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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ISSUE]왕실서도 먹던 별미 죽, 웰빙음식 대표선수로

[기타] | 발행시간: 2013.01.12일 13:50

● 우리문화 톺아보기… 죽의 미학

[동아일보]

《 떡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죽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떡은 경사스러운 날 축하하는 의미로 해 먹고 제사상, 고사상에도 올라간다. 그러나 죽은 소화력이 떨어진 노약자나 아픈 사람 그리고 가난한 이들이 먹는 음식으로 인식돼 왔다. 똑같이 곡류로 만든 음식이지만 떡과 죽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이렇듯 다르다. 옛 문헌에 나타난 밥의 종류가 100가지, 죽의 종류가 200가지에 가까운 데 비해 떡은 그 종류가 250가지에 이른다. 확실히 떡은 종류도 많고, 모양도 다양하고 화려하다. 또 엄숙한 의례에 빠져서는 안 되는 특식이기에 위상도 높다. 하지만 다른 재료를 받아들여 변용하는 능력에선 죽을 따라갈 수 없다. 》

밥을 할 때는 다른 곡류를 섞어 잡곡밥을 짓거나 감자 콩나물 등 채소류를 쌀과 함께 넣을 수 있다. 떡은 잡곡은 물론이고 무와 같은 채소, 꽃, 과일과 견과류까지 받아들인다. 하지만 밥과 떡이 고기 같은 동물성 재료를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런데 죽은 곡류, 채소류, 과일 및 견과류는 물론이고 고기와 해조류, 어패류까지 다 수용해 소화해낸다. 심지어 약재를 섞어 보양죽을 만들 수도 있으니, 죽의 포용력은 실로 무한하다 할 수 있다.

무한한 포용력 지닌 어머니 같은 음식

죽의 이런 포용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마도 주재료인 알곡이 본래 자기 모습을 잃어버림으로써 그런 포용력이 생기는 듯하다. 그리고 이 포용력은 물의 양과 관계가 깊다. 밥과 떡, 죽 가운데 떡은 가장 마른 음식에 속한다. 죽은 물기가 가장 많은 편이다. 떡이 곡식의 양(陽)적 변용이라면 죽은 음(陰)적 변용이다. 그래서 모성처럼 한없이 너그럽고 부드럽다. 밥은 적당한 물기를 머금고 있어 중도(中道)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런 중도의 미덕으로 밥은 일상식으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죽은 ‘또 다른 형태의 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밥 대신 죽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의 면모는 밥의 그것보다 훨씬 다양하다. 밥에는 된밥과 진밥밖에 없지만 죽은 조리 후 알곡의 상태에 따라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알곡이 보일 정도면 ‘옹근죽’, 알곡을 반 정도 갈아 쑤면 ‘원미죽’이다. 알곡을 다 갈아 곱게 쑤어낸 것은 ‘무리죽’이라고 한다. 미음은 알곡을 통째로 푹 고아 거른 것으로, 쌀이나 메조 등에 물을 많이 부어 반투명해질 때까지 쑤다가 체에 밭쳐낸다. 가장 묽은 종류는 ‘응이’(薏苡·의이)로, 죽이라기보다 기호음료에 가깝다. 곡물이나 칡, 마 등의 식물성 전분을 물에 푼 후 오미자즙이나 꿀, 생강즙 등 여러 향미액을 넣어 만든다. 서양에도 포타주, 포리지, 콩소메 등 묽기에 따른 수프의 구분이 있지만 우리 죽의 농도는 그보다 훨씬 세분돼 있다.

거친 재료를 부드럽게 만드는 능력

오늘날 사람들은 아침에 밥이 잘 안 들어가면 빵이나 시리얼을 먹지만 예전에는 죽을 많이 먹었다. 그래서 죽은 이른 아침에 먹는 초조반상(初朝飯床)의 단골메뉴였다. 고종 황제는 아침에 우유로 쑨 타락죽을 즐겨 드셨다고 한다. 간단히 먹는 점심에도 죽을 먹는 경우가 흔했다. 죽으로 상을 차릴 때는 김칫국이나 명태 보푸라기 등 부드러운 반찬을 주로 올렸으며 때론 절편 같은 담백한 떡을 곁들여내기도 한다. 이처럼 죽은 한 끼 식사도 될 수 있고 때론 가벼운 요깃거리, 때론 고급 음료까지 될 정도로 무척 다양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굶주리는 이의 허기를 달래줄 때 죽은 가장 소박한 모습을 보여준다. 보리가 채 여물기도 전에 이삭을 훑어다 찧어 쑤는 보리범벅은 보릿고개를 넘기는 대표적 구황음식이다. 삶은 진저리나물(꼬마 고사릿과)에 미역과 청각을 풍부히 넣고 약간의 곡물로 쑤어낸 진저리죽 역시 흉년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는 음식이었다. 구황음식의 재료는 대개 거칠며, 특히 죽에는 이질적인 재료가 종종 들어가곤 한다. 아주 적은 곡물로 거친 재료를 부드럽게 만들어주거나, 일상적으로 섞이기 힘든 재료를 조화롭게 융화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죽의 힘이다.

굶주린 기억 씻어내고 죽의 너그러움 이해해야

산업화 시기 때만 해도 죽은 주로 가난하고 배고픈 이의 벗으로 여겨졌다. 그렇지만 옛 문헌에 등장하는 죽은 거의가 별미 보양식이다. 쇠고기를 끓여낸 맑은 장국이 가장 자주 쓰이는 기본 육수이고, 여기에 쇠고기, 전복, 어물, 콩, 팥, 잣, 깨, 호박, 녹두, 버섯, 호두 등을 넣고 죽을 쑨다. 이런 재료는 오늘날에도 널리 쓰인다. 그 밖에도 대추와 살구, 곶감 등 과일과 연밥, 살구씨 등 식물의 종자로도 죽을 만든 기록이 있다. 우리 음식문화에서 이렇게 다양한 죽이 발달한 것은 죽 자체의 무한한 포용성에 우리 민족 특유의 융합 능력이 더해져 광범위한 변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죽은 건강식이자 별미로 다시 인식되기 시작해 죽 전문점도 많이 생겼다. 그러나 아직은 다양한 전통 죽을 모두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죽은 참살이(웰빙) 음식으로 손색없으며 영양도 풍부하지만 약간의 오해 탓에 대중적 확산이 미뤄지고 있다. 바로 죽은 아픈 사람이 먹는 것, 가난할 때 먹던 음식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죽은 아프고 배고픈 자를 위로하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왕가와 반가(班家)에서 즐겨 먹던 별미이자 고급 음료라는 측면도 강했다. 죽을 가난하고만 연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죽 먹던 시절의 상처와 치욕만 기억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죽 먹던 시절을 더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할 만큼 여유가 생길 때 죽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죽은 다른 재료를 받아들이는 포용력과 놀라운 응용력, 그리고 다양한 농도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우리가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죽이라는 음식이 가진 너그러움과 유연함, 개방성, 다양함, 겸손함이다. 떡이 제사상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때, 죽은 고관대작은 물론이고 아프고 배고픈 이들의 곁도 지켜왔기 때문이다.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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