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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두드려서 열어놓은 고수의 세계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1.04.14일 11:38



북의 왕으로 불리는 진경수.

진경수가 맨 처음 살았던 동네는 사면이 산에 빙 둘려 있었다. 실제로 초기의 이주민들은 꽁꽁 쌓인 보루와 같다는 의미로 동네를 위자구라고 불렀다고 한다. 위자구는 연변의 국경도시 도문에서 서쪽으로 꽤나 떨어진 시골이다. 에울 위가 동음의 갈대 위로 바뀌어 쓰인 것은 후날의 이야기이다.

뭐라고 하든지 고향은 어린 진경수의 기억에 크고 작은 산등성이와 들쭉날쭉한 나무들만의 따분한 흑백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었다. 아니, 이 그림에는 간혹 비가 온 뒤의 하늘처럼 칠색의 무지개가 떠오르고 있었다. 논배미를 타고 흥얼거리던 아버지의 노래는 사막처럼 건조한 생활에 파아란 잎사귀를 피웠다.

“푸름한 새벽에 해지는 저녁에

논물을 보살피며 다닌 논 두둑 길 얼마더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꽃잎을 열어놓았다. 총각의 마음은 어느덧 갈대잎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숲속의 갈대잎처럼 바람을 타고 산을 넘고 싶었다. 논배미를 지나 산 너머 저쪽에는 오매불망 바라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일터에선 말없이 일만 하던 그 총각

밤이면 이때마다 손풍금을 타네…”

정작 손풍금을 탈 수 있은 것은 중학교 때였다. 그때 룡정현 로투구중학교에서 따로 문예체육반을 조직했는데, 각 지역에서 어린 재간둥이들을 뽑아갔다. 덕분에 진경수는 손풍금을 익힐 수 있었고 무용을 배울 수 있었다. 춤사위로 한동안 이름을 날리기까지 했다. 나중에 룡정현 중학교 문예경연 때 진경수는 3인무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로 우수상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는 아직도 어제인 듯 눈앞에 선하다.

“그 시대의 미풍량속을 그린 무용작품이었지요. 비가 줄줄 내리는데요, 손수레를 끌고 가던 할아버지가 그만 땅에 넘어져요. 그러자 녀자 아이 둘이 달려와서 할아버지를 부축해요. 할아버지는 마침내 집으로 무사하게 돌아가요.”

3인무에서 흰 수염을 날린 ‘할아버지’가 진경수였다. 이때 애된 총각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금세 온화하고 중후한 ‘할아버지’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천부는 ‘어린 나이’에 두각을 드러냈고 내공은 ‘늙은 나이’로 숙련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문턱을 넘고 갈수록 그 세계에 가까워지는 듯 한다. 진경수는 종국적으로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음악사범학부에 입학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춤에만 그치는 게 아니였다. 음악하면 이것저것 뭐든지 다 배워야 했다.

“작곡과 작사를 배워야 했어요. 악기도 배워야 했고요.”

악기는 최소 한 가지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했다. “저는 건반이 있는 악기는 아예 멀찌감치 물러섰어요.” 진경수는 인터뷰 도중에 내밀한 그의 세계를 얼핏 드러낸다. “저도 콩나물처럼 손가락이 길쭉길쭉하면 오죽 좋겠는데요…”

그때 연변에는 나이트클럽, 무도장이 많았다. 이에 따라 드럼이 한창 유행을 타고 있었다. 드럼 소리를 들으니 금세 마음이 둥둥 공중에 떴다. 어느새 손이 근질근질했다. 진경수는 학교 연습실에 돌아오면 곧장 북 앞에 마주 앉았다.

“눈에 잠깐 익힌 대로 얼추 북을 쳤어요. 그런데 둥둥 당당 하는 북소리에 누군가 지나다가 크게 웃어요. 너무나도 한심했나 봐요. 하긴 북 교과서도 읽지 못했고 북을 배우지도 못했거든요. 아예 북 개념도 모르고 제멋대로 두드린 거지요.”



세계적인 한국국악인이며 사물놀이 대표인물의 한 사람인 김덕수와 함께(오른쪽 진경수).

북은 대표적인 타악기로 동물이나 적을 위협하여 격퇴할 때, 또 제사나 주술용으로, 경보나 신호의 도구로, 음악표현을 위한리듬악기•선율악기로 사용되여 왔다. 옛날에는 통나무를 잘라 안을 파서 사용했으나 지금은 길쭉한 나무판을 모아 북통을 만들고 양면을 가죽으로 씌운다. 구조가 간단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세계 모든 지방에서 그 발생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을 치는 일도 식은 죽 먹기라는 말은 아니다.

