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장춘《수》샵 김효순사장을 만나
김효순사장
중국 문화와 서예에 강렬한 취미를 가지고 자기의 서예가의 꿈과 직업리상을 실현하고저 한국에서 중국 장춘으로 찾아와 열심히 창업하고 열심히 배우는 한국녀성이 있다.
6년전 한국에서 낯선 장춘으로 찾아와 이곳에서 창업하고 그 과정에 또 의외사고로 생사고비까지 겪었던 그녀, 그러다가 중국에서 마음씨 곱고 착한 총각의 도움으로 재기하고 결혼하여 행복한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또 그의 도움으로 자신의 서예가 꿈을 향해 도전하는 그녀…장춘에 대한 그녀의 감정은 여러가지로 엇갈려 복잡하다고 한다. 허나 그가운데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것이 바로 중국문화 그리고 남편에 대한 끈끈한 정이라고 한다. 그녀가 바로 장춘수(秀)샾의 김효순(金孝顺)사장이다.
김효순사장은 일찍 10년전부터 한국에서 서예활동을 해왔고 1996년 제5회 대한민국현대서예대전에서 대상까지 받은적 있다. 그녀는 이전부터 중국 문화와 서예에 짙은 취미를 보였고 중국의 발전과 비전을 일찍부터 감안, 아들을 중국에 류학보내 공부시키면서 자기도 중국 문화와 서예를 더욱 깊이 습득하고저 중국을 찾았다.
북경, 상해는 보통말 배우기가 좀 어렵고 지역적으로 크다보니 애를 관리하기도 힘들다고 생각한 그녀는 《교육의 도시》 장춘을 선택했다.
《창업을 먼저 선택한것은 저의 예술의 꿈을 이루기 위한 뒤받침》이였다고 김효순사장은 말한다.중국에서 자식을 공부시키면서 서예까지 전공하자면 정말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장춘에 첫발을 내디딘 그 시각, 김효순사장은 먼저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일찍 10년전부터 김효순은 한국에서 서예활동을 하면서 헤어샵, 미용실을 경영한 경력이 있었다.
장춘에서 창업의 첫발을 내디딘 그녀는 대담하게 목단가 륭리로에 300여평방메터되는 수(秀)미용원을 개장하고 헤어, 미용, 맛사지 등 서비스를 제공했다. 중국말 한마디 모르는 그녀는 중국통역을 한명 앞세우고 세무국, 공상국을 전전했다. 중국을 너무 모르고 덤빈 탓에 수입은 괜찮았지만 여러가지 세금부담으로 결국 경영이 어려워지게 됐고 나중에 문을 닫게 됐다.
설상가상이라고 이때 김효순사장은 또 의외의 사고로 크게 다쳤고 1년동안 집에서 휴양하게 됐다. 그때 그 정경을 회상하는 김효순사장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얼굴에 길게 남은 흉터때문이 아니라 그때 너무 아팠던 마음때문이였다고 한다.
아파서 휴양하는 동안 김효순은 중국총각 리군을 알게 됐고 리군은 그녀를 데리고 좋은 병원의 명의라는 명의는 다 찾아다녔다.
간난신고를 거쳐 2011년 7월 수샾이 홍기가 만달광장에서 다시 새롭게 개장했다. 가정식인테리어로 손님들에게 아담하고 편안한 감을 주었고 주방을 오픈하여 회원들이 미장원에서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먹고 커피, 차를 마시면서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수 있게 했다.
회원제를 실시하여 중고급차원의 회원들만 흡수했는데 현재 회원수가 200명좌우, 그가운데 정회원이 100명좌우라고 한다. 100% 한국원제품을 사용하고 헤어, 파마는 20-30분이면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로 변신시켜준다고 한다.《최상의 서비스로 정성을 다해 하기때문에 단골손님들이 많이 찾아옵니다.》김효순사장이 말한다.
오늘도 이국타향에서 열심히 뛰며 일하는 김효순사장, 이제는 《중국며느리》로 자칭하면서 《앞으로 어떤 곤난이 있어도 중국에서 꼭 저의 꿈을 이룰것입니다》고 담차게 말한다.
중국에서 열심히 뛰는 한국녀성, 그 모습 계속 기대해본다.
직원들과 함께
샵 일각
남편과 함께
김효순 서예작품
편집/기자: [ 장춘영 ] 원고래원: [ 길림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