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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칼럼⑦ㅣ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9.06.19일 14:51



리미옥

1983 연변 출생. 17살에 한국 류학. 거창고등학교,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거쳐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박사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후 연구원. 현재 명지대학교 객원교수.

  시간 하나

  불안한 시간들이 허공에 떠다니고 있다. 마치 뿌연 안개 같기도 하고 어슴푸레 밝아오는 려명 같기도 하다. 시간을 잡는 일은, 마치 모래시계와도 같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뒤집고 또 뒤집어도 결코 줄어들거나 영원히 안정적인 상태가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몇몇 친구가 있다. 그들의 존재는 그림자같고 분신같아 도저히 나와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는 귀신같은 감수성을 공유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리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나이가 같다는 것, 같은 고향이라는 것, 그리고 같은 인문학을 전공했다는 것. 그 안에서는 또 성별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세부전공도 다르고 무엇보다 이십대 이후로의 생활반경은 비교할 수 없이 달라졌다. 하지만, 우리는 묵묵히 서로가 많은 걸 리해하고 있었다.한국류학의 끄트머리에서 선 우리는 아직 삶의 치열한 중심부에는 도달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세상의 노곤함을 다 알아버린 느낌이다. 무엇을 해서라기보다는 다 알아버렸기 때문에 지친 것이다. 나름, 열심히 살았던 우리들은 현재 모두 목말라 있다. 취업에도 목말라 있고, 결혼에도 목말라 있고 련애에도 목말라 있다. 경제적인 여유에도 목말라 있고 우리들만의 문화에도 목말라 있고 더 다양한 경험에도 목말라 있다.



작가 자화상

  인문학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초라해졌다. 경제로 환원되지 않은 인문학적인 감수성은 거추장스러운 감정의 찌꺼기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천천히 혹은 빠르게, 결국 빵이 보장되지 않은, 문학과 학문은 너무나 사치인 굴레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문학을 해도 성인(圣人)이 되기는커녕 경제에 더 한층 목마른 속물이 되여가는 건 시간문제이다.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우리가 더 목말라 있는 것은 어떤 거대한 중심같은 게 아닐가싶다. 우리를 끌고가는 거대하고 웅장한 령혼의 광휘, 비록 그런 게 없다고 할지라도. 날마다 우리를 흔들어 깨부수는 일상들이 너무나 많다. 나무잎에도 흔들리는 시인의 마음이라서가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소소히 간지럽히는 그런 귀엽고 앙증맞은 바람이 아니라, 거대하고 세찬 돌풍이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그 돌풍은 날마다 우리의 생활을 훑고 지나가고 마음의 일기장에 알 수 없는 락서를 잔뜩 해놓는다.



  공간 둘

  도시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다. 많은 유혹과 숱한 피로들이 있다. 도시 공간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 의해 분절되여 있고 또 중첩되여 있다. 나는 아니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따라 공간을 구획하고 길을 구성해 나갈 뿐이다. 나의 길은 학교에서 시작해서 학교로 끝나고, 나와 같은 류학생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류학생활의 일상적 삶을 련결시켜 나가거나 순환 혹은 반복하고 있다.

  공간은 전에 살던 고향에 비해 더 넓어졌지만 길은 더 좁아졌다. 그 좁아진 길에서 다른 길로 나아가는 데는 긴 시간뿐 아니라 참으로 많은 품이 든다. 서울에 온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복잡한 도시에서 몇번인가 길을 잃은적이 있다. 내가 가는 목적지는 분명한데 도무지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는 곳에 전화해 보았다. “몇번 출구에서 나가서 어느 방향을 따라서 쭉 가다가 다시 어느 건물을 만나면 돌아서 골목으로 들어가세요”라고 전화 받는 아가씨는 친절하게 설명했고 그 말을 몇번이나 외워서 중얼거리며 걸어가 보았으나 그 건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에 쫓긴채, 도시 한복판에서 길을 잃은 나는, 미아처럼 아득하게 서있었다.



