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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초대석>“오바마, 대선탓 독도입장 애매… 재선되면 중재 나설것”

[기타] | 발행시간: 2012.10.17일 15:03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가 지난 9월29일 뉴욕주 아몬크 미드로드에 위치한 자택 정원에서 “김정은시대가 열리면서 북한 사람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얘기하기 시작한 만큼 한·미 양국이 힘을 합쳐 북한을 고립에서 탈피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도널드 그레그(85) 전 주한 미국대사는 민주화 전후 한국에 대해 가장 생생한 경험을 갖고 있는 원로다. 1970년대엔 미국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으로서 유신체제 성립과정을 지켜봤고, 1980년대 말엔 주한 미대사로서 민선대통령시대 한국의 변화를 체험했다. 1990년대엔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으로서 남북교류에 앞장섰고 독도 논란 등이 제기될 때엔 가장 적극적으로 한국의 입장에 서서 미국의 조야를 설득해 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그의 과도한 ‘애정’은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노스코리아 소사이어티냐’는 지적을 낳았고, 이 과정에서 그는 이사장 직에서 물러났다.이후 천안함사태에 대한 한·미 양국의 공식입장을 비판하면서 그는 논란 속의 인물이 됐다.

한·일 독도 갈등이 깊어지던 지난 9월29일 미국 방문길에 뉴욕주 아몬크에 위치한 그의 자택을 방문, 독도문제와 남북미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이미숙 국제부장(뉴욕)]

―그간 한반도 관련활동이 뜸했는데 근황은?

“1년 반에 걸쳐 자서전 ‘도자기 조각(Pot Shards)’을 썼어요. 생애 첫 저작인데, 내가 경험한 것을 더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야 할 것 같아 작업을 했습니다.”

그가 책 제목을 ‘도자기 조각’으로 정한 것은 과거의 기억이 도자기 파편처럼 부분적으로 떠오른다는 점에서 착상한 것인데, 실제 그는 도자기 애호가이기도 하다. 19세기 목조건물인 그의 집 안 곳곳엔 한국도자기들이 놓여 있고 도자기전시회 포스터도 벽에 걸려 있다. 그가 보여준 자서전 초고의 서문을 읽어보니 1962년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을 만난 기억, 1971년 베트남전에서 심한 화상을 입은 미군 병사를 본 충격, 1973년 서울에서 필립 하비브 당시 주한 미대사로부터 김대중 도쿄(東京) 납치사건을 들었을 때의 일화가 기록돼 있다. “케네디에 대한 기억을 자서전 도입부에 기록한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내겐 각별한 지도자”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케네디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세상을 구했어요. 당시 사람들은 쿠바에 미사일 공격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실행됐다면 아마 끔찍했을 겁니다. 그때 나는 CIA에 입사한 신참이었는데 백악관에서 봤던 케네디의 고뇌 어린 표정을 평생 잊지 못합니다.”

―독도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간에 갈등이 점증하고 있습니다.

“요즘 일본의 행태에 대해 아주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은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문제 삼아 일본이 독도 영유권 논란을 벌이고 종군 위안부의 존재까지 부인하는 것은 더 심각합니다. 독도뿐 아니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중·일 갈등도 우려스럽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이 중동에서 발을 빼며 아시아에 대한 입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한번도 우리의 동맹이었던 적이 없는 나라지만, 앞으로 우리의 적이 돼서는 안 될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이 영토 갈등을 좀 진정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봤으면 합니다.”

―독도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가쓰라-태프트 조약 책임론을 여러 차례 지적해 오셨는데.

“미국이 일본의 한국 진출을 묵인해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것은 아주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가쓰라-태프트 조약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만큼 미국은 그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그 과거를 기억하고 잘못을 반성해야 하는 것은 다시 그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한·중·일 영토분쟁에 대해 입장이 없다는 입장인데 글로벌 균형자로서 무책임한 것 아닌가요?

“미국은 대선시즌이기 때문에 애매한 태도를 견지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면 좀 더 이니셔티브를 발휘할 것으로 봅니다.”

―가해국인 일본과 피해국인 한국에 같은 수준으로 자제를 요청하는 것은 공정한 접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의 입장을 이해합니다. 현재 일본의 리더십은 신뢰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모든 나라엔 극단주의자들이 있습니다. 미국에도 티파티가 있듯이 일본도 그렇습니다. 현재로서 미국은 한·일 양측에 대화를 주문할 수밖에 없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이 이뤄지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봅니다.”

―자서전에서도 한·일 갈등을 다뤘습니까.

“특별하게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도자기 파편을 좋아하는데 이것을 볼 때마다 이 조각들은 왜 여기에 있고, 다른 조각들은 어디로 갔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기억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사라져버린 게 있는데 자서전에는 내가 기억하는 것을 적었습니다. 내가 경험한 베트남전쟁, 내가 본 한국과 일본, 미얀마, 그리고 일하며 만난 사람들에 대해 기록한 것입니다.”

―한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1952년 한국전쟁 때입니다. 당시 나는 사이판의 CIA 훈련기지에서 북한에 투입할 한국군 낙하산 부대 훈련을 담당했습니다. 그후 1980년대 주한 미대사를 지낼 때 우연히 골프장에서 사이판 훈련생이었다는 한국군 출신 인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사이판 훈련 후 북한과 만주에 파견돼 싸웠다더군요.”

―놀랍네요.

