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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토론(2): 우리가 우리를 알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0.06.16일 11:44



 

저자 현춘산

현춘산 프로필:

1950년 흑룡강성 수화시 북성촌에서 출생

다년간 중소학교 교사로 근무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전업 졸업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흑룡강작가협회, 연변작가협회 회원

장편소설 1부, 수필집 3부 출판

《흑룡강신문》 신춘문예상, 흑룡강소수민족문학상 등 다수 수상

ㅡ1ㅡ

2018년 여름, 나는 위챗그룹에서 우연히 남영전선생을 알게 되였다.

‘토템시인 남영전'이라 하면 국내외에 명성을 떨친 분이고 그의 토템시도 신문이나 잡지에서 보아왔지만 한번도 만나뵙지 못한 처지였다. 서로 만나보지 못한 상황에서도 자유롭게 소통이 이루어졌으니 그것은 중국고대력사를 제재로 쓴 나의 소설 몇편이 계기로 되여서였다.

둘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지고 위챗으로나마 자유롭게 말이 오가자 나는 토템에 대해 문의하게 되였다.그때까지 나는 토템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남영전선생은 내가 중국고대사를 제재로 소설을 쓰는지라 고전(古典)을 많이 읽을 텐데 중문으로 읽고 있는가고 물었다.

나는 20년전부터 북경과 광주에서 생활하였기에 많은 자료를 중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그것은 사실이였다.그렇다고 내 중문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였다. 대도시의 주류문화권이 나를 그렇게 하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핍박에 의해 량산에 오른 것’이 오히려 다행이였다 할가. 중문서적들과 중문자료들이 나의 시야를 넓혀준 것이다.

선생은 중문으로 고전을 읽는 수준이면 학술저작을 볼 수 있을테니 중국당대의 토템문화학자 하성량(何星亮)의 저서《토템과 중국문화(图腾与中国文化)》를 읽어보라고 권고했다.

그래서 나는 토템문화와 접촉하게 되였다. 나는 《토템과 중국문화》를 몇십페지 읽은 후 선생에게 글이 잘 읽혀진다고 전했다.

선생은  기뻐하면서 지금 우리의 조선족지식인들중 중문으로 학술서적을 읽는 사람이 적다면서 그래서야 어떻게 많은 정보를 접수하고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겠는가고 개탄하였다. 하성량의 《토템과 중국문화》를 사서 여럿에게 보냈으나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였다. 더구나 토템문화 유관 자료는 중문으로 출판된 것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고급지식인으로서 중문학술서적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조선족의 비애가 아닐 수 없다고 선생은 안타까와 했다.

필자는 하성량의 《토템과 중국문화》를 세번 읽고 요점은 필기도 했다. 《토템과 중국문화》는 나에게 적어도 토템문화는 세계적 범위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문화현상이라는 사실과 토템문화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을 알게 하였다.

그러나 남영전선생이 지적한바와 같이 이 책에는 결함이 있었다. 어떻게 토템을 판단하고 식별할 것인가 하는 표준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남영전 시인은 토템시 창작과정에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神话文献)에 근거하여 토템을 감별하고 식별하였다고 하면서 토템을 알려면 신화문헌을 꼭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토템문화를 터득한 후 토템문화수필을 쓰는게 어떻겠는가고 제의하였다. 선생은 내가 수필로 문단에 데뷔를 했고 수필집 세부를 출판한 일을 념두에 두고 있었다.

토템시가 나왔으니 토템수필도 토템소설도 나올 수 있지 않을가. 사회가 발전하고 문학이 발전할 수록 쟝르도 더 세분화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주류문단에서는 이미 《승냥이토템(狼图腾)》이란 장편소설이 나와 국내외에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 조선족작가들중에서도 응당 우리 민족의  토템문화를 반영하는 '황소토템'이나 '백학토템' 같은 토템수필 혹은 토템소설이 나와야 하지 않을가.

그런데 토템의 정의조차 제대로 모르는 내가 어떻게 토템수필을 쓴단 말인가. 그러나 나는 선생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잖아도 내가 력사소설을 쓰는 리유도 남다른 작품을 내놓기 위해서였다. 내 나이도 일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이 내게 여추우(余秋雨)의 작품을 봤는가고 하면서 여추우는 한족의 저명한 문화수필대가인데 조선족에서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야 한다고 했다.

