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시골서 작사 작곡에 여념하는 한 농민
(흑룡강신문=연변) 윤운걸 길림성특파원 = "조선족마을에 문화생활이 사라져 참으로 안타깝다."며 한탄하는 한 농민작사,작곡가가 있는데 그가 그젯날 연변조선족자치주 룡정시 동성향 문화소 소장으로 사업하던 리찬수(63세) 씨이다.
룡정 동성향은 해란강변에 자라잡고 있어 지금도 벼 곡창지대로 불리우고 있고 입쌀 또한 소문이 나있는 고장이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족농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대부분 한국 혹은 대도시로 나가는 바람에 농사는 한족들이 농사를 짓고있는 현실에 처해있다.
리찬수씨의 소개에 따르면 그젯날은 물론 지금도 룡정 동성향 입쌀은 이미 브랜드로 각광받아 린근은 물론 수많은 지역에서 대량으로 구매해 가고 있다. 그가 80년도에 동성향 문화소 소장으로 있을 때만해도 입쌀농사는 매년마다 풍작을 거뒀고 또 2만여명의 인구의 14개 촌마다 문화실이 있었다고 한다. 매번 농번기 특히 매주마다 2차씩 젊은이들은 문화실에 모여 문화서적,농업지식을 학습했고 또 정기적으로 노래교실을 열어 노래를 가르쳤고 필요시에는 음악교사를 초청해 노래를 가르쳤다고 한다. 물론 명절이거나 향 문예경연대회를 정기적으로 조직해 농촌문화생활이 아주 잘 보급되였단다. 또 시에서 열리는 문예경연대회에 빠짐없이 동성향을 대표하는 문예팀을 보냈는데 그가 작곡한 '과학일군의 노래'는 1등상을 받아 지금도 당시를 회억하면 굉장히 뿌듯하다고 속심을 털어놓았다. 그뿐이 아니다. 시의 경연대회에서는 각종 출연상을 거머쥐어 참으로 문화소 사업을 열심히 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그후 91년도에 동성소학교 교장으로 부임해서도 작사,작곡을 지속적으로 해왔는데 룡정시 학교계통 문예경연대회에서는 그가 창작한 '우리 어머니'는 표현창작상을 수여받기도 했단다.
그때 그 시절을 회억하는 리찬수씨, 지금은 애수에 잠겨있다. 사회적으로 경제를 앞세우는 시대가 들어서면서 너도나도 돈을 벌려고 몸부림 치다보니 젊은이들은 대부분 농촌을 떠나고 문화기구라는 지도기구는 있지만 농촌 문화실은 문을 닫은지 오래됐고 오직 로인들만 독보조를 무어 놓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농민들의 문화생활은 거의 사라지다 싶이 하여 참으로 지금의 농촌은 삭막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찬수씨는 지금도 손풍금을 손에 놓지 않고 작사,작곡에 여념하고 있다. 그는 농촌의 자연을 노래하는 작사 혹은 작곡들을 수많이 지었는데 그중 '그네'라는 작곡,'산삼타령'이라는 작사,'오미자'라는 작사,'우리네 시골사람'이라는 작곡 그리고 '아내의 노래','파란 봄','어머니 은정'등 노래작곡들은 모두 농촌현실에 몸 담그면서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펴냈던 것이다. 그래서 그가 작사 혹은 작곡한 노래들은 순수 향토맛이 푹 배여있는 노래들이여서 구수한 '된장냄새'가 확 풍기고 있다.
그는 지금도 이 시골땅에서 땅을 부치면서 채소전을 가꾸는 한편 열심히 작사,작곡을 하고 있다.
리찬수씨는 "아무리 경제시대라 하지만 조선족의 예술문화는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면서 "정부에서 농촌의 문화생활에 깊은 중시를 돌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내가 시골 문화생활을 재 태생시키겠다는 마음으로 지금도 작사,작곡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오늘날 연변의 시골마을에서 리찬수씨처럼 작사,작곡에 여념하는 농민은 둘을 꼽으라면 힘들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