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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겨울나기 힘든 사람들]주거빈곤층, 그들은 한파에 어떻게 버티나

[기타] | 발행시간: 2013.01.16일 11:43
ㆍ노숙인·쪽방촌 주민·철거민 등 주거 상태 열악한 사람들의 ‘추위와 전쟁’

1월 첫째주는 27년 만의 한파와 함께 시작됐다. 기상청은 1월 내내 평년보다 추운 날씨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숙인, 쪽방촌 주민, 철거민 등 우리 사회에서 주거상태가 가장 열악한 주거빈곤층의 겨울나기 모습을 살펴봤다.

1. 노숙인

황창근씨(가명)는 앉아서 무가지를 읽고 있었다. 머리에는 귀까지 덮이는 모자를 썼다. 상체에는 두툼한 겨울옷을 입었다. 허리 아래는 침낭에 들어가 있다. 침낭 안에는 더운 물이 든 물병을 넣고, 침낭 위에도 겨울옷 하나를 더 깔아놓았다.

지난 1월 10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택의 보일러 배기구에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완전무장’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서울역 지하도의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이다. 지난 1월 9일 오후 11시 지하철 서울역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이어지는 6번 출구 지하도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노숙인들이 ‘중앙’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서울역 앞 지하도 중 유동인구가 가장 적은 편이어서 노숙인들이 선호하는 장소다. 두세 명을 제외하고는 다른 노숙인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황씨는 올해 예순하나가 된다. 지난 2일 한 노숙인이 동사한 채 발견된 마포구 노고산동에서 자랐다. 마포구 서강대학교 뒤편 노고산은 어린 시절 놀이터였다. 20대 초반 군복무를 마치고 마포를 떠났다. 길게 자란 턱수염을 빼면 그는 옷차림이 깔끔한 편이다. 노숙을 시작한 지 2년이 됐다. 아내는 진작에 세상을 떴다. 가족이 없진 않다. 서울에 사는 아들이 있다. “아들이 찾아도 내가 피한다. 결혼한 자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 부모 마음은 다 그런 것 같다.”

지하도 근방에는 노숙인 자활을 지원하는 다시서기센터의 쉼터가 있다. 서울시가 설치한 컨테이너 형태의 응급 잠자리도 가까운 곳에 있다. 황씨는 웬만해서는 쉼터에서 자지 않는다. 이날도 영하 10도에 이르는 추운 날씨였지만 지하도로 나왔다. 양쪽에서 찬바람이 들이치는 지하도를 그가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럿이 하는 단체생활은 불편하다. 사람들이 잘 씻지를 않아 냄새도 나고.” 그런 그도 서울 기온이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지는 한파가 몰아닥쳤던 1월 첫째주에는 쉼터를 이용했다. “얼어죽게 생겼으니 별 수 없었다.”

2011년 이전이라면 새벽 시간대에는 서울역사 안에서 추위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 2011년 여름 코레일과 서울역이 노숙인들의 역사 내 야간노숙을 금지한 후부터, 이제는 24시간 역사 안에 들어갈 수 없다. 황씨는 지난해 여름 불쾌한 경험을 했다. 서부역에서 잠자리에 쓸 종이박스를 들고 서울역사를 건너오는데 경비용역업체 직원들이 양쪽에서 팔짱을 낀 채 그를 역 밖으로 내몰았다.

노숙인들도 일을 한다. 황씨는 본래 설비업자였다. 노숙을 시작한 뒤로도 청소일을 포함한 일용직 노동을 했다. 인력업체 소개비를 떼고 나면 하루 일당으로 6만5000원에서 7만원을 손에 쥐는데, 한파가 몰아치면 일이 끊어진다. 그는 집보다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을 해야 먹고 산다. 평생을 얻어먹고 살 수는 없지 않나.” 황씨는 20년째 당뇨를 앓고 있지만 노숙을 하는 탓에 관리가 안 된다. 그는 당뇨약, 감기약, 관절염약을 먹는다. 그럼에도 술과 담배를 끊을 수 없다. “사는 게 힘드니까.”

서울시는 동절기 노숙인들에게 한시적으로 쪽방이나 고시원에 대한 임시주거비를 지원한다. 쪽방에서 산 적이 있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여기 아는 사람이 쪽방에 입주를 해서 따라가봤다. 답답해서 도저히 나는 못 살겠다 싶었다. 노숙하기 전엔 그런 데서 살아본 적도 없고.”

2. 쪽방촌

캄캄한 어둠 너머로 발자국 소리, 양치질 소리, 물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잠결에 스마트폰을 보니 10일 오전 5시 30분이다. 방 위쪽으로는 찬 기운이 서려 있지만 바닥은 따뜻한 편이다. 새벽에 기온이 떨어질 것을 대비해 패딩 지퍼를 목까지 끌어올리고 옷을 모두 입은 채로 잠들었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춥진 않았다. 전날 오후 방을 얻을 때 집주인이 이틀 전 90만원을 들여 가스보일러를 교체했다고 한 게 빈말은 아닌 듯했다. 그러나 습기가 높은 방 특유의 퀴퀴한 냄새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서울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은 지하철 3호선 종로3가역 근방에 섬처럼 자리잡고 있다. 걸어서 5분이면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프렌차이즈 커피전문점이 있는 번화가가 나온다. 8000원을 주고 하룻밤 방을 빌린 기자처럼 단기 체류자를 합하면 650~700명이 사는데, 두 사람이 한 방을 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방이 너무 좁다. 세로는 1m 80cm, 가로는 1m 남짓하다. 조립식 옷걸이를 하나 세운다면 혼자 있기도 비좁은 공간이다. 문을 열어놓지 않는 한, 통기구는 가로 세로 네 뺨 정도의 창이 전부다. 쪽방촌에서는 겨울보다 여름이 힘들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주인은 1층 보일러실 옆에 산다. 검은색 철제계단을 열 걸음 올라가면 방 여섯개가 밀착해 있는 2층이다. 다시 철제계단을 올라가면 일곱개의 방이 붙어 있는 3층이다. 한 층에 15개 넘는 방이 5~6층 규모로 서 있는 영등포 쪽방촌과 비교하면 소규모다.

