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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이야기]한국화를 스타로 만든《내 고향 오솔길》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7.16일 10:59
[특별기고]우리 노래 100년 이야기(12)

《한잠 자고 깨여 일어나보니 어느사이 스타가 되여있고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뀌여있더라.》는 말이 있다. 가수나 탤런트 또는 화가나 작가와 같이 문학예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끔씩 일어나는 현상으로 어떤 특별한 작품으로 삽시간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대중들에 의하여 곧바로 스타덤에 오르는 경우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우리 중국조선족가요발전사를 둘러보면 이와 같은 경우가 몇번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별한것은 가요《내 고향 오솔길》을 부른 가수 한국화의 경우라 하겠다.

지난 세기 70년대 후반 사범학교를 방금 졸업하고 애송이로 가무단가수들의 말석에 턱걸이로도 겨우 끼워들가, 말가하던 무명가수가 가요《내 고향 오솔길》, 단 한곡을 부름으로써 하루아침에 인기절정의 가수로 떠오르고 어린 아이들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어르신들에 이르기까지 세상에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명성을 자자하게 날린 그 이름, 한국화가 바로 그 주인공인것이다.

1980년도의 어느날, 연변가무단이 화룡에 와서 한국화가 부르는 《내 고향 오솔길》이 처음 무대에 올라 공연되던때이다. 가수 한국화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달려온 수많은 관중들로 발 디딜틈없이 꽉 찬 공연장에서 막이 올라 노래반주곡이 울리고 가수가 마이크를 잡으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곱게 핀 함박꽃~》하고 첫 구절을 떼자마자 관중석은 삽시에 흥분의 도가니로 들끓어 올랐고 일부 젊은이들은 심지어 가수 한국화의 모습을 한번이라도 더욱 똑똑히 보려고 무대 앞에까지 우르르 몰려는 진풍경까지 연출하였다.

그때 화룡관중들은 연변가무단 공연티켓의 3분의 2 티켓 값은 한국화를 보려고 기껍게 지불한것이라고도 말할 지경이였으니 한국화의 인기를 가히 가늠할수 있다.


곱게 핀 함박꽃 반겨 웃는 산기슭에

안개 타고 내렸나 숲속에 숨었나

산나물 돋아나는 오솔길은 걷기 좋아

포동진 애고사리 손잡고 놓칠않네

아, 내 고향 오솔길은 걷기도 좋네


단풍 든 황철나무 설레이는 산허리에

구름타고 내렸나 벼랑에 걸렸나

산열매 무르익는 오솔길은 걷기도 좋아

달디단 머루다래 입맛을 돋군다네

아, 내 고향 오솔길은 걷기도 좋네


함박꽃이 피여나고 산열매 무르익어 정다운 고향의 오솔길을 담은 노래, C대조 4/4의 소박한 박자로 흐르는 이 노래가 어찌하여 사람들 모두에게 그처럼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것일까? 당시 이 노래는 사람들의 가슴에 벅찬 충격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바로《문화대혁명》으로 10년넘게 시달려오며 황폐해지고 고갈된 마음의 갈증이 불러온 것이며 한 줄기 세찬 소나기를 기다리는 메마른 심령에 밀려드는 정서의 물결이 굽이쳐온것이였다.

이 작품을 쓰고 나서 작곡가 최삼명은 《‘내 고향 오솔길’ 문세록》이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중앙 11기 3중전회는 문화대혁명의 결속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이때만 하여도 연변가요계에서 서정가요의 《금지구역》은 의연하였다. 그에 따라 작품이 몸살을 겪어야 했고 작가마저도 고뇌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분위기가 이러하다보니 창작자들은 조심을 해야지 또 다시 번안풍이 몰아치면 큰 일 인데 하는 우려속에서 기를 펴지 못하였다. 특히 문화대혁명의 고압정책으로 말미암아 민요와 전통음악은 《금지구역》이 되였고 창작은 큰 제한을 받았다…

그런데 《4인무리》의 검은 그림자는 아직 철저히 사라지지 않았었다. 이때 연변의 일부 사람은 《문화대혁명이 끝났다고 공공연히 우쭐하고 마구 쓰더니 어디 보자고, 또 소자산계급의 정서를 써서 독소를 풍기고 있지 않는가? 한바탕 맞을 준비를 해야 하겠소.》하면서 나를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문화대혁명이 끝났는데 왜서 또 자산계급이요, 소자산계급이요, 외국정서요 하는지 나는 리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문화혁명기간에 《자산계급기술권위》요, 《주덕해의 검은 수재》요 하는 모자를 썼던 나는 그야말로 또 매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불안한 마음에 시달리면서도 대처할 준비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 바람은 일지 않았다.

