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아시아人 비하 장면
스웨덴 방송사 "편집할 것"
여론조사 80% "검열 반대"
반세기 가까이 세계의 사랑을 받아온 스웨덴의 TV 시리즈 '말괄량이 삐삐'〈사진〉에서 인종차별적 대사를 삭제하는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지난 9월 스웨덴 방송사 SVT가 "삐삐의 대사 '우리 아버지는 검둥이들의 왕'에서 '검둥이들의'를 빼고, 삐삐가 눈꼬리를 추켜올리며 아시아인을 흉내 내는 장면을 삭제하겠다"고 밝힌 이후, 스웨덴에선 대사 편집에 반대하는 의견이 쏟아져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말괄량이 삐삐'는 스웨덴의 여성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1945년 발표한 아동문학으로 65개 언어로 번역본이 나올 만큼 주목받았고, 원작을 바탕으로 방송사 SVT가 1969년에 제작한 TV시리즈물은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작가 린드그렌의 후손을 비롯해 방송사의 결정을 지지하는 이들은 "당시 작가가 쓴 표현이 인종차별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닌 게 명확하니 이번 결정은 작가의 정신을 살린 것"이라며 대사 편집을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대사 편집은 검열과 마찬가지"라며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스웨덴 유력 일간지의 온라인 여론조사에선 응답자 2만5000명의 81%가 '삐삐 대사를 편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답했다.
이런 논란에 대해 작가의 손자 닐스 니먼은 "'말괄량이 삐삐'는 스웨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일종의 성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처럼 성스러운 무언가를 바꿀 땐 많은 사람이 흥분하게 된다"고 말했다. 작가의 후손들은 방송사가 인종차별적 대사를 편집하는 것엔 동의했지만, 원작인 책에 담긴 '검둥이'라는 표현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NYT는 "미국의 '말괄량이 삐삐' 번역본은 1950년대부터 '검둥이들의 왕'이라는 표현이 남쪽 바다 섬에 살고 있는 '식인종들의 왕'으로 바뀌어 발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곽수근 기자]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