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사인 이모(42·서울 혜화동)씨는 최근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새롭게 취미를 붙인 '디아블로' 때문. 요즘 매일 퇴근 후 PC방을 찾는 이유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귀가가 늦어지자 아내가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며 잔소리를 쏟아낼 정도다.

최근 이씨처럼 게임에 빠진 중년 남성들이 늘고 있다.

과거 같으면 아이들이나 즐기는 것이라고 치부됐을 게임이 사회·문화적 유행이 되고 있는 것. 덕분에 요즘 게임들은 40대 직장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열풍에 불은 지핀 건 디아블로3다.

12년만에 등장한 디아블로3의 출시를 보면서 "어디 한 게임 해볼까"하는 자극을 받은 것. 온라인으로 파티를 짜 '트리스트럼' 마을의 던전에서 '공포의 악마' 디아블로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운 아련한 추억을 되살렸다.회사원 윤영준(44·서울 창동)씨는 "디아블로3를 하면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한 시간 동안 단돈 1000원에 취업 걱정도 까맣게 잊고 종일 게임만 하던 그 시절이 문득 그립다"고 말했다.

여기에 어린 시절 오락실의 추억, 1980~90년대 문화의 재조명, 삐삐와 펜티엄 컴퓨터 같은 복고풍 소재의 등장, 90년대 큰 인기를 끈 디아블로·삼국지 시리즈 출시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더해졌다.

실제 한동안 온라인 게임을 떠나 있던 '넥타이 부대'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퇴근 시간 이후와 주말 동시접속자수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여의도, 광화문 등 도심 사무실 밀집 지역의 PC방은 중년 남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오락실의 추억을 담은 게임도 나왔다.

네오위즈게임즈가 서비스하는 '명장 온라인'은 화면의 이동이 좌우로 단순하고 게임의 진행이 어렵지 않아 오락실 기분을 낼 수 있다.

주요 타깃인 30~40대 직장인들의 낭만을 대변하기 위해서다.

여의도 증권가의 이홍택(40·서울 다동)씨는 "하루에 3000원 정도 들여 무언가에 맘껏 열중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면 술 먹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느냐"며 "퇴근 시간이 되면 약속이 있다고 슬며시 사무실을 빠져나와 PC방을 찾는다"고 밝혔다.

특히 다른 취미 활동에 비해 큰돈이 들지 않는 건 게임의 가장 큰 매력. 기름 값 등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와 아이들 교육비 부담에 등골이 휘는 중년 직장인들에게 게임은 반갑기만 한 놀이문화다.한양대학교 교양교육원 남영 교수는 "최근 디아블로3의 인기는 국내 게임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40대의 엄청난 영향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며 "갤러그·너구리 등 오락실 게임 뿐 아니라 스타크래프트·리니지를 직접 만들고 즐긴 세대로서 사회 문화적 유행에서 잊혀진 추억이나 가슴 속에 묻어뒀던 동심을 찾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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