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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학선 교원, 본보기는 무성의 가르침이고 가장 유력한 교육자이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0.10.28일 14:53
  제3회 설봉교사상 우수수상자 상지시조선족중학교 윤학선교사



  상지시조선족중학교에는 남녀로소 누구나 다 좋아하는 선생님 한분이 계신다. 그분이 바로 근 30여년이라는 긴 시간을 교수 제일선에서 학생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내온 윤학선 교원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것-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너무 약은 건 아닐가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윤선생님은 사실 그런것과는 거리가 먼, 오로지 사람에 대한 진심어린 사랑으로, 사업에 대한 우직한 열정으로 불태우는 사람이다. 학창시절부터 달리기종목마다 학교기록 소유자로, 학교 축구선수로 활약해왔던 윤선생님은 체육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다.

  그래서 1992년 할빈체육학원을 졸업하고 모교에 돌아와 체육교원이 되였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출근하는 첫날 그는 꼭 학생들한테 존경받는 선생님으로, 학생들의 성장의 길에 등불같은 존재가 되리라 다짐했다.

  윤선생님은 투박하지만 정이 많은 사람이다. 선생님은 체육교원이라 말재주가 서툴렀지만 학생들은 늘 자기들에게 달리기 요령이며, 포환던지기 요령이며를 직접 시범하면서 몇번이고 싫은 기색 한번 내지 않고 끈질기게 가르치는 그의 태도에서, 뽈을 차고나온 학생들이 덥다며 선뜻 호주머니 돈을 꺼내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그들은 선생님의 인품을 알게 되였고 자기들에 대한 선생님의 정을 읽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윤선생님을 몹시 따랐으며 점심시간만 되면 사무실에 들려 윤선생님과 함께 얘기하기를 즐겼다. 1998년의 어느 하루 학교 축구팀이 일중의 축구팀과 경기를 하던 도중 고중2학년의 림모 학생이 속력있게 뽈을 몰고 우리 꼴문대로 질주하던 대방의 공격선수를 막으려다 그만 그와 심하게 부딪치는 바람에 다리가 골절되였다.



  그때 윤선생님은 너무 급한 나머지 차를 부를 생각도 않고 바삐 림모 학생을 업고는 병원으로 달렸다. 학생들이 택시를 불러 타고 그를 쫓아갔을 때 그는 이미 병원 근처까지 뛰여간 상태였다. 80킬로그램이나 되는 남학생을 업고 뛰여가느라 옷이 땀에 흥건히 젖은 윤선생님을 바라보며 그때 학생들은 더없는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감동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림모 학생은 부모님 모두 한국에 있어 기숙사생활을 하는 친구라 한 반달간은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이때 윤선생님은 두말없이 림모 학생을 자기 집에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사모님은 일주일이 멀다하게 뼈에 좋다는 사골국을 끓였고 윤선생님은 퇴근하고 돌아오면 랭찜질을 해주군 했다. 두분의 지극정성에 림모 학생은 예정보다 일찍 다시 학교로 돌아올수 있었다.

  이런 감동을 주는 일이 어찌 한두가지 뿐이랴? 축구를 하는 애들은 대부분 다혈질이라 쩍하면 친구들과 말다툼이나 주먹질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윤선생님은 꼭 자기자식 타이르듯이 차근차근 타일렀고 체벌은 절대 멀리했다. 반주임과 트러블이 생겨 학교를 그만둔다고 집으로 내려갔던 애들을 얼리고 닥치면서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했던 일, 윤선생님이 애들을 위하여 썩은 속은 정말 이루 다 말할수 없다.

  윤선생님의 내리사랑이 통한 걸가? 아님 우락부락하는 남자애들이지만 정이 있는 애들이여서일가? 그들은 선생님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늘 선생님과 련락을 주고 받으면서 계속 끈끈한 정을 이어나갔다. 그들은 윤 선생님의 생일을 잊지 않고 축하를 보내왔고 윤 선생님네 집에 일이 있을 때면 어떻게 알고 꼭 찾아주군한다. 이게 바로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는 것인 모양이다.

  윤선생님의 사랑은 학생에게만 국한된것이 아니였다. 윤선생님은 또 동료선생님들로부터“예쓰”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누구나 도움이 필요해 윤선생님을 찾을때마다 그는 한번도“노우”를 한적이 없기때문이다.

