍부한 전투경력을 가지고있는 7련은 새로 부임한 련장 주광문의 지휘하에 신속히 적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전사 강희진(康熙珍)은 비발치는 탄우를 무릅쓰고 지주집 토성에 붙어서서 총을 바치라고 소리쳤다. 놈들이 대답이 없자 그는 창문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재차 투항하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지주집뜨락으로부터 50여명의 적들이 손을 들고 투항했다. 그는 혼자서 50여명 적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던것이다.

7련의 전투영웅 신승철(申承哲)도 도주하는 적 12명을 포로하고 마을어구 절당에 숨어있는 30명을 생포하였다. 오마툰 습격전에서 7련은 30분도 안되여 적의 방어진을 헤침으로써 독립6사 16퇀이 국민당 60군의 한개 영을 소멸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전투후 신속하고도 용감히 싸운 7련은 사단부로부터 《용감하고 완강한 김성범련(英勇顽强的金成范连)》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독립6사의 첫 영웅련인 7련은 김성범련, 이 련의 초대련장인 김성범은 1924년 조선평안북도의 한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태여났다. 그는 1940년에 일제의 강제이주로 하여 중국 하북성 로태농장에 오게 되였다. 반일사상이 강했던 김성범은 마을 70여명 청년과 함께 하북에 있는 조선의용군에 참가해 광복후 동북으로 왔다.

1946년 조선의용군 5지대를 따라 연변에 나온 김성범은 길동군구 경비 2려 2퇀 2영 7련 련장으로 임명되였다.

김성범련이 토비숙청을 했던 왕청 천교령부근의 마을.

독립3퇀 편성시 2영 7련(김성범련) 기념사진.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천교령진서남부에는 천교령진 제1학교 옛터가 자리잡고있다. 묘령으로 통하는 도로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해방전쟁시기 독립6사 16퇀의 유명한 김성범련이 주둔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부대가 주둔하였던 낮은 단층집들은 다 허물어지고 부대가 훈련하였던 텅 빈 운동장만이 계속 남아있다.

1946년 3월 26일, 천교령지역에서 토비숙청을 마친후 길동군구는 이곳에서 100여명 조선족청년들을 모집해 길동보안퇀 1려 2퇀 7련으로 편성하였다. 이때로부터 7련은 김성범련장의 지휘하에 연변에서의 토비숙청을 완수하고 장춘, 길림쪽으로 진격해 간고한 전투를 치르면서 수많은 전공을 세웠다. 


김성범련장은 지도원 계홍일(桂洪一)과 손잡고 초창기부터 부대의 전투력을 강화하고 전사들의 사상을 통일하기에 힘썼다. 전사들과 고락을 같이 하는 김성범련장과 계홍일지도원의 교양과 훈련을 거쳐 7련은 두려움 모르는 영웅적 부대로 성장했다.

1946년 5월, 7련은 라자구에서의 토비숙청에서 한번에 적 30여명을 생포하고 산포와 평사포, 중기관총을 비롯한 많은 무기를 로획한 전과를 올렸다.

승리적으로 토비숙청을 마친후 7련은 할바령수축공사에 나섰다. 국민당군이 곧 쳐들어올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김성범 련장은 《로동도 전투와 마찬가지다! 이곳도 전장이다!》라는 구호를 제기하였다. 7련 전사들은 이 구호에 따라 주야로 방어공사수축에 달라붙었다. 그리하여 7련에는 구자준(具兹俊), 정도학(郑道学), 장창록(张昌录), 허만정(许满正), 리춘희(李春熙) 등 많은 로력모범이 나타났다. 이가운데 정도학, 장창록, 허만정, 리춘희는 길동군구로부터 로동영웅칭호를 수여받았으며 김성범도 이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46년 겨울부터 1947년초까지 부대는 교하에서 재정비를 거치면서 더 엄격한 훈련을 진행했다. 김성범련장은 전사들의 계급적 각성을 높여주기 위해 늘 전사들과 담화하면서 마음을 나누었다. 그의 교육과 감화를 받은 전사들은 다투어 《인민의 해방을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혈서를 써서 바쳤다.

사상교육과 간고한 훈련을 통해 부대는 강철의 대오로 성장하였고 전투에서 드높은 전투력을 과시했다. 1947년 3월 7일에 있은 간고한 사간방전투에서 7련 전사들은 미국제무기로 무장한 국민당 정규군과의 첫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모르는 전투정신을 발양하였다. 전사들은 빗발치는 탄우속을 헤치며 지혜롭게 적의 화점을 제거하였고 총탄이 떨어지만 서슴없이 총창으로 적과 백병전을 치렀다.

포수 리동원은 포탄이 떨어지자 총창으로 적을 찔러넘기고 적의 총을 빼앗아 계속 싸웠다. 그는 적 다섯놈을 쓰러뜨리고 자기도 적탄을 맞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폭파반장 정청송은 중상을 입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적의 화점을 제거함으로써 목숨을 바쳐 전사들의 공격로선을 열어주었다. 사랑하는 전사들이 하나하나 쓰러지는것을 본 김성범련장의 눈에서는 분토의 불길이 일었다. 그는 직접 기관총을 들고 한개 반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돌진했다. 이들은 적탄을 헤치고 희생된 부영장 홍충암과 6련 지도원 조충렬의 시신과 부대 비밀문서들을 빼앗아냈다.

적이 강하고 아군이 렬세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7련은 적 30여명을 격살하고 80여명을 생포함으로써 퇀부로부터 《용감하고 신속하며 과단한 전투련》이라는 칭호를 수여받았다. 전투후 김성범, 주광문, 구자준 등은 전투영웅칭호를 수여받았고 리동원과 정청송은 길동군구 전투영웅으로 추인되였다.

사간방전투를 앞두고 쓴 김성범련장의 친필 결심서.

전투영웅 리동원의 립공증.

전투영웅 정청송의 립공증.

전투영웅 정청송의 학생시절 모습.

김성범련의 제2임 련장 주광문 초상화.

책에 기록된 김성범련의 영웅사적


1947년 11월에 부대가 길림부근에서 활동할 때 김성범은 부패장 권태철(权太哲)과 함께 로획한 미국제 중기관총을 실험사격하던중 의외의 사고로 수류탄이 폭발하면서 희생되였다. 권태철패장의 허리춤에 찼던 수류탄 도화선이 나무가지에 걸려 당겨졌던것이였다.

김성범련장이 희생된후에도 7련 전사들은 두려움 모르는 전투적 의지를 잃지 않았다. 그들은 새로 부임한 주광문련장의 인솔하에 철가자산 전투에서 8분만에 적 방어진을 헤치고 100여명 적을 소멸하는 전과를 보여주었고 오마툰습격전의 승리를 이끌어냈던것다.

김성범련과 같은 우수한 전투집단으로 편성된 조선족부대인 독립6사와 독립 11사, 독립4사는 기타 형제부대와 함께 장춘과 길림사이에서 국민당군의 발목을 단단히 잡고 점차 숨통을 조여나갔다.

기진맥진한 길림시의 국민당 60군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드디어 최후발악을 시도하고있었다. 장춘과 길림부근에 포진한 여러 독립사단의 허점을 찾아 신속히 철수하지 않는다면 길림시의 60군 주력은 꼼짝 못하고 소멸될것이였다. 국민당군은 길림시주변에서 아군을 매복습격하고 기회를 빌어 장춘으로 도주할 음험한 궤계를 꾸미고있었다.


자유와 해방을 위한 항쟁은 더욱 많은 희생과 더욱 많은 피를 요구하는듯싶었다.

/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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