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한민족 > 한민족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갈대밭을 황금수전으로 일군 천진시 조선족마을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10.28일 09:38
ㅡ개발계획에 들어 력사속에 사라질 천진시 조선족촌을 찾아

천진시에 거의 60년 력사를 가진 토배기 조선족마을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들이 어떤 연고로 그 먼 곳까지 가서 논밭을 만들고 정착하게 되였는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자못 궁금했다. 그래서 언제부터 기회가 나지면 한번 꼭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었다.

천진시조선족친목회 리창희회장은 천진에서 50여년동안 살아온 분으로 국유기업에서 공장장 등 고급관리일군으로 사업하다가 2005년에 정년퇴직했으며 3명밖에 안되는 천진시 정협위원중의 일원으로 당지 조선족사회에 대해 밝은 분이다. 리회장의 련락으로 우리는 천진시 조선족마을 제1대 건설자의 한분으로 건재해있는 박춘보로인을 모시고 함께 마을로 향했다. 박로인은 1997년에 마을을 떠나 한 10분간 상거한 시내로 이사가 만년을 보내고있었다.

갈대밭을 황금물결 넘실대는 수전으로

천진시 동려구 보원촌에 속해있는 조선족촌, 이 마을은 1950년대에 료녕 심양일대에서 온 5가구의 조선족농민들을 시작으로 설립된 순수 조선족마을이다.

《빠른게 세월이군요. 그때를 생각하면 꿈만 같습니다. 공장에 들어가 월급을 타먹는 로동자가 될려고 왔는데 소금물에 전 갈대밭을 뚜져 논밭을 일구는 농민이 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바다옆이라 그동안 물 고생에, 전기도 1973년전까지 석유등을 켜고 살아야 했지요.》 라고 말머리를 떼면서 궤속에서 오래 보관한 물건을 찾듯이 아련한 회억을 파헤쳤다.

1955년 2월, 18살의 박춘보는 리락진, 최륙성, 리우석, 리경삼 등 4호의 조선족농민들과 함께 심양일대에서 천진으로 왔다. 당시 김진근이라는 조교가 천진에 유지공장을 세울 사업준비를 계획하고있었는데 조선족들이 수요되였던것이다. 근데 얼마후 사영기업을 개조하는 《공사합영》의 바람이 불면서 김진근이 사업계획을 포기하는 바람에 이들은 로동자의 꿈은 고사하고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호구지책으로 할수없이 찾아간 곳이 바로 당시 황무지가 많았다는 오늘의 이곳이였다.

제1대 주민 박춘보로인이 1977년 마을에서 통일로 진 벽돌집앞에서 조선족촌의 력사를 이야기하고있다.


《거처도 없었어요. 다행히 마음씨 좋은 보원촌 한족들이 우리의 딱한 사정을 알고 선뜻이 저들의 집을 한칸씩 내여 겨울을 나게 했지요. 참 고마운 분들이였지요.》 박춘보로인은 위쪽에 자리잡은 한족마을을 가리키면서 이렇게 말했다.

초봄이 되자 이들은 한족마을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와 11칸되는 흙집을 짓고 옮겨왔다. 그리고 한족들의 말과 쟁기를 빌려 갈대로 꽉 들어찬 황지를 논으로 풀기 시작했다. 이른 봄이라 날씨는 더없이 쌀쌀했다. 매일과 같이 바지가랭이를 걷어 올리고 맨발로 얼음장처럼 차디찬 늪에 들어서서 갈대밭을 밟으면서 일했다. 두발은 송곳같은 갈대뿌리에 찔리고 찬물에 얼어터서 성한 곳이 한곳도 없었다. 염분이 많은 갈대밭이라서 물을 깊게 대 염도를 낮춰야 벼농사를 할수 있었는데 점성이 하나도 없는 토질이라 논두렁을 간신히 만들고 물을 대면 두렁은 금방 모래성마냥 스르르 내려앉아버렸다. 그렇게 몇번을 반복했는지 모른다.

저 앞에 보이는 한족마을이 보원촌이다. 당시 첫발을 붙인 조선족들은 이들의 따뜻한 도움을 오늘도 감사해하고있다.


《정말 옥살이같은 날들이 반복됐지요. 상처투성이로 아물새 없는 두발을 붙잡고 남몰래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주위에 온통 늪이라 봄부터 가을까지 모기는 또 얼마나 극성스레 많았는지.》 박춘보로인에게는 18살 나던 1955년 그해 봄날이 영원히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그들은 이렇게 3년동안 대자연과 억세게 싸웠다. 결과 160여무의 갈대밭을 논으로 바꿨으며 한족들은 가을에 타작한 벼를 보고 엄지를 내들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후 다른 곳에서 몇호의 조선족들이 더 들어왔으며 후에 12호로 늘어났다. 1965년 당지 정부에서는 정식으로 조선족생산대를 세우도록 결정하고 행정관리상 보원촌에 귀속시켰다.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완전히 독립권을 행사하도록 했다. 1958년 《대약진, 인민공사화》 시절에도 당지에서는 조선족들의 언어, 생활, 풍속습관 등을 충분히 배려해 《민족자치》를 실시하도록 허락했다.