ㅡ2ㅡ

그로부터 석달 후, 나는 광주에서 삼아로 날아가 료양중에 있는 남영전선생을 방문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국내외에 명성을 날리고 영향을 끼친 토템시인의 건강상황이 그 정도일줄 알지 못했다. 나도 장기간 심장질환으로 시달리는 처지지만 말이다. 휠체어에 앉았던 선생이 나를 맞아주었다. 몇년전 뇌출혈로 쓰러졌었다는 것이였다. 민족문화와 문학을 위한 몇십년의 로심초사가 선생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나는 삼아에서 3일 묵었다. 그러면서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은 사흘낮 동안 휠체어에 앉아 한번에 일여덟시간씩 나와 담화를 나누었다. 그때 삼아에 있던 전승기 시인이 나를 배동했다.

선생이 전승기에게 물었다. 당신의 전(全)씨 성이 어떻게 온 것인지 아는가고. 전승기가 대답하지 못하자 선생은 흥미진진하게 단군신화를 들려주면서 우리 민족의 왕씨는 단군왕검의 후대라고 하였다. 왕씨는 우리민족의 제일성씨로서 원래는 큰 성씨였는데 후에는 변을 당하여 왕씨들은 하루아침에 자기의 성을 전(全)씨, 전(田)씨, 옥(玉)씨, 금(琴)씨, 마(马)씨 등으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왕씨의 토템이 곰이였으니까왕씨의 후예들인 이들의 토템 역시 곰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선생은 또 나의 현(玄)씨는 황제의 후손이기에 황제의 토템 곰이 현씨의 토템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야기는 열렬한 분위기속에서 이어졌고 우리는 천진한 소학생마냥 진지하게 들었다.전혀 앓는 분같지 않게 활기찬 모습의 선생은 토템문화에 대한 화제를 담론할라치면 두눈에서 광채를 뿌렸고 목소리도 청아했다.

선생은 우리 민족의 지성인들부터 민족의 뿌리문화인 토템을 모르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알려면 우리 민족의 문화, 우리 민족의 성씨, 우리 민족의 전통풍속 그리고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최근에 《길림신문》에서 펼친 ‘문화를 말하다' 계렬보도의 남영전편을 보면서 새삼스레 그때의 담화가 떠오른다.

선생이 그때 우리에게 전수한 것이 바로 문화와 민족에 관한 오늘의 그 화제였다. 그번 만남이 있은 후 전승기시인은 삼아와 해구의 서점을 돌면서 10여부의 토템 유관 서적들을 구입했는데 그중 한책에 남영전선생의 토템시와 토템관에 대한 평론들이 실려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번 만남 후 전혀 계획에 없던 서울행을 했다. 국내에서는 도무지 구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들 때문이였다.

문화와 민족에 대한 선생의 독특한 정의는 일찍 국내의 반향을 일으켰다. 선생의 문화에 대한 정의는 "개인과 군체(群体)를 식별하는 의식주행어의 공동 부호"였고 민족 형성에 대한 선생의 정의는 "혈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에 의해서이다"라는 것이였다.

말이 난 김에 문화에 대한 정의를 더 언급하고 넘어가겠다.

중국당대의 저명한 문화학자 여추우선생은 저서 《문화란 무엇인가(何谓文化)》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지금 세계적으로 문화에 대한 정의가 수백개나 되는데 모두 번쇄적이고 너무 길어 터득하기 힘들다.

여추우선생의 문화에 관한 정의는 "정신가치와 생활방식의 일종 생태공동체로서 루적과 인도를 통하여 집단인격을 창건하는 것"이다.

ㅡ3ㅡ

필자 역시 문화의 정의를 두고 오래 동안 골치아파했었다. 몇년전 《흑룡강신문》에 문화에 관한 칼럼들을 써내면서부터였다.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와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서 2003년에 펴낸 《현대조선말사전》의 풀이는 이러하다.

(1) 력사발전의 행정에서 인류가 창조한 물질적 및 정신적 재부의 총체

(2) 일반지식과 기술지식을 통털어 이르는 말

(3) 현대적요구에 맞는 문명한 생활양식

《엣센스국어사전》의 풀이는 이러하다.

(1) 인지가 깨고 세상이 열리여 밝게 됨

(2) 권력보다 인덕으로 백성을 가르쳐 이끔

(3)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일정한 목적 또는 생활리상을 실현하려는 활동의 과정 및 그 과정에서 이룩해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의 총칭(특히 학문, 예술, 종교, 도덕 등의  정신적 소득을 가리킴)

지금까지 중국에서 권위사전으로 꼽히는 《대사해》의 정치학, 사회학권(2010년판)의 풀이는 이러하다.

