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암역 납치' '연신내 살인' 등 수사결과 모두 거짓으로 판명
112 장난신고처럼 경찰력 낭비
전기통신법 처벌조항 있었지만 '미네르바 사건' 때 위헌 판결…
특정인 명예 실추시키지 않아 명예훼손 혐의 적용도 어려워
"30일 오후 10시에 (인천) 검암역 부근에서 흉기를 소지한 남성 여러 명이 위협해 인신매매 당할 뻔했어요. 동암역 부근에서 차를 정차한 순간 겨우 빠져나왔네요."
지난달 초 인천 서부경찰서는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일파만파 퍼진 글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원본 글에는 "나도 화를 입을 뻔했다" "검암역 부근에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린다" 등의 글이 덧붙여졌다. 네티즌들은 "무서워서 검암역 부근은 절대 안 가야겠다" "출근하면 집에 와이프랑 애뿐인데 불안해서 어쩌죠"라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수사 결과 이 글은 거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처음 글을 올린 이는 중학교 3학년 임모(15)군이었다.
최근 SNS를 중심으로 '허위 112 신고'에 해당하는 각종 '괴담(怪談) 해프닝'이 계속되고 있다. 인신매매, 살인 등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경찰은 이 같은 허위 사실을 유포한 이를 찾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 유포자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제1항'이 2010년 12월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이들에게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하자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 같은 허위 사실 유포가 특정인의 명예를 실추시킨 게 아니라서 실제 적용이 쉽지 않다.
작년 9월 "여수시청 뒤편 공원에서 시신이 발견됐는데 장기가 없었다. 장기를 노린 살인사건"이라는 얘기가 SNS에서 나돌았다. 전남 여수경찰서에는 이와 관련 민원 전화가 폭주했다. 수사 결과 역시 허위였던 이 사건 때문에 여수경찰서는 "유언비어를 날조한 유포자를 색출하여 엄정 사법 처리할 방침"이라는 보도 자료까지 배포했다. 하지만 실제 처벌 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처벌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수사의 실익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수사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허위 여수시청 살인 사건'보다 1년 앞서 퍼진 '허위 순천 인신매매'의 최초 유포자로 지목된 A(16)양은 경찰 조사에서 "사람들이 내가 쓴 글을 많이 읽으면 인지도가 상승하는 것 같아, 자극적으로 글을 쓰게 됐다"고 진술했다.
이 같은 SNS 허위 글 유포로 경찰력 낭비도 상당하다. 지난해 중반 카카오톡, 트위터 등에서는 "연신내에서 (4월) 22일 오후 10시에 한 건, 23일 오전 2시쯤에 두 건의 살인 사건이 났다. 범인은 도망갔는데 베이지색 바지와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글이 퍼져 은평경찰서는 강력팀 형사 등 25명을 현장에 보내 수색을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이 같은 SNS 허위 사실 유포는 112에 장난전화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찰력 낭비를 불러온다"며 "112 장난전화는 그나마 처벌할 수 있지만, 인터넷 괴담은 처벌할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 교수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일파만파 퍼진 '전국민 동원령 괴담'이나 '예비군 징집령 괴담'과 같이 남북 대치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큰 동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괴담까지도 처벌하지 못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석남준 기자 엄보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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