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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 국민당군에 징집, 하루아침에 ‘과부촌’된 통보춘

[기타] | 발행시간: 2016.08.07일 00:29

1987년 대만 유명 사진가가 촬영한 통보춘(銅鉢村)의 여인. [사진 제공 김명호]

먼 옛날부터, 푸젠성(福建省) 둥산다오(東山島) 통보춘(銅鉢村)은 대만 어부들의 쉼터였다. 누적된 피로를 밥 먹고 술 마시며 풀다 가곤 했다. 그러다 보니 흔히들 대만촌(臺灣村)이라 불렀다. 주민들은 고기잡이와 농사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일전쟁 시절에도 화약냄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국공내전은 이 작은 어촌의 평화를 망가뜨렸다. 1950년 3월, 대륙에서 패배한 국민당군은 진먼다오(金門島)에 거점을 마련했다. 정예 2700여 명을 둥산다오에 투입했다. 당시 둥산다오 주민은 7000여 명이었다.

4월 말, 중국 인민해방군이 푸젠성 전역에 깃발을 꽂았다. 5월 1일 하이난다오(海南島)를 장악하고 둥산다오를 포위했다. 공격은 시간문제였다. 돌격명령만 기다렸다. 둥산다오 주둔 국민당군도 전쟁이 임박했다고 판단했다. 주둔군 증병(增兵)을 서둘렀다.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징발했다. 약 3000명에게 국민당군 군복을 입혔다.

통보춘은 깡촌 중에 깡촌이었다. 외부 소식이 늦다 보니 주민들의 일상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남자들은 바다에 나가고 여인들은 농사와 집안일에 열중했다. 5월 9일까지는 그랬다. 5월 10일 새벽 2시, 철수하던 국민당군이 통보춘을 덮쳤다. 마을 입구에 기관총부터 걸어놨다.



통보춘 ‘과부 진열관’ 관장의 구술을 소개한다. “단꿈을 꾸던 주민들은 요란한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총검을 착용한 국민당군 사병들이 살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잠이 싹 달아났다. 상부 지시로 호구 조사를 실시한다며 무조건 끌고 갔다.” 국민당군은 장정 285명을 마을 사당 앞에 집결시켰다. 그 중 147명을 진먼다오행 함선에 쓸어 넣었다. 그 중 91명은 처자식이 있는 가장이었다. 연령도 열일곱 살에서 55세까지 다양했다.

그날 밤, 통보춘 여인들의 밤은 유난히 길었다. 동이 터도 남편들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문이 귓전을 때렸다. “끌려간 남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국민당 군함을 타고 어디론가 떠났다.” 여인들은 어린애를 등에 업고 해변으로 달려갔다. 평소 꼴 보기 싫을 때도 많았지만, 그날따라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5월 11일, 장정들이 끌려간 다음 날, 인민해방군 제3야전군이 둥산다오에 상륙했다. 흩어져 있는 촌락을 점령하며 국민당군을 추격했다. 하루 아침에 국민당 군인가족이 된 여인들은 남편이 죽기라도 했을까봐 가슴을 조렸다.



과부촌을 처음 보도한 쉬루(徐·왼쪽)와 리융더(李永得). 대만 정부 허가 없이 대륙을 방문해 물의를 일으켰다. [사진 제공 김명호]

비슷한 운명에 처한 여인들은 하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만 뜨면 밭에 나가 일하며 자녀와 시부모를 돌봤다. 해변에 배가 들어 온다는 소식을 접하면 하던 일 내던지고 바닷가로 달려갔다. 배를 향해 남편의 이름을 불러댔다. 배가 떠나면 실성한 사람처럼 주저앉아 통곡했다. 해가 지면 문 앞에 앉아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렸다. “네 남편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며 재가를 권하는 노인들이 있었지만 쓸데없는 소리였다. 섬 전체에 젊은 남자라곤 씨가 말라버렸다.

38년이 후딱 지나갔다. 통보춘의 여인들은 국민당 가족이라며 박해를 받지 않았다. 문혁 시절에도 보호를 받았다. 1987년 9월, 대만 즈리완바오(自立晩報) 기자 두 명이 둥산다오를 찾아왔다. 두 사람은 대만촌이 과부촌(寡婦村)으로 바뀐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 세계에 통보춘 여인들의 비극을 타전했다.

38년 전, 17세 아들과 헤어진 노모가 임종 직전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도 공개됐다. “너를 몇 십년간 기다렸다. 네가 워낙 보고 싶어서 죽지도 못했다. 지금 나는 깊은 병에 걸렸다. 너는 내 편지를 받을 방법이 없고, 나는 이 세상을 떠난다.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겠다. 태평시절, 네가 처자와 함께 고향에 돌아와 내 무덤에 향 사르는 모습을 보면 그때 지하에서 눈을 감겠다.” 말이 편지지 유서나 마찬가지였다.

3개월 후, 대만 총통 장징궈(蔣經國·장경국)가 대륙출신 퇴역군인들의 고향 방문을 허락했다. 통보춘을 찾은 남편과 재회한 여인들의 소감은 한결같았다. “남편과 만났나?” “만났다.” “어떻드냐?” “늙었드라.” “가면서 뭐라고 했느냐?” “또 오겠다고 했다.”

노래 한 곡이 유행했다. 가사가 처절했다. 우리말로 도저히 옮길 재간이 없지만 대충 소개한다. “새벽이 뭔지도 모르고, 황혼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거리의 가로등도 나완 상관이 없었다. 눈앞이 캄캄하고, 뭘 봐도 음침할 뿐, 아직도 너는 나를 바보처럼 기다리게만 했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단 하루도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 죽음은 어쩔 수 없지만, 어느 나라 국민이건,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지도자를 선호한다. 대신 평화를 외치며 화를 부추기는 지도자에게는 넌덜머리를 낸다. 자신과 후손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그 무슨 대가도 감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평화가 중요하다.

통보춘의 장정들은 거의 세상을 떠났다. 과부 13명은 아직도 건재하다.



김명호

중앙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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