시대를 가름하는 한 편의 작품을 쓴다는것이 창작자에게 어떤 용기가 필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이 작품을 쓰고 당시 작곡가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는가 하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 한편이 잡지《문학과 예술》1987년 11~12합간 43쪽에 《하고 싶은 말은 실로 많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실려있다.

이 글의 작자는 《근래에 최삼명선생이 ‘색다른 가요’ 몇수 세상에 내놓은 탓으로 음악계 일부 사람들의 뒤공론을 듣고있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선생의 말을 들어보려고 그를 찾았다.》 라는 말로 시작을 떼고 작곡가에게 몇가지 질문을 하고 그에 답하는 형식으로 썼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질문 1; 시대와 가요의 주인인 대중들의 미학관념의 변화와의 관계에 대해.

답; 사람들의 미학관념은 시기에 따라 변할수 있는데 사람들의 미학관념이 변할수 있는 충분한 계기가 주어진 그때마다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가 따로 있었다. 이를테면 해방초기엔 《농민의 노래》거나 《좋은 종자 가려내세》와 같은 신 민요풍격의 노래를 즐겼는가 하면 건국초기엔 《아름다운 내 고향》이거나 《고향산기슭에서》와 같은 서정성이 짙은 노래를 즐겼고 그후 오래동안은 민족절주가 짙은 노래거나 약동이 심한 가요를 즐겼다. 그 원인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에겐 새로운 미학적요구가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음악에서는 선률, 절주, 조식에서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질문 2; 음악창작에서의 전통에 대한 계승과 혁신에 대해.

답; 우리는 민족음악유산에 대한 효자현손으로 되여야 할뿐만아니라 무정한 반역자로 될줄도 알아야 한다. 이 반역자가 되는 목적은 효자현손질 더욱 잘하기 위함이다. 일부 중청년작곡자들이 자기의 민족음악바탕에 대하여서는 《백지》나 다름없으면서도 아프리카거나 인도 등 외국음악을 모방하면서 거기서 《2분 휴지부의 사용창시자》인듯 자기를 내세워 보기도하고 또는 민족바탕을 조금 떠나 약간만 색다른것이 들어오기만 하면 《이것은 우리의것이 아니다.》라고 대성질호하면서 《아무리 창작해봤댔자 민요나 판소리를 초과하지 못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작법들은 모두 우리 조선족음악을 외곬으로 몰아가는것이다.

질문 3; 그럼 우리 작곡가들이 해야 할 바는?

답; 시대를 정시한 토대우에서 우리의 전통과 외래의 사조를 많이 학습해야 하고 대중들의 미학요구의 변화에 대하여 사색해야 하며 새로운 것은 탐구해야 한다. 이 새로운 것이란 전통에 대한 반복이 되지 말아야 할것은 물론 남의것에 대한 모방도 되지 말아야 한다. 실로 우리의것이면서도 그전에 들어보지 못하던 참신한것이여야 하고 남의것 같으면서도 우리의 맥박이 뛰게 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시대적 사명을 띤 우리 작곡가들의 노력이 경주되여야 할것이다.

작곡가 최삼명은 가요 《내 고향 오솔길》을 창작하면서 얻은 소감을 아래와 같은 3가지로 귀납하였다. 이는 음악창작자들은 물론 모든 장르의 예술창작자들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될것이다.

첫째, 창작에서 코기러기가 된다는것은 모험을 동반한다는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시비와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히 새로운것에 도전해야 한다.

둘째, 반드시 민족의 심미리상을 반영한 가곡을 창작해야 한다. 그러자면 민족정서와 정감에 바탕을 두어 창작해야 한다.

셋째, 시대정신과 결합된 가곡을 창작해야 민족의 계선을 넘어 너나가 좋아하는 가곡을 창작해 낼수 있다. 시대를 외면할 가곡은 관중이 먼저 알아보고 거부한다.

/기고인 석화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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