  길을 찾는 일은 늘 어려웠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늘 집에서 너무 멀었다. “달팽이”란 노래가사 말처럼 집에 가는 길은 항상 너무 멀어서 매번 지치곤 했다. 그러나 다른 곳들은 더 멀었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행성에서 다른 행성으로 이행하는 것마냥 비장한 선택이 필요했다. 언제고 발이 가는대로, 마음 내키는대로 훌쩍 갈 수 있는 게 아니였다. 그곳에 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비용과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철저하게 점검하고나서 돌아오는 발걸음에 후회가 없을 것 같아야 결단을 내릴 수 있는 머나먼 길이였다.

  서울에서 또한 종로에서 10년 넘게 거주한 구민답지 않게 길들은 늘 낯설고 또 멀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려오고 또 빠져나가는 공간은 그 무엇도 남기지 않은채 늘 시간에 밀려 표류한다. 마치 시간을 왜곡시키는 블랙홀과도 흡사하다. 이 공간에 있으면 시간이 분명 다르게 흘러가고 있는듯 한데 다른 공간에 가서야 비로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구나. 그럼에도 멈춰진듯 느린 시간들이 좁은 공간안에 꽉 들어차있다. 다들 “시간은 화살같이 빠르다”고 하는데, 그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시간에 대한 나의 체감은 사실 후자에 가깝다. “멈춰설듯 느린 시간”, 그건 철저하게 탈출하고 싶은 공간에 대한 시간의 저항이였다. 좁은 교실, 연구실 등과 같이 좁고도 엄숙한 공간에서는 언제나 탈출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시커멓게 화려한 도심의 공간에서 자유로운 건 결코 아니였다.



  거미망처럼 넓게 뻗은 도시의 미로속에는 갈 수 있는 길들이 많았지만 모든 길에는 비용이 필요했다. 마치 통행료처럼 알 수 없는 페이를 조금씩 요구했다. 길을 잘못 들어설 때마다 가난한 류학생들에게서는 유일한 자산인 꿈과 열정의 페이가 지불되였다. 지불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번 길을 타면 너무나 빠르게 어딘가를 한참 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정신없는 속도때문에 도로위의 번잡한 흐름때문에 때론 빠져나올 수 길이 되기로 한다. 조금이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되돌아서기 힘든 고속도로에서 방향을 잡는 일은 옛날처럼 북두칠성을 보고 하늘 길과 소통하던 길과도 너무 달라졌다.

  마음 셋

  이제 다시, 무엇이 되고 싶은가. 아직도 우리는 여기 머물러 있고 여전히 이속에서 꿈을 꾸고 있다. 발걸음은 빠른 속도로 어딘가를 향하고 있지만 결코 이 도시의 거대한 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다. 가끔은, 너무 가벼워서 어디에서라도 흐를 것 같지만 가끔은 너무 무거워서 그대로 땅속깊이 침잠(沈潜)할 것 같기도 하다. 몸은 나의 것이지만, ‘오늘’의 시간을 따라갈 것이고 ‘여기’의 공간속에서 늙어갈 것이며 우리의 삶은 너무나 짧은 순간, 력사속에서 이슬처럼 반짝이다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마음도 내 것이라 할 수 없을만큼 몸의 진동과 함께 무수한 갈피들 사이에서 배회하고 요동친다.



  마음 하나로는 너무 외로운 세상이다. 아무리 단단히 마음을 다잡고 있어도 마음 하나로는 나의 눈물을 닦을 수가 없다. 마음 둘로도 여전히 버거운 세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늘 편을 가르고 둘은 힘없이 꺾어지기도 한다. 마음 셋이 간신히 모이니, 그것이 우리의 세상이 되였다. 힘겨운 오늘 하루의 고백을 나눌 귀가 하나 더 입이 하나 더 모이니 그것이 어느 중심거리의 화려한 불빛아래가 아니라도 우리들의 이야기가 되고 우리들의 시간이 되고 우리들의 공간이 되였다.

  무엇이 될 것인가? 어쩌면,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마음 둘이 하나로 합쳐지고 다시 셋의 마음까지 함께 가는 길이라면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 같이 들을 수 있고 같이 걸을 수 있고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이 존재한다면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바다에서 막 건져올린 고등어의 등푸른 빛갈처럼. 그것은 다시없을 순간이고 그 자체로 풍요로울 것이다.

  은 동북아신문과 흑룡강신문의 공동주최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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