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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파쑈만행의 기록물 동녕요새를 가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5.10.09일 14:49

1. 삼차구조선족진

항일전쟁승리 및 세계반파쑈전쟁승리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의 국경절련휴를 맞아 우리 중국조선족력사문화동호회 몇몇 회원들은 제2차세계대전의 최후의 격전지라 불리는 동녕요새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마침 연변아동문학학회(회장 김현순)에서 현지창작교류차로 동녕에 가고 우리 회원들도 그 학회 회원인 관계로 한팀으로 움직이게 되였다.

10월 3일 오전 10시에 연길에서 떠난 동녕행뻐스가 왕청현경내에서 동쪽방향으로 내처 달려 훈춘-동녕도로를 리용하여 동녕현성에 도착한것은 오후 3시 반이였다. 동녕현조선족아동문학학회 회장인 위정호선생이 마중나와 반가이 맞아주었다.

동녕에서 8선뻐스를 리용하여 이번 답사의 목적지인 삼차구조선족진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삼차구촌회의실에서 두 지역 아동문학인들이 만나 아동문학창작교류좌담회를 가졌다. 동녕현민종국 고상철국장이 동녕현의 조선족인구분포정황과 동녕현의 정치, 경제, 력사 등에 대해서 소개하였고 위정호회장이 동녕현조선족교육과 문화정황에 대해 소개하였다.



삼차구촌회의실에서 창작교류회가 개최되였다.

삼차구는 원래 삼차하구로 불리웠는데 호브트하, 소우사구하와 대도천하 3개 강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삼차구는 1889년에 초간총국이 설립될 정도로 동녕현에서 토지가 제일 비옥하고 제일 먼저 개발된 지역이라고한다. 1933년 1월 동녕현성이였던 삼차구를 점령한 일본침략군은 이 지역을 군사특별구역으로 획분하고 마을들을 철거시켰는데 1939년 6월 위만현공서가 소성자(지금의 동녕진)로 이주한후 삼차구는 완전히 페허로 변했다. 1945년 9월 3일이후 목단강지역에 쫓겨가 집없이 떠돌이하던 조선족들을 원거주지로 돌려보내는 정책이 실시되면서 이곳은 다시 인가가 생기고 벼생산을 위주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많을 때에는 조선족인구가 9000여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6000여명에 달해 삼차구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조선족 중학교와 소학교가 있는데 학생수는 200여명이다.

2.동녕요새군과 훈산요새유적



지상에서 보면 너무나 평범한 훈산, 대형조각벽화가 보인다.

이튿날 우리는 위정호회장의 안내로 제2차세계대전의 최후의 전장이라 불리는 동녕요새를 찾아 답사를 진행하였다.

삼차구에서 마을뻐스를 타고 남쪽으로 약 7키로메터 떨어져있는 동녕요새에 도착하니 만리장성모양의 요새외곽이 멀리서도 한눈에 안겨왔다. 인도를 따라 들어가면 10여명 항일장령들의 조각상으로 둘러싸인 동녕항일련군영웅원이 맞아주고 그뒤로는 쏘련홍군렬사기념비가 바라보였다. 동녕(훈산)요새출입구는 훈산중턱에 있는데 원래 출입구는 폭격에 훼손되여 복원하지 못했고 쏘련홍군의 폭격에 구멍 뚫린 일본군 포진지로 관광객들이 드나들고있었다.



동녕요새라고 썼지만 기실은 훈산요새출입구다

동녕요새는 일본관동군이 광활한 쏘련땅을 넘보는 한편 쏘련홍군의 남진을 막기 위해 1934년부터 1945년까지 약 17만명의 인부들을 강제로 끌어다 흑룡강성 동남부의 동녕현 경내에 수축한 《훈산요새》, 《승홍산요새》, 《마달산요새》, 《삼각산요새》, 《조일산요새》, 《북천산요새》, 《남천산요새》, 《십팔반요새》, 《236고지요새》, 《409고지요새》 등을 통칭하는 말로서 동녕요새군이라고도 한다.

동녕요새군(要塞群)의 10여개 요새를 합치면 정면의 길이가 100여키로메터에 달하고 종심 깊이가 50여키로메터에 달하는데 모두 중쏘국경을 마주하였고 그중 승홍산요새와 조일산요새는 쏘련과 강 하나를 사이두고있다.

우리가 답사한 《훈산요새》는 현재 개발되여 관람객들에 개방한 요새로서 전반 동녕요새군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훈산요새는 일본관동군이 1934년부터 1937년사이에 수축한 종합성방어공사로서 지상에 전호, 반땅크진지, 포진지, 엄페호, 보루, 인부들이 주숙하던 흙집 등 유적이 있었고 상, 중, 하 3층으로 된 지하공사에는 사병들이 거주하는 병실, 탄약창고, 물저장고, 목욕탕, 발전실, 지휘실, 승강기, 화식칸, 통풍구, 지면관찰실 등이 있었는데 현재 개방한 동굴은 길이가 1163메터에 달하며 크고 작은 공간 21곳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공간의 면적은 300여평방메터에 달한다. 현재 훈산요새보호구의 총면적은 9만 5600평방메터에 달한다.



동굴의 부분적인 구간은 출입을 제한하고있다

훈산요새는 지상에서 보면 그냥 남북주향으로 뻗은 평범한 산에 불과하다. 하지만 무력으로 세계를 제패하려는 일본의 야망이 소름끼칠 정도로 느껴지는 그 내부는 제3기 현무암을 뚫고 거대하고도 견고한 철근콘크리트 땅굴이 미궁처럼 서로 련결되여 있어 교통이 사통팔달한 지하촌락을 련상시켰다.