광의적 의미로 말하면 인류가 사회실천과정에서 획득한 물질, 정신적 재부와 생산능력과 창조한 물질, 정신재부의 총화이고 협의적 의미로 말하면 정신생산능력과 정신산품을 가리키는데 일체 사회의식형식,자연과학,기술과학,사회의식형태가 포함되며 때로는 전문 교육, 과학, 문학을 가리킨다.

조선족 토템시인 남영전선생은 다년간 토템문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문화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문화란 개인과 군체를 식별하는 의식주행어의 공동부호이다."

얼마나 간명하고 구체적인가!

맑스는 《자본론》에서 사람들이 매일 보고 만지는 상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의 본질을 폭로하였다. 의식주행어, 이렇게 사람들의 생존활동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들을 틀어쥐여야 문화의 진정한 함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닐가.

세계의 그 어느 민족이나 다 자기의 문화가 있다. 세계의 어느 민족이나 의식주행어문화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복식문화, 음식문화, 주거문화, 행위문화, 언어문화 여기에 인류의 물질적재부와 정신적재부가 포함 되여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문화에 대한 남영전선생의 정의는 토템이란 문화뿌리로부터 나온 것으로서 인류와 민족의 력사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고 있다. 이는 문화정의에 대한 중대한 공헌이 아닐수 없다.

ㅡ4ㅡ

토템수필, 토템소설은 우리 문단에 아직 없지만 토템시는 있다. 중문으로 창작된 남영전의 토템시는 42종의 조선민족 씨족토템을 쓴 것으로서 문창남, 박화, 김응준 등 조선족 시인들에 의하여 우리 글로 번역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토템을 쓴 이 토템시들이 조선족문단에서보다 주류문단에서 더 각광을 받았고 국내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조선족문단에서도 일부 문인들이 ‘남시(南诗)'에 대해 긍정하고 찬양하고 있었지만 주류문단처럼 성세를 일으키지 못했다. 나는 토템시를 연구하고 분석하는 실천이 우리 문화를 알아가는 작업이라고 느꼈다. 왜냐하면 토템시는 민족의 뿌리문화(토템문화)에 기반을 둔 것이기에 토템시에 대한 연구는 바로 토템문화를 습득하는 기회로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과 토템 유관 자료들을 얻은 후 나는 남영전선생의 토템시를 하나하나 분석해 보기 시작했다. 잘하면 ‘남시'에 대한 매 한편의 해석이 괜찮은 토템수필이 될상 싶었다.

그러나 ‘남시'를 분석한다는 그 자체가 정말 쉽지 않았다. 이미지(意像)조합이 복잡하고 주제가 심오하여 난해한 점이 많은게 토템시의 특점이였다. 이미지란 영상(映像)이미지와 심상(心像)이미지로 나뉘는데 ‘남시'에는 이 두가지 이미지가 매편에 관통되여 있었다. 례하면 토템시 에서 웅녀로 변하여 단군을 낳은 곰토템을 민족의 시조모(始祖母)로 보는 것은 영상이미지이고 끈기있고 용감하며 애탄과 구걸을 모르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곰토템의 성격을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삼는 것은 심상이미지이다. 만약 내가 ‘남시'의 이런 토템이미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토템수필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토템시를 해부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알기 위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근거하여 토템시 몇수를 분석한 것을 보고 남영전선생은 자기가 소장한 《문화상징사전(文化象征辞典)》을 부쳐주었다. 선생이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만했다. 토템시에 대한 나의 분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선생은 《문화상징사전》은 우리 민족의 토템숭배와 토템금기로부터 점차 형성된 민족전통풍속, 전통문화에서 왔다고 말하였다. 선생의 체험으로부터 내린 결론이였다.

선생은 42수의 토템시를 다 발표한 후에야 상징사전을 구입했다. 상징사전이 없을 때 선생은 우리 민족의 신화문헌에 의해서 토템시를 창작하였다. 토템시를 발표한 뒤에야 구입한 상징사전을 펼친 선생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토템시에 상징이미지를 제대로 도입한 것이였다. 그것이 우연한 일치였을가, 아니였다. 상징사전의 편찬자들도 알게 모르게 토템문화를 수록한 것은 우리민족의 전통문화의 풍속, 습관이 기실 토템문화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상징은 민족문화의 기본이라는 말이 있다. 문학에서 상징이미지가 없는 작품이 어디 있는가.더구나 현대시의 상징이미지들은 풍부하고 복잡하다.

