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아이들 10명 중 5명은 취학 전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한다. 이 비율은 비(非)강남에 비해 4배나 많다. 이런 영어 사교육의 편차는 대입 수능시험과 취업은 물론, 취업 후 연봉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어가 권력으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 부모 경제력에 따른 영어성적의 차이가 소득ㆍ계층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영어 공교육 및 취업시스템을 개선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희삼 연구위원이 4일 발표한 '영어교육 투자의 형평성과 효율성'보고서에 따르면, 영어 사교육 참여율이 월소득 100만원 미만 가구는 19.6%인 반면, 500만원 이상 가구는 70%에 달했다. 특히 월평균 영어 사교육비는 100만원 미만 가구가 1만6,000원, 700만원 이상은 16만3,000원으로 10배나 차이 났다.
같은 서울이라도 강남ㆍ북 간 차이가 확연했다. 서울 강남 아이들의 절반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 사교육을 시작한 반면, 강북은 그 비율이 13.6%에 불과했다. 영어유치원 출신은 강남(24.6%)이 강북(1.1%)에 비해 20배 이상 많았다. 대도시 초등 6학년 영어 성취도 '우수' 비율은 61.2%였지만, 읍ㆍ면지역은 44.1%로 낮았다.
영어 사교육 격차는 대입 수능성적은 물론 취업과 연봉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4년 고3 학생 2,087명의 수능 성적과 가구 소득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 소득이 100만원 상승할 때 수능 백분위 점수는 수학이 1.9점, 국어가 2.2점 오르는데 그쳤지만 영어는 2.9점이나 상승했다. 취업전선에서도 어학연수 경험자가 합격 통지를 평균(1.3회)보다 0.1회 더 받았고, 토익(TOEIC) 점수가 100점 높으면 연봉을 170만원 더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영어 교육의 불평등을 개선하려면 학교, 기업, 정부 등 각 부문의 합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초ㆍ중ㆍ고교는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방과 후 영어교실, 방학 중 영어캠프, 원어민 화상강의 등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대학은 학생들의 실용영어능력을 키워 사교육 수요를 흡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의 경우 일률적인 영어 성적보다는 직무 특성별 역량에 맞도록 인재를 선발하는 채용시스템의 변화도 요구된다. 김 연구위원은 "국가적으로 공교육 개선을 통한 영어 격차 해소라는 정책 기조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