오전 9시쯤 바로 옆의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했다. 양변기와 샤워기가 설치돼 있다. 일기예보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2도라고 했는데, 더운 물이 잘 나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3층에 사는 강병만씨(60·가명)를 만났다. 평소라면 이미 일을 나갔어야 할 시간이지만, 날씨 때문에 일을 못 나간다고 그는 말했다. 이 집 월세는 23만원이다. 날씨가 비교적 온화했던 8일과 9일에 그는 10만원을 벌었다. 날씨가 괜찮으면 일주일에 나흘 정도를 일한다. 주로 혜화역 근처 아파트 등에서 청소일을 하고 받는 돈이다. 65세 이상 주민은 50~60명이고, 주민 중 300여명은 기초생활수급자다.

지난 1월 9일 밤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인들이 잠자리를 깔고 누워 있다.

강씨는 “결혼은 했지만 가족은 없다”고 말했다. 밥은 근처 식당에서 먹을 때도 있지만 방 안에서 가스버너로 라면을 먹는 경우도 잦다. 강씨는 “겨울에는 그럭저럭 지낼 만한데, 외풍이 조금 있다. 그래서 옷을 껴입고 잔다”며 “겨울보다는 여름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으로 라면을 끓여먹을 생각이라며 기자에게 “추운데 방에 들어가라”고 말했다.

오전 10시쯤 종로구 보건소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최명숙씨는 쪽방촌 골목을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전에 쪽방촌 주민들을 방문해 건강상태를 점검하는 게 그의 일이다. 보건소 이외에 서울대 의대의 행동하는의사회 진료진이 한 달에 한 번 이곳을 방문한다. 최 간호사는 “만성질환이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쪽방촌 주민들은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힘들다”고 말했다.

3. 넝마공동체 사람들

1986년 이후 영동5교 아래 컨테이너에서 공동체를 꾸려 살아왔던 서울시 강남구 포이동 넝마공동체 주민 26명은 지난해 10월 27일 이후 거처를 잃고 유랑하고 있다. 그 뒤 이들은 강남구 대치동 탄천운동장 텐트, 경찰서 민원실, 노숙자 쉼터, 수녀원 미아보호센터, 교회 등을 전전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부터는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의 한 청소년지역아동센터에서 지내고 있지만, 이 또한 임시 거처다. 이 아동센터가 공동체 사람들을 위해 방학을 당기는 등 편의를 봐주기는 했지만, 종일 머무를 수는 없다. 공동체 사람들은 오전과 오후에는 강남구민회관 앞으로 농성을 나가는 형식으로 자리를 비워주고 밤에만 아동센터로 돌아온다. 아동센터 방학이 끝나면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넝마공동체에는 남녀가 섞여 있긴 하지만 공동체 자체가 도시 빈민들의 자활 공동체이기 때문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없다. 한때 결혼을 했거나 가정이 있었던 사람은 있지만 지금은 모두 혼자다.

공동체 사람들의 ‘집’은 영동5교 아래 16개의 컨테이너였다. 강남구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를 돌면서 헌옷과 고물을 모아 처분하는 것이 이들의 생계방편이었다. 상하수도 설비도 없고 화장실도 간이화장실을 사용했다. 겨울철에는 전기장판을 쓰거나 근처에서 나무를 주워 불을 땠다. 지난 9일 밤 아동센터에서 만난 공동체 대표 김덕자씨(73·여)는 “컨테이너에서 살 때는 불편하긴 했어도 여름이든 겨울이든 큰 문제 없이 살았다. 그런데 지난 7월부터 몇 개월째 일을 못하고 있고, 권리금을 주고 계약을 맺었던 아파트 단지 헌옷 수거 일도 다른 데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발단은 지난해 7월 18일 강남구청의 컨테이너 철거 통보였다. 강남구는 영동5교 아래 넝마공동체의 컨테이너가 ‘불법시설물’이라며 8월에 컨테이너를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10월 28일에 철거를 단행했다. 주민 일부는 강남구 세곡동 임시거처로 옮겼지만, 20여명은 대치동 탄천운동장에서 텐트를 치고 버텼다. 이에 강남구는 11월 15일과 28일 두 차례 텐트촌을 강제 철거했다. 탄천운동장에 들어오던 전기와 수도는 강남구청의 요청으로 그 이전에 이미 끊어진 상태였다. 주민들은 이 과정에서 강남구청에 의한 감금·음식물 반입 통제 등으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는데,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 인권센터는 “철재 펜스를 치고, 출입을 통제하면서 음식물 등의 반입을 차단한 점은 비록 그 목적이 불법적인 장기거주를 막기 위한 행정목적에 있다고 할지라도 피해자들의 생존권 등 기본권을 크게 제한한 과도한 조치라는 점에서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강남구청은 “실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허술한 인권조사”라는 입장이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당장 1월 이후가 문제다. 김덕자씨는 “급한 마음에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도 찾아가봤지만 일이 잘 안 됐다. 아동센터에서는 1월 말까지는 있어도 된다고 하지만, 당장 내일이나 모레라도 나가라고 할까봐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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