“그때 내 나이는 불과 23∼24세였습니다. 그후 처음 한국에 온 것은 1968년인데 도쿄 CIA지부 근무 중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재일 조선인들을 차별했는데 그런 일본인들의 태도에 반감이 생기더군요. 그래서 직접 한국을 보고 싶어 방문했는데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그후 1973년 한국 근무를 하게 됐습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에 대해선 어떻게 기술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썼는데 이 가운데 나는 박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는 분명한 리더십을 지녔고 경제발전에 대한 확고한 비전하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과 정주영 현대 그룹 명예회장을 지원했습니다.”

―서울 부임 때 한국은 유신전야여서 사회적 갈등이 심했을 터인데.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 부부가 아몬크 미드로드 자택 정원에서 함께 초가을 오후의 햇볕을 즐기고 있다. 그레그 대사는 이 집에서 부인 마거릿이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때 와보니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정권의 제2인자 역할을 하더군요. 그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비호감이었습니다. 이후락이 북한에 다녀온 뒤 만났을 때 김일성에 대해 물었더니 ‘아주 강력한 지도자(very strong man)’라며 찬양하는 식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유신을 통해 김일성과 같은 스타일을 한국에 구현하려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후 야당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쿄에서 납치되고 대학생들의 유신반대 시위가 격화되면서 최종길 교수가 의문사했을 때 당시 상황을 CIA에 보고하면서 ‘이 같은 권력행태가 많은 문제를 낳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랬더니 본국에서는 내게 ‘내정에 관여하지 말고 보고만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지침을 지키지 않고 ‘피스톨 박’(박종규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가서 ‘미국 정부의 권위를 갖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 교수의 죽음은 아주 참혹한 사건이며, 그런 일을 하는 기관과 협력하는 게 즐겁지 않다. 이후락이 김일성체제와 유사한 체제를 한국에 구현하려는 것 같다’고 지적했습니다. 그후 이후락은 경질됐고 신직수 후임 중앙정보부장이 내게 ‘법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고문도 금지시켰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대미관계의 중요성을 안 인물입니다.”

―노태우 정부를 주한 미대사로서 지켜봤는데.

“노 전 대통령에 대해서 한국에서는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나는 그가 박정희, 김대중처럼 많은 업적을 낸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서울에 대사로 부임할 때 한국은 동유럽 1개국과 수교한 상태였는데 떠날 때엔 동유럽 모든 나라들과 수교를 했을 정도로 외교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 가장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그는 대통령 당선 후 제게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깃발을 북한에 꽂아달라고 주문했습니다. 그래서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북한을 포용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했고 2002년 처음 북한을 방문한 이래 다섯 차례 방문하며 남북미 가교역할을 해왔습니다.”

김대중 시대 이후에 대해 묻자 “노무현 정부와는 별 관련이 없어 잘 모르겠고, 이명박 정부는 지나치게 원칙적인 대북정책을 펼쳐 문제라고 생각한다”면서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이 대통령과 불편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요.

“나는 이 대통령이 중국과 수교를 이끌어낸 리처드 닉슨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에 북한과의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본 것이죠. 그런데 천안함사건이 발생하면서 그런 모멘텀은 사라졌고 이 대통령은 북한에 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장 시절 북한포용에서 더 나아가 너무 북한을 감싼 게 아니냐는 비판도 있는데.

“글쎄요…. 하지만 내가 북한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의 변화가 어떤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난 4월 북한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미국과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북한은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하며 핵을 포기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면서 북한 인사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김정은 시대 북한에 대해 너무 낙관적인 게 아닌가요.

“김정은은 북한을 변화시키려 할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난 2009년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김정은을 초청해 오리엔테이션 투어를 하자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측에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공화당 측에서는 일축하는 바람에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미국 대선 후 북·미관계에도 변화가 있을까요?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재난이겠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면 북·미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그는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시작되면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이 국무장관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케리 위원장은 한반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고 북핵해결에 대해서도 의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집을 나설 때 한국 대선 전망에 대해 묻길래 “아직 안갯속”이라고 답하면서 “한국의 대선 후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그는 박근혜 후보에 대해선 “서강대 다닐 때부터 봤는데, 아버지의 두뇌와 어머니의 가슴을 지닌 것 같다”고 평했고,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 대해서도 “한국을 새롭게 이끌 만한 리더들”이라고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 대선에서 세 후보 중 누가 되든 모두 좋은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면 한·미 양국이 힘을 합쳐 북한을 고립에서 탈피시켜야 합니다.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의 부채를 탕감해준 것은 아주 현명한 결정입니다. 한·미 양국은 푸틴 대통령의 선제적 대북 이니셔티브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오찬을 겸한 3시간여의 대화를 마친 뒤 그는 노스 화이트 플레인역까지 손수 자동차 운전을 해줬다. 작별 전 그의 오랜 친구인 돈 오버도퍼(81) 존스홉킨스대 한미관계연구소장의 근황에 대해 물었더니 “몇 년간 만나지 못했다”면서 “파킨슨병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듯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듀엣이 돼 방북했던 기억의 파편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그는 침묵 속에서 운전에 열중했다. 그리고 열차역에 도착해 작별인사를 하는 그를 보면서 남북한 문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인데 ‘미국의 위대한 세대(great generation)’로 불리는 원로들이 한반도를 위해 ‘자원활동’을 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글·사진 = musel@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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