“자칫하면 얼렁뚱땅 쉽게 북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엄청난 학문이지요.”

북의 연주법으로는 북채에 의한 북치기, 손이나 손가락에 의한 북치기 그리고 마찰하는 방법이나 악기를 진동시키는 등 다양한 기법이 있다. 북은 그 생김새에 따라 이름이 각각 다르며 음악에 따라 각기 다른 북을 사용한다고 한다.

진경수는 소개를 받아 연변 최고의 드럼 연주자 현철을 만난다. 그때 현철은 연변가무단의 악사로 있었다. 그에게서 진경수는 손놀림부터 시작하여 북을 하나씩 본격적으로 배우고 익힌다.

악사 현철은 진경수의 네 살 손위였다. 그는 스승 앞서 형님 맞잡이였다. 사실 진경수도 이때 학생이자 스승 격으로 되고 있었다. 현철의 수하에는 진경수를 포함하여 학생이 넷이였는데, 음악리론과 악보에 숙지한 건 진경수 하나뿐이였다. 그래서 진경수는 기타 3명의 학생에게 스승으로 되여 음악리론과 악보를 가르쳤던 것이다. 나중에 그를 남달리 북에 숙지하고 북을 잘 칠 수 있게 한 원인이기도 한다.

북의 소리는 북을 배우는 진경수에게 다른 세계를 열고 있었다.

“북은 절주 음악이지요, 장단과 강약이 중요합니다.”

“타악기라고 해서 소리만 강해서는 안돼요. 자칫하면 다른 음악이 죽어요.”

“음색이 중요합니다. 음악 속에 들어가 함께 융합되여야 해요.”

“…”

어느덧 진경수는 명실상부한 음악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진경수는 길림성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의 타악기 연주가로 되였다. 후날 그는 크고 작은 북을 만나고 이곳과 저곳의 북을 만난다. 북은 그냥 북이였지만 더는 같은 북이 아니였다. 모양새가 다르고 장단이 다르며 음색도 달랐다.

“어떤 북은 기교 장난을 하는 것 같아요. 몸(기교)을 갖고 노는 것 같아요. 속(마음)이 없어요.”

“우리 북에는 감흥이 울립니다. 북소리는 정감을 담고 있어요.”

북은 감을 주고 흥을 주며 정을 준다. 듣는 사람은 너도나도 마음이 울린다. 저도 몰래 어깨를 들썩들썩 한다.

북의 가락은 악사의 호흡과 몸의 놀림이 한데 아우른다. 북재비가 고수일수록 원숙한 기교가 그림자처럼 뒤따른다. 북에 가락과 장단에 잘 실릴수록 감동은 심금을 더 울리며 마음을 마음에 잘 전한다.



제1회 전국민족기악콩쿠르에서 제자들이 ‘사물놀이'로 3등상을 수상했다.

드디어 북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북을 제대로 두드릴 줄 알 것 같았다. 이슬람 설화의 ‘천일야화’처럼 알리바바가 동굴의 문을 열었던 주문을 비로소 알게 된 것 같았다.

“열려라, 참깨야!”

그러나 동굴의 문은 이윽토록 열리지 않았다. 남들에게 진경수는 그저 북을 즐기는 북재비일 따름이였다.

2006년, 북재비의 고수(高手)를 여기저기 물색하던 중국의 유명 무용인 손룡규가 어찌어찌하다가 나중에 진경수를 찾아왔다. 손룡규는 이 무렵 연변에서 대형 음악무용서사시 ‘천년 아리랑’을 창작하고 있던 참이였다. ‘천년 아리랑’은 중국 조선족의 삶을 력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진경수는 연길 어느 아파트의 지하방에서 살고 있었다. ‘공룡’이라면 아직도 땅 밑을 기고 있는 ‘지렁이’였다.

‘백락이 천리마를 알아본다.’ 지하방에서 손룡규를 먼저 맞아준 것은 복도에 진경수가 휘갈겨 써놓은 글귀였다. “두드리면 열린다.” 북에 대한 북재비의 남다른 생각과 행동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찰나였다. 후날 손룡규는 그때의 감수를 이렇게 말한다. “그 한마디가 마음에 탁 닿아 와요. 그래서 만나기도 전에 ‘바로 이 사람이야’하고 방점을 찍어 놓았지요.”