목욕탕

세계반파쑈전쟁이 결속단계에 이른 1945년 8월 9일 0시, 쏘련홍군은 얄따협정과 포츠담선언에 따라 174만 대군, 5556대의 땅크와 자주포, 5300대의 비행기, 2만 6137문의 야전포와 박격포, 670여척의 전함을 동원하여 중국공산당동북위원회와 동북항일련군원동교도려(즉 원동쏘련공농홍군독립보병 제88려)의 밀접한 배합하에 동, 북, 서 3개 방향으로부터 동시에 일본관동군을 향해 출격하였다.

그중 원동쏘련홍군 제1방면군의 제25집단군, 제5집단군, 붉은기 제1집단군 등 부대는 동녕을 향해 전면 출격하였는데 치렬한 전투는 20여일간 지속되였으며 쏘련홍군은 상망 5000여명의 막중한 대가를 치렀다. 동녕요새 공격전에서만 1500여명이 희생되였다니 동녕요새의 견고함과 일본침략군의 최후발악 정도 그리고 전투의 치렬함은 가히 상상할수 있었다.



기념촬영하기 좋은 항일련군영웅원, 그 뒤로 보이는 산이 바로 훈산이다.

당시 쏘련군이 동녕요새 상공에 170대의 전투기를 출동시켜 폭탄을 우박처럼 투하하였으나 동녕요새를 완전히 훼손시키지 못했다고 한다.

유명한 쏘련영웅 베루쏘브 알렉산드르가 바로 이 전역에서 탄생했다. 1945년 8월 11일, 동녕요새공격전에서 당시 20살밖에 안되였던 그는 제일 먼저 적진에 뛰여들어 일본군의 저항을 격퇴시키고 장렬히 희생되였다.



훈산요새 평면도

동녕전역은 8월 30일, 성홍산요새전투를 마지막으로 끝났다. 일본은 1945년 8월 15일에 국왕이 공개적으로 항복을 선언했지만 이곳 일본군은 통신이 두절되여 후퇴령이나 항복령을 받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저항했다고 한다. 할수없이 쏘련군이 연변지역에서 포로한 일본군 제3군 참모장 고노사다오를 데려다 투항을 권유해서야 동녕전역은 마감되였다. 당시 생존 일본군은 모두 901여명이였고 그들은 105구의 시체를 들고 요새를 빠져나와 투항하였다.

3.동녕요새군유적박물관 쏘련홍군승리기념탑



훈산요새의 곳곳에 세운 표지판들과 비석 그리고 훈산자락 쏘련홍군승리기념탑 동쪽에 자리잡은 동녕요새군유적박물관에서 이와 같은 내용들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천천히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2천만원을 투자하여 건설한 이 박물관은 부지면적이 1만 5000여평방메터이며 9000여평방메터의 대리석광장, 4000평방메터의 록지와 2000여평방메터의 관사로 조성되였다. 관내에는 500여건의 일본침략군의 죄증이 전시되였는데 그중에는 일본군이 사용하였던 무기탄약, 생활용품, 노역에 끌려왔던 중국인부들의 로동도구가 있으며 쏘련홍군이 사용하였던 무기장비와 6개 부분으로 나뉜 400여폭의 진귀한 력사사진들도 있다.



동녕요새공격전을 재현한 조각군상

죄증전시관에는 또 밀랍인형과 당시의 유물을 본따 초소, 병원, 무전실, 포진지 등을 재현한 부분이 있었는데 어찌나 생동하게 설계제작되였는지 마치 포연이 자욱했던 70년전으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뚜-뚜-뚜- 하는 무전소리가 들리고 부상으로 극심한 아픔을 호소하는 부상자, 지휘실에서 하급장교한테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 앞사람이 쓰러지면 뒤사람이 이어나가는 피어린 전투장면이 살아 움직이는듯 부각되여 참관자들의 발목을 잡았다.



재현된 동녕요새의 무전실

박물관 사진전시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주석의 청년시절 사진도 5점 전시되였는데 사진설명을 통해 왕청항일유격대, 동북인민혁명군, 동북항일련군시절의 직함과 1945년 8월 조선인민군을 이끌고 쏘련홍군과 함께 원동전역에 참가한 사실 그리고 쏘련정부의 붉은기훈장을 수여받은 사실 등이 기록되여있다. 그와 김정숙동지의 합영에는 《김일성동지와 항일영웅 김정숙동지》라는 설명으로 김일성동지와 김정숙동지의 항일업적을 함축하여 평가하였다.



인부들을 가두고 일을 시키던 집

동녕지하요새는 일본침략군이 무력으로 중국을 강점하고 미친듯이 자원을 략탈하였으며 중국을 발판으로 세계를 제패하려 한 파쑈만행의 반박할수 없는 철증이고 17만명의 무고한 인부들을 강제로 노역에 내몰고 무참히 살해한 하늘에 사무치는 반인류 범죄의 기록이였다.

항전승리 70주년을 맞아 진행한 이번 답사는 책에서나 읽고 이야기로만 들었던 일본침략군의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을 력사의 현장에서 돌아보고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세계제패 야망을 버리지 못하는 뿌리 깊은 일본군국주의의 악렬함을 다시 한번 느끼는 좋은 학습의 장이였다.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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