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의시위 전국서 잇따라… 서부지역 곳곳 폭력·약탈
버락 오바마(얼굴) 대통령이 미국의 흑백 인종 간 불신과 갈등은 ‘역사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에서는 서부지역 도시를 중심으로 ‘에릭 가너 사건’에 분노한 흑인들의 시위가 점점 폭력·약탈화하고 있어 인종 폭동의 도화선이 언제 불붙을지 모르는 분위기다.
7일 미국의 뉴욕과 캘리포니아 버클리 등의 도시에서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팔던 가너를 목졸라 숨지게 한 뉴욕경찰국(NYPD)소속 백인 경관 대니얼 판탈레오에 대한 대배심의 불기소 평결로 촉발된 시위가 닷새째 이어졌다. 일요일인 이날 뉴욕의 미드타운에서는 30~50명씩 모여 비교적 평화롭게 시위가 전개됐다.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역에서는 전일 수십 명의 시위대가 죽은 듯 바닥에 드러눕는 이른바 ‘다이인(die-in)’ 시위가 벌어졌다. 밤이 되면 폭력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 뉴욕 경찰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일부 내용이 공개된 흑인 케이블 채널 베트 네트워크 인터뷰에서 “이 문제는 하룻밤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면서 “우리 사회와 우리 역사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진전을 이뤘다는 점을 이해하면서 우리 모두의 고통으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과 50년 전의 사건을 동일시할 수는 없고 여러분의 부모나 조부모에게 물어보면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답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전체 인터뷰 내용은 8일 오후에 방영된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는 6일 오후 5시쯤 가너의 죽음에 항의하는 흑인 시위대의 가두행진이 전개됐다. 시위는 처음에는 평화롭게 진행됐지만 밤이 되자 200여 명 정도가 식료품점 트레이더 조 등의 창문을 깨뜨리고 물건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오클랜드 트리뷴에서는 시위대가 돌과 병을 던져 경찰차를 파손시켰다. 경찰도 고무총탄과 최루탄 발사로 대항했다. 제니퍼 코츠 버클리 경찰 대변인은 “6명이 현장에서 체포됐고, 경찰 한 명의 어깨탈골을 포함해 경찰 세 명이 부상했다”고 전했다. 시애틀에서는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막는 경찰에 돌을 던지는 투석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시카고, 마이애미, 라스베이거스 등에서도 공정한 법 집행을 요구하는 흑인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워싱턴=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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