대형 음악무용서사시‘천년 아리랑’은 그해 9월 제3회 전국소수민족문예공연에 참가하여 최고의 대상을 받는다. 이 무용서사시에서 절정을 이룬 것은 극의 제일 마지막 부분이다. 99개의 북이 3면으로 두른 그 가운데 묶음북(고음중음저음의 삼북)이 놓였다. 묶음북 개개의 직경은 1메터나 되었다. 북채는 두 개로 각기 60센티메터나 되였다.

고수(鼓手)의 큰 북재비는 당연히 진경수였다.

99개의 북으로 펼친 북춤은 묶음북을 삼면으로 둘러싸고 묶음북의 소리에 호흡을 맞췄다. 그야말로 벌떼가 윙-윙-하니 왕벌을 옹위하고 군무를 추고 있는 듯 했다.

진경수는 북채로 꼬박 3분 내내 묶음북을 두드린다. 분당 무려 280회의 타수(打数)였다. 그야말로 드넓은 초원을 일제히 달리는 천군만마를 눈앞에 떠올리게 했다.

관객의 박수가 광장을 채웠고 ‘재청!’의 외침이 무더기로 울렸다.

진경수는 홀로 북 가락을 다시 하늘에 튕겨 올렸다. 허공을 오르내리던 북채가 문득 털썩하니 땅바닥에 동댕이친다. 순간 공중에서 북소리가 딱 멈췄고 뒤미처 관석에서 환성이 크게 터졌다.



‘천년 아리랑'에서 진경수가 묶음북을 치는 장면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순간만은 하늘이 활 열리고 땅이 쫙 열릴 듯 했다.

그때 그 시각은 관중들에게 오래도록 화제에 올리는 명장면으로 새겨졌다. 그날을 회억할 때면 진경수는 언제나 또 한번 흥분한다. 그 후 진경수는 여러 번이나 주급과 성급 지어 국가 대상을 받았지만 그 순간만은 영원토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았다.

산정의 정복은 언제나 등산인에게 그저 한번의 만족이요, 영광일 따름이다. 또 오르고 싶고 올라야 할 산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 진경수는 타악기를 배우고자 비행기에 오르고 기차에 올라 한번 또 한번 산과 강을 건넜다.

30여 년 동안 진경수는 대륙과 반도 방방곡곡의 북재비를 수없이 만났고 북소리가 들리는 책도 수없이 읽었다. 연변 나아가 여러 성과 도시 지어 인민대회당과 중앙방송국의 특별공연에 참석했다. 와중에 국가 일급 연주원으로 되였고 연변조선족자치주 무형문화재 ‘농악무 장단’의 대표적인 전승인으로 되였다.

그럴수록 북은 점점 커졌고 북채는 점점 무거워졌다.

“중국 땅에서 저는 제일 처음으로 사물놀이를 만들었습니다. 농악 장단의 정수가 바로 사물놀이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이 음악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전승하고 싶습니다.”

“생명에는 끝이 있다. 그러나 전승에는 끝이 없다.” 진경수의 또 하나의 좌우명이다. 그의 제일 큰 욕심은 아들에게 북채를 잡아주는 것이다. 진씨의 가족에 제2대, 제3대로 대대손손 전승인을 이어가고 싶단다.



아들 진위와 함께 중앙TV 제3채널 프로그램에서 공연.

아들 진위는 전승인의 제1대로 아버지의 뜻을 참답게 이어받고 있었다. 그는 조선민족 타악 연주에서 더 깊은 맛과 멋을 배우고 알리기 위해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 무용학부에 재학 중이라고 한다.

정말 욕심에도 끝이 없는 걸까. 진경수는 하나만 아닌 군체에게 모두 북채를 잡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현재 연변에는 북을 즐기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헤아린다. 진경수는 그들 모두를 북재비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사람마다 북을 치는 고수(鼓手)로, 또 북을 잘 치는 고수(高手)로 되게 하고 싶단다.

실제로 진경수는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장고절주 과목의 객좌교수를 담임하고 있다. 또 연변라지오방송 문예부의 귀빈으로 되여 화요일마다 장고 교학을 사회하고 있다. 연변의 연길과 화룡에 농악장단의 전승기지를 만들었고 또 장춘시의 길림성문화관에 ‘진경수교학훈련기지’를 세웠다.

벌떼는 녀왕벌을 따라 둥지를 만든다. 진경수는 더는 단순한 북재비만 아닌 북의 왕이다. 그가 북의 소리를 울리는 그곳은 분명히 북을 즐기는 사람들의 황홀한 ‘둥지’요, 세계로 되고 있었다.

글/사진 북경 김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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