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오늘의 "잊을 수 없는 역사" 시간에는 철도유격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항일전쟁시기 루난(魯南) 지역에 철도선에서 활약한 항일대오가 있었습니다. 이 대오의 존재로 인해 일본군의 철도 교통이 몸살을 앓았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950년대, 흑백영화 "철도유격대"가 중국 국민들에게 철도유격대의 영웅적인 사적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 영화 삽곡 가사는 항일전쟁시기 철도유격대가 일본 침략자와 펼친 투쟁 방법을 구체적으로 종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항일전쟁시기, 적과 아군 간의 역량에 현저한 차이가 있었기에 철도유격대 대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일본군과 공방전을 벌이며 적의 역량을 소모시켰습니다.
철도유격대는 1938년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현지의 철도노동자와 실업한 광부, 도시의 빈민들로 구성됐습니다.
기자는 자오좡시에서 당시 철도유격대 부대장을 했던 왕즈성 씨의 장남 왕진궈 씨를 만났습니다.
올해 66세인 왕진궈 씨는 반세기 전 부친 왕즈성 씨로부터 70여 년 전 철도유격대가 전쟁을 벌였던 이야기를 들어왔다고 합니다.
당시 자오좡의 일본군 정보기관이었던 정타이상사를 기습하던 과정은 상당히 아슬아슬했다고 합니다. 정타이상사 기습 과정은 후에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1939년 가을, 팔로군의 반소탕 작전을 협조하고, 적의 기고만장한 기세를 꺾어놓기 위해 32명 철도유격대원이 자오좡 기차역 부근에 위치한 정타이상사를 습격했습니다.
일본 침략자와 끊임없이 전투를 벌이는 과정에서 철도유격대는 점점 커져갔습니다.
1940년 하반기 철도유격대 대원이 15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대원들은 끊임없이 일본군의 거점을 교란하고 철도선에서 여러 가지 물품을 빼돌렸으며 일본군이 비밀 교통선을 건설하지 못하도록 파괴했습니다.
당시 팔로군 115사 사령관이던 뤄룽환은 루난철도대를 격려하는 편지에 "철도유격대는 강철로 만든 단단한 칼이 되어 적의 흉부를 찔렀다"고 평가했습니다.
일본 침략군과의 투쟁에서 많은 노동자 출신의 철도유격대 대원들이 소중한 목숨을 바쳤습니다.
1946년 2월, 루난군구 당위는 철도유격대를 재편하기로 했습니다. 철도유격대 마지막 정치위원을 맡았던 정티 장군은 철도유격대 경험 총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철도유격대가 장대해질 수 있은 것은 국민 대중이라는 든든한 뒷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철도유격대는 국민 대중의 대오이며 유격대의 전공은 광범한 루난 민중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