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나라 때 백이와 숙제가 상나라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먹었다는 고사리는 예부터 제사상 등 집안 대소사의 주요 상차림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양치식물인 고사리는 단백질이 풍부하고 칼슘과 섬유질이 많이 함유돼 있어 현대에 들어와서도 웰빙식품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23일 오후 민통선 지역인 경기 연천군 중면 합수리에 있는 백도현(49)씨의 흑고사리 종묘장을 찾았다. 고사리는 색깔이나 형태에 따라 청고사리, 먹고사리, 세발고사리 등으로 분류되는데 민통선 고사리는 특히 줄기가 검다고 해 흑고사리로 불리고 있다.
민통선 일대에선 오래전부터 산골 아낙네들이 고사리 등 산나물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 갔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부터 백씨 등 일부 농가들이 민통선에서 채취한 흑고사리 뿌리를 밭에 심어 수확해 판매하며 흑고사리가 연천을 대표하는 농산물 중의 하나가 됐다.
연천군 농업기술센터는 최근 비닐하우스에서 흑고사리를 조직배양해 종근을 생산, 조기재배하는 기술과 수경재배하는 기술을 개발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농가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현재 6개의 농가가 연간 30여t의 흑고사리를 생산하고 있으나 내년부터는 25개 농가에서 ‘연천DMZ흑고사리’라는 공동 브랜드로 흑고사리를 생산, 출하할 계획이다. 예상되는 수확량만 연간 75t에 이른다.
이날 백씨는 660㎡ 남짓한 비닐하우스에서 흑고사리 종근 및 종묘를 만들기 위해 뿌리를 화분에 나눠 심기도 하고 20∼30㎝ 돋아난 흑고사리 새순을 정성껏 손으로 꺾어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빠른 손놀림으로 드문드문 난 잡초도 뽑았다. 하우스 안에는 생고사리의 그윽한 향기가 가득했다.
백씨는 “하우스에서 조기재배를 할 경우 3월 말부터 7월 초까지 수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새순을 잘라도 또 순이 돋아날 정도로 생명력이 뛰어나고, 하루에 5∼10㎝씩 클 만큼 성장이 빨라 올해 들어서만 벌써 5번째 수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연간 15t의 흑고사리를 생산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1997년 적은 비용으로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백씨는 인근 옥계리 밭 180㎡에서 흑고사리 재배를 시작했다. 그리고 1999년 990㎡의 밭에서 23㎏의 흑고사리를 처음 수확했다. 현재는 흑고사리의 부드러운 맛과 독특한 향기에 매료돼 밭에서 산지와 비닐하우스로 확대해 대규모로 흑고사리를 재배하고 있다.
일교차가 큰 사양토에서 자란 검은색의 민통선 흑고사리는 다른 지방 고사리와 달리 맛이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며 향이 진한 게 특징이다.
백씨는 “흑고사리는 영양이 풍부해 육개장이나 비빔밥 등 웬만한 한식에 많이 들어가고 군부대 및 학교 급식으로도 수요가 많아 부가가치가 높은 작물”이라며 “고소득 작물인 고사리 덕분에 귀농인구가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그는 “수확한 생고사리를 4㎏당 3만원(건고사리 100g당 1만2000원)에 300가구에 직거래 판매 중”이라며 “종근과 종묘가 담긴 화분은 가정집 정원용과 학교 학습용, 건물 조경용, 농가 보급용으로 1만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생산량이 주문량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 한 달 넘게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자랑했다.
백씨는 이웃 권이상(73)씨 등 마을 농가들에 흑고사리 재배 기술을 전수하는 등 이 마을의 고사리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야생 취나물과 질경이도 함께 재배 중인 백씨는 “민통선에서는 산나물 재배가 어려운데 연천군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흑고사리 생산단지를 조성할 수 있었고 다른 농가들이 기술을 배워 손쉽게 흑고사리를 재배할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농업기술센터의 배창용(45) 농업연구사는 “기술센터가 하우스에서 조직배양해 생산한 종근을 농가에 보급, 민통선 야산에 심어 2015년까지 100㏊의 흑고사리 재배단지를 조성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연천 = 오명근기자 om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