촌민들 돈 한푼 안들이고 벽돌기와집에

천진에 정착한 조선족농민들은 논농사외에도 벼짚을 리용해 새끼를 꼬아 팔아 수입을 늘렸다. 처음에 수공으로 시작했으나 후에는 집집마다 새끼꼬는 기계를 갖췄으며 질이 좋아 린근 공장들에서 장기적으로 찾아와 사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 이들은 또 마을에 자그마한 기업을 앉히고 안경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품질과 신용으로 천진시 한 큰 안경점의 지정공장으로 되기까지 했다.

1976년 당산대지진 때 천진 조선족마을의 흙집들도 정도부동하게 피해를 입었다. 마을에서는 큰 결심을 내리고 그동안 모아왔던 자금을 털어 통일적으로 방 3개에 창고 한칸씩 달린 벽돌기와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리하여 1977년 마을의 12호 조선족들은 개인들의 돈 한푼도 안 팔고 새 벽돌기와집으로 이사해 들어갔다. 그때에 진 집들이 지금도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십여호 조선족마을에 천진시 인대대표도 나와

천진시의 조선족마을 농민들은 마을의 경제건설에 적극 뛰여들어 주변의 한족마을에 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린 동시에 정치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박춘보로인은 젊은 시절에 조선족마을에서 생산대장과 회계로도 있었으며 한때는 안경부품공장을 관리하면서 마을의 경제수입을 올리는데 한몫 했다. 그는 천진시 동려구의 인대대표로 있었고 그후에는 천진시 인대대표로 당선돼 1980년대까지 활약하면서 조선족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천진시에서 가는 곳 마다 조선족음식점들을 찾을수 있지만 박로인이 인대대표로 있을적에는 한집도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인대회의에서 천진에 조선족음식점을 앉혀달라는 건의도 제출한적이 있다고 웃으면서 그 당시를 회억했다.

천진시 동려구 보원촌 조선족마을은 이제 개발계획에 들어 파가이주를 기다리고있다. 아빠트단지가 들어설지 아니면 공장이 들어설지. 당년에 갈대뿌리에 발바닥을 사정없이 찢겨가면서 옥답으로 풀었던 논밭도 역시 개발계획에 들어 다시 황지로 되돌아왔다. 12가구가 병아리처럼 모여 서로 의지하면서 오붓하게 살아가던 조선족마을은 이젠 호적도 6호만 남고 마을을 지키는 원주민은 달랑 2세대밖에 없다. 망망한 력사속의 한가닥 연기로 사라질 천진시 조선족촌, 그러나 50여년을 홀로서기하면서 정을 들여온 고향마을의 이야기는 어디에 가서나 이들에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을것이다.

조선족마을에 두가구밖에 안 남은 원주민중의 한분 김도명(오른쪽,73세).

당년에 촌사무실로 사용되였던 건물.

마을에 조선족들이 꾸린 개고기집이 두집 있다.이전에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다고 한다.

조선족마을과 얼마간 상거한 곳에 한때 우리말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던 천진시 새별조선족소학교가 있었다.이미 페교된지 한참 됐으며 지금은 공장으로 변해버렸다.

편집/기자: [ 리철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100%
10대 0%
20대 0%
30대 10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최근 23kg 다이어트에 성공한 배우 이장우가 자신의 연인인 '조혜원'을 언급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6일 유튜브 채널 '인생84' 에서는 배우 이장우가 게스트로 출연해 바디프로필 촬영을 위해 다이어트를 했던 것, 그리고 자신의 연애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로동절 기간 택배 접수∙발송 건수 40억건 넘어

로동절 기간 택배 접수∙발송 건수 40억건 넘어

[신화망 베이징 5월7일]노동절 연휴(5월 1~5일) 기간 중국 택배업계의 택배 접수∙발송 건수가 40억3천200만 건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가우정국의 모니터링 데이터에 따르면 접수는 19억9천900만 건으로 하루 평균 접수량이 전년 동기 대비 32.7% 늘었다. 발송

습주석, 佛 대통령∙EU 집행위원장과 3자 회담..."유럽, 中의 중요한 파트너"

습주석, 佛 대통령∙EU 집행위원장과 3자 회담..."유럽, 中의 중요한 파트너"

[신화망 파리 5월8일] 습근평 중국 국가주석이 6일 오전(현지시간)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중국-프랑스-유럽 지도자 간 3자 회담을 진행했다. 습주석이 6일 오전 파리 엘리제궁에서 마크롱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 습근평 주석 방문, 중국-세르비야 관계의 새로운 시대 열 것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 습근평 주석 방문, 중국-세르비야 관계의 새로운 시대 열 것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풍경(4월 29일 찍은 드론사진) /신화넷 1일에 찍은 중국전력건설그룹이 건설을 맡은 세르비아 국가축구경기장 프로젝트 공사 현장. /신화넷 리명 주세르비아 중국 대사는 국제 정세의 변화 속에서도 중국-세르비아의 두터운 우정은 굳건히 유지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