  그런가하면 동료교원들의 집에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언제나 제일 먼저 달려가 제일처럼 도와 나서는 사람도 윤선생님이였고 제일 마지막까지 일을 봐주고 떠나가는 사람도 윤선생님이였다. 이처럼 선생님은 정말 보살처럼 착하고 성격 좋은 사람이였다. 그런데 성격 좋은 사람이 한번 성내면 무섭다고 윤선생님은 원칙을 지키는 일에서는 참으로‘무서운’선생님이다.

2005년, 그가 체육조조장으로 있을때의 일이다. 그때 체육조의 한 선생님이 체육시간에 학생들에게 배구공과 축구공을 주고는 사적인 일을 보러 나간적이 있었다. 이 일을 알게 된 윤선생님은 해당 교원을 불러 따끔하게 비평했다고 한다. 교원은 챔임감과 본보기를 요구하는 직업으로서 무책임한 이런 행동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호되게 꾸짖으셨다고 한다.

이처럼 윤선생님은 량심적인 교원이였고 늘 학생들의 본보기가 되기 위해 애쓰는 그런 분이다. 이러한 조장의 리더십때문이였을가? 학교체육선생님들은 그 어느 조보다도 단합이 잘됐고 어떻게든 학생들의 성장에 필요한 재능들을 길러주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날씨가 풀리면 륙상대훈련, 녀자배구대훈련, 남자축구대훈련을 지도하느라 늘 운동장에서 살았고 겨울철이면 스케트훈련을 시키느라 땀벌창이 되여 돌아쳤다. 지금도 학교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겨울철스케트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며칠밤을 꼬박 새우면서 운동장에 물을 퍼붓던 체육조선생님들을, 눈이 올때마다 큰 명령이나 떨어진듯이 그 큰 덩치들이 자기 키만한 비자루를 가지고 나와 스케트장을 쓸군 하던 체육조선생님들을, 몇십컬레나 되던 학생들의 스케트를 하나 하나 정성스레 갈아주던 체육조선생님들을 잊지 못해 늘 입에 올리군 한다.

  이렇게 진정 학생들을 위해 내 한몸 바치며 사업했기때문에 선생님은 여러번 상지시선진인물로, 교육계통선진공작자로 당선되였으며 또 할빈시 체육골간교사로도 당선되였다. 그리고 2005년에는 우리 학교 후근주임으로 발탁되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주임이라는 타이틀보다 일군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리는 분이다. 후근주임 윤선생님은 늘 어느 누구보다도 바빴고 옷차림은 항상 누구보다도 헐망하였다. 하긴 후근주임 윤선생님은 늘 분무기통을 메고 학교정원의 꽃밭이나 풀밭에 약을 치군 했으니 폼나는 양복같은것은 입을수가 없었을것이다. 이처럼 윤선생님은 늘 사무실이 아니라 바깥에서 일군들과 함께 일을 하는 특수한‘교원’이였고 그의 사무실은 없는 도구가 없을 정도로 어느 작은 철공소나 가공소를 방불케했다. 그리고 이런 장비들 대부분은 학교의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윤선생님 자신이 자체로 제작하고 수리한 것들이였다.

  그렇게 후근주임을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은지도 어언 10년, 중국대지에 축구열이 일면서 우리 학교가 전국축구특색기지로 선정이 되였고 윤선생님은 후근주임을 계속 하면서 10년간이나 놓았던 교수를, 축구훈련대를 다시 책임지게 되였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 학교의 체육교원들이 거의 한족선생님들이다보니 축구를 제대로 아는 교원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반백을 넘긴 나이에,“장군배”도 어느정도 나온 터라 다시 축구지도를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윤선생님은 말없이 총대를 다시 걸머쥐였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이 나이에 학교의 립장을 고려해 총대를 메준 것만으로도 대단한거라 생각하면서 슬슬 교수임무나 완성하면 그만이련만 그는 젊은 교원들과 똑같이 하려 하신다. 오히려 젊은 교원들보다도 더 극성이였다. 그는 매번 자기의 체육시간이 되면 꼭 학생들보다 5분 먼저 운동장에 도착해서 운동기재를 날랐고 아이들이 뛸때면 꼭 같이 뛰였다. 그리고 매번 공개교수가 있을 때면 남들은 뒤걸음치느라 바빴지만 선생님은 자진해서 임무를 맡았고 과제연구나 론문쓰기에도 열을 올렸다. 나이들어서 따낸 영예증서만 해도 젊은 사람들을 초과할 정도이다.