우리의 《문화상징사전》은 사회와 시대가 발전할수록 더욱 보완되고 풍부해지고 완미화되여야 할 것이다. 우리의 학자, 작가, 시인들은 민족의 상징문화보물고를 부단히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매 하나의 상징물들이 새롭게 태여나고  매 한가지 상징이미지들이 새롭게 빛을 뿌려야 한다.

《문화상징사전》이 아니였더라면 내가 남영전선생의 토템시 42수의 토템이미지를 발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과정은 내가 우리 민족의 문화를 알아가는 과정이였다.

지금 《료녕신문》에 련재되고 있는 필자의 남영전 토템시 이미지해설문들은 기실 실습중에 있는 토템문화수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들도 아직 미숙한 점들이 있어 부단히 수정하고 보충하고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이 역시 우리의 문화상징보물고에 대한 저그마한 기여로 될 수 있으므로 필자 하나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학자, 작가, 교수, 시인들을 포함한 광대한 독자층의 참여를 기대한다.

ㅡ5ㅡ

우리가 우리를 알기 위해서는 토템문화를 꼭 알아야 한다. 토템은 문화의 시원(始源)이고 문화의 뿌리이다. 인간의 최초의 노래나 무용은 토템제의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토템숭배로 인한 제의(祭仪)는 풍속습관으로 되였고 토템숭배를 표현한 암벽화가 점차 문자로 발전해왔다.성씨도 토템에서 기원되였고 여러 토템씨족이 모여서 민족이 형성되였다. 토템문화는 우리에게 인간은 자연에서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자연에서 온 인간들이다.

우리의 작가들이 토템문화를 알게 되면 우리자신을 알게 되여 더욱 특색있고 정채로운 작품을 창작해낼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우리 조선족들 가운데 토템문화를 아는 사람이 쌀의 뉘만치도 없는 상황이다. 토템문화를 모른다는 것은 자기를 모른다는 말이 된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수원(水源)이 없는 강이 없다. 자기의 성씨가 어떻게 온 것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 민족이 어떻게 형성되였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민족문화를 위해 일한다면 어떻게 믿어줄가.

2006년 3월에 수도사범대학 중국시가연구중심에서 남영전토템시연구회가 있은 후 중앙민족대학에서 남영전 시인을 초청해 학생들에게 토템문화 강의를 조직했다.

첫날에 조선족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했는데 토템이란 말이 나오니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들이였고  례의적으로 자리를 지킬뿐이였다.

다음날은 한족과 기타 소수민족학생들 차례였다. 사전에 공고에서 토템시인의 토템문화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본 학생들이 필기장과 볼펜을 갖추고 밀물처럼 강당에 모여들어 초만원을 이루었다.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서 한마디라도 놓쳐버릴세라 빨리 메모를 하느라고 바빴다. 조선족학생들과 판이한 풍경이였다.

이 얘기를 듣는 필자는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 학생들이 한족이나 다른 소수민족학생들보다 선천적으로 몽매하고 무지할가. 결코 그것이 아니였다. 우리의 민족교육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조선족대학생들은 토템이란 말도 들어보지 못하고 자라났다.

팔자의 부모는 각기 1910년과 1911년에 탄생했다. 그로부터  35년 동안 식민지 치하에서 살아왔다. 일제는 조선반도에서 36년이란 세월 우리 민족의 문화를 유린하고 박멸했으며 우리 민족은 말과 글과 성과 이름마저 빼앗겼다. 일제는 민족의 시조 단군의 력사가 기록된 문헌들을 불살랐고 우리 민족의 토템신화문헌들을 없애버렸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조선민족을 영원히 저들의 노예로 만들려고 광분했던 것이다. 중국조선족 제3세대에 속하는 우리도 선배들에게서 토템문화를  전수받을 수 없었다. 우리 민족의  력사와 원생태문화(原生态文化)는 단절된 상태이다. 어찌 지금의 우리 대학생들 탓이라고 하랴!

남영전선생의 ‘구술문화 6강'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로 가야 하는가하는 물음에 답을 하고 있다. 우리는 문화정의와 민족개념 이 핵심을 분명히 알고 장악해야 우리의 민족문화를 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현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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