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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베란다 '채마전'에서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9.28일 09:26

 (녕안) 황향숙

  아파트생활 20여년내내 울바자 시골터전이 못내 그리웠던 나는 올봄에 베란다에 커다란 화분통을 올망졸망 20여개 안아다놓고 '채마전'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장에 나가서 영양단지모를 종류별로 두포기씩 사다가 화분통에 옮겼다. 비료를 치지 않은 순 록색채소를 먹을수 있다는 생각과 더불어 집안에 펼쳐질 록색세계를 생각하니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나는 식물을 키우는 일이 물만 자주 주면 되는줄로 알았다. 그래서 매일 게으름 없이 듬뿍듬뿍 물을 주었다. 그런데 식물들마다 줄기가 실오리처럼 가느다란데 키만 잔뜩 커가지고는 몸체를 가누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우뚱거려서 포기마다 나무오리대를 세워주고 끈으로 동여매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못된것 같아 아버지를 기술원으로 모셔왔더니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외자랐으니 이제부터는 며칠씩 물을 주지 말라고 하셨다. 며칠 물을 안줬더니 쨍쨍 비추는 해빛을 이기지 못해 기윽자로 폭 꺾어지며 오그라들었다. 말라든 잎사귀들이 아래로 축 처진 품이 희망이 보이지 않아 아예 확 걷어내 버렸다.

  그래도 겨우 고추모는 건졌다싶었는데 웬 일인지 잎사귀가 허옇게 얼룩얼룩 마르기 시작했다. 손가락만한 고추가 서너개씩 달려있는지라 포기하기는 아쉽고 하여 속을 태웠다. 문득 어느 동영상에서 갓 지은 햇밥을 두 그릇에 담고 매일 한그릇엔 좋은 말을 하고 다른 그릇엔 나쁜말을 했더니 한달이 지나니 썩은 정도와 곰팡이가 완전 달랐다던것이 생각났다. 그래서 나도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고추화분통앞에 마주앉아서 "고추모야, 사랑한다! 앓지 말고 우썩우썩 자라거라!" 하고 인사까지 했지만 상황은 개변되지 않았다.

  너무도 안타까와 그 상처입은 잎사귀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쥐고 "어디 아픈거니?"하고 물어보는데 손의 감각이 이상했다. 글쎄 고추잎뒤에 잔잔한 하루살이같은 작은 벌레들이 다닥다닥 한벌 덮혀있는것이였다. "얼마나 아팠을가?" 몸둘바를 모를 정도로 고추모에게 미안했다. 그래서 맑은 물을 떠다놓고 한잎한잎 정성들여 내손에서 재벌 상처입지 않게 깨끗이 씻어주었다. 련 며칠 그렇게 씻어주었는데 기적같이 벌레가 더 끼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파란점같은 애기고추가 잎사귀사이로 빠끔 얼굴을 내밀고 나를 보고 파랗게 웃어주는것이였다.

  불현듯 잎이 말라드는것 같아서 해빛이 너무 강해서 그러나부다 하고 뒤베란다에 가져다 놓은 부추 화분통이 생각났다. 드문드문 물은 준것 같은 데 그사이 가을맞은 풀잎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다. 부추는 생명력이 강해서 꼽아만 놓으면 잘 자란다더니 이상하게도 내 손에서는 아무 식물도 잘 자라지 못했다. 그래서 먼저번에 베여낼 때 죽을가봐 걱정되여 그루를 너무 높게 베였나? 하는 생각에 가위로 밑둥까지 싹뚝 잘라내고 마른 검불을 깨끗이 걷어내 주었다. 한 이틀 지나니 어느새 부추의 밑둥에서 속잎들이 아빠의 수염처럼 뾰족뾰족 파랗게 돋아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사람이나 식물이나 사랑앞에서 감수는 같다는 생각이 가슴을 깊게 파고 들면서 저도몰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였다.

  잘 키운다는것이 물을 너무 많이주어 식물을 죽음까지 몰아간것처럼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나는 나의 일방적인 욕망으로 상대에게 자기나름의 사랑을 준다는것이 해나 독을 준적은 없었던가?

  아픔을 잎사귀밑에 숨기고 몰래 앓고 있는 상대에게 뒤짐 지고 서서 그저 입으로만 사랑한다 말하지는 않았는가? 벌레들이 괴롭히는 한잎한잎의 잎사귀를 씻어주듯 상대의 아픔을 진정 따뜻이 어루만져 준적은 있었던가?

  부추대하듯 가장 믿고 스스럼없는 상대에게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감정이 말라들게는 하지 않았는가?

  나는 부끄러웠다. 나는 어느새 자식에게는 해가 되고 독이 되는 눈먼 사랑을 마구 퍼붓기만 하는 무지한 사람이 되여 있었고 나만의 욕망을 채우기에 다욕한 사람이 되여 있었다. 그리고 입으로만 겉발린 사랑을 부르짖고 상대의 아픔이 눈에 보이지 않는 차거운 사람이 되여 있었으며 믿고 허물없는 사람에게 서러움을 주도록 등한한 사람이 되여 있었다.

  그래서 "오늘 래일 도와주느라고 수고했다. 오후는 푹 쉬거라!" 한발 물러서 남이 된듯한 아빠 인사를 들으면서도 "자식한테는 그런 인사 하는것이 아닙니다" 하고 그저 입에 발린 인사말로 받아 넘기고 있었고, "감자, 고추, 배추밖에 넣지 않았는데 장국이 왜 이리 맛있니?" 라고 하시던 홀로 계시는 외삼촌의 말씀을 그저 음식맛이 괜찮다는 칭찬으로만 받아 넘기고 있었다. 내가 베란다 식물을 대하듯 내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대해주어 따뜻했던 정도 죽거나 시들거나 병들거나 하여 나에게서 멀어지게 했던것이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진정 울바자 시골터전이 그리웠던것이 아니라 울바자를 넘나드는 그런 풋옥수수같이 구수하고 향기롭고 소박한 정이 그리웠던것이다.

  오늘은 왠지 어릴적 울바자를 넘나들던 풋강냉이 향이랑, 둥글둥글 먹음직스런 토마토가 더없이 그립다. 이웃이 누군지 알려고도 않고 아는체도 안하고 사는것이 편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따라 사람들에게 고추잎뒤에 숨은 아픔을 치유해주는 그런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 되고싶다.

  록색계절 나는 베란다 '채마전'을 마주하고 서서 거기서 얻은 파란 삶의 함의로 내 마음의 터전을 파랗게 파랗게 가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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