  윤선생님이 다시 학교축구대를 맡았을 때였다. 처음 아이들을 접촉하던 그날 100메터 달리기며 꼴문대에 꼴넣기 등을 시험쳐보던 그는 애들이 말이 축구대지 체력이 형편없고 기본공도 형편없다는것을 발견하였다. 우선 학생들의 체력부터 올려야 하겠다고 생각한 그는 이튿날 아침부터 아침단련을 할테니 5섯시까지 학교정문앞에 모이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정작 이튿날 장소에 나가보니 12명 중 5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왔다는 애들도 모두 정각 5시에 모인것이 아니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예전에는 애들이 다 기숙사생이라 아침단련을 조직하기도 좋았고 또 그때는 애들이 선생님들 말이면 잘 따라줬는데 지금은 다 제각기 개인집에 있는데다가 pc방이나 핸드폰 보는데 습관되여 있어서 운동같은 고달픈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때문이였다.

  하지만 애들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물러설 윤 선생님이 아니였다. 며칠동안의 관찰속에서 그는 고중일학년의 최모 학생이 운동신경도 좋을뿐더러 학생들속에서 위신이 높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 학생이 꽤나 의지력이 강하다는 것도 보아냈다. 그는 이내 최모 학생을 축구대대장으로 임명하고 그를 불러 자기의 계획을 털어놓고는 최모 학생이 선생님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길 원한다며 진심을 털어놓았다.

최모 학생은 윤선생님의 가식없이 진솔한 말에 감동을 받았고 윤선생님은 최모 학생의 도움으로 아침단련훈련을 견지할수 있었을뿐만아니라 차츰차츰 아이들을 자기의 품안에 끌어들일 수 있었으며 자기의 계획에 좇아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 축구대훈련을 시작한 후부터 그에게는 휴식시간이 별로 없었다. 낮에는 정상적인 학교의 수업을 조직해야 했고 또 7, 8교시면 축구대훈련을 진행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훈련이라는것이 딱 시간이 고정된것이 아니여서 때로는 퇴근시간을 훌쩍 넘기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고달파도 애들이 잘 따라주고 또 하루가 다르게 진보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그런데 좋은 일만 있는것이 아니였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건 담임선생님들이 자기를 리해해주지 못하는 일이였다. 어떤 담임선생님들은 자기네 반 공부가 괜찮은 애들이 축구가 좋아서 축구대에 들어가자 애들의 공부에 지장이 간다며 달가워 하지 않았다.

  몇몇 담임들은 먼저 애들을 찾아 담화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어 학생을 축구대에서 뺄것을 건의했고 아이들이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립장이 곤난하게 되였다.

  이 사실을 안 윤선생님은 먼저 애들에 대한 요구부터 엄격하게 했다. 축구를 핑게로 공부를 소홀히하는 학생은 축구팀에 들어 올 자격이 없다며 축구대훈련에 나오더라도 꼭 학습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쓴 각서를 들고 담임선생님들을 찾아가 하나하나 설득시켰다. 이렇게 윤선생님이 애쓴 보람으로 학생들은 마음놓고 훈련에 참가할 수 있었으며 그들의 학습열정은 오히려 더욱 높아졌다. 윤선생니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학교 축구대는 상지시급시합에서는 나갔다 하면 일등을 했고 할빈시조선족학교축구경기에서도 여러번 일등을 따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전성축구경기에서도 동메달을 따게 되였다.

  그외 여러 학생들이 축구특기생으로 혹은 체육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도 있다. 그리고 윤선생님도 흑룡강성교육청으로부터 우수교련원 칭호를 수여받았다.

  스마일즈의“본보기는 무성의 가르침이고 가장 유력한 교육자이다”라는 말을 실천으로 보여준 윤학선선생님, 입이 아니라 자신의 두손으로, 두발로 사업을 해나간 윤학선선생님, 축구장에 자신의 청춘과 정열을 바친 윤학선선생님. 퇴직을 바라보는 윤선생님은 오늘도 학생들과 학교운동장을 누비며 축구훈련에 열정을 불사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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