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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백악관 앞 시위한 할머니, 천막서 누운 적 없답니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5.06일 01:12
시위 문화, 이젠 바꾸자 (상) 일상화된 불법

4만261건. 지난해 전국에서 열린 집회·시위 건수다. 하루에 110건꼴이다. 집회·시위는 사회적 소통 수단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선 거꾸로 '불통'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유가 뭘까. '국민이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를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나라 미국. 그곳의 '정치 1번지' 워싱턴DC와 전 세계를 휩쓴 '점령(occupy) 시위'가 처음 일어난 뉴욕을 찾아 답을 찾아봤다.

지난 1일 서울광장. 근로자의 날 기념 집회를 마친 참석자 일부와 경찰이 충돌했다. 시위대가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차 노동자 분향소에 가겠다”며 경찰이 설치한 물통 차단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몸싸움이 벌어졌고 경찰은 시위대에 최루액을 뿌렸다. 실랑이 와중에 경찰 2명이 다쳤고, 시위대 1명이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지난달 쌍용차범국민대책위의 천막 농성촌이 철거된 뒤 덕수궁 대한문 앞에선 이런 충돌이 반복되고 있다. 허가 없이 보도 위에 천막을 설치하는 건 도로법 위반이다. 하지만 시위대는 경찰에 집회 신고를 냈고 천막도 시위용품으로 신고했으니 합법이라고 주장했다. 강제 철거된 뒤로도 끊임없이 재설치를 시도했다.

범대위를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 예를 들었다. “미국 백악관 앞에는 수십 년째 천막을 치고 시위하는 할머니가 있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를 '미국의 양심'이라며 용인하고 있다.”

미국, 공원법 따라 침구 들여놓지 못 해

 지난달 21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에서 그 '할머니'를 만났다. 콘셉시온 피시오토(68). 그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탈리아 사업가와의 결혼에 실패한 후 36세 때 백악관에서 시위를 하던 토머스 윌리엄스(2009년 사망)를 만나 32년간 '직업 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곁에서 본 피시오토는 몹시 분주했다. 쉴 새 없이 관광객들이 찾아와 천막을 구경하고 말을 걸었다. 질문은 달랐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핵무기에 반대한다”는 것과 자신이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 왔다는 얘기에 흰 바탕 위에 태극 문양과 한글로 '평화'라고 쓰인 돌덩이를 보여줬다.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한글을 아느냐”고 물었지만 동문서답 격으로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오랜 노숙 탓인지 그는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허리가 많이 굽었고 지난해 교통사고로 어깨를 다쳤다고 했다. 윗니·아랫니가 1개씩만 남아 말소리가 샜다. 대화는 쉽지 않았다.

 천막을 유심히 봤다. 크기가 가로·세로 2m를 조금 넘어 보였다. 대형 파라솔에 흰색 비닐을 덮어씌운 '간이 천막'이다. 길가에 있지만 사람들이 앞을 지나다니기에 불편이 없다.

관광객 불편 주는 큰 입간판 설치 금지

 천막이 있는 곳은 정확히 말해 '백악관 앞'이 아니라 라파예트 공원이다. 길(펜실베이니아 애비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백악관 북쪽 펜스가 건너다보이는 곳이다. 처음 자리 잡은 곳은 백악관 옆 인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법 위반으로 체포돼 90일간 옥살이를 하고 현재 위치로 옮겨왔다.

 피시오토를 돕는 또 다른 평화운동가 해리스 나다코스는 “법정다툼 끝에 천막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대법원의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단 엄격한 조건이 따랐다. 공원법에 따라 시위는 가능하지만 캠핑은 안 된다. 천막에 침구를 들여놓고 누워 잘 수 없다는 의미다. 시위용품을 놔두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다. 보행자의 통행을 방해하는 큰 입간판을 세우는 것도 안 된다. 4년에 한 번씩 대통령 취임 퍼레이드가 열리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새 대통령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이다.

 피시오토는 수십 년간 이 규칙을 철저히 지켜 왔다. 앉아서 졸망정 천막 속에 누워 자진 않는다. 시위 장소에서 몇 블록 떨어진 '평화의 집(Peace House)'에서 다른 운동가들과 함께 살며, 교대로 휴식을 취하고 천막을 지켜왔다. 그녀가 30년 넘게 시위를 계속하며 '백악관의 명물'이 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그만큼 법을 잘 지킨 때문인 셈이다.

 하지만 서울 도심 대한문 앞 농성촌은 달랐다. 3월 화재 전까지 그곳엔 대형 천막 3동이 있었다. 천막 안에서 여러 사람이 숙식을 했다. 화재 때 LPG통 2개와 소형 발전기 2개, 취사용 스토브 2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천막 밖에도 수많은 입간판과 피켓, 시위용품이 늘어서 있었다.

 피시오토의 천막을 둘러본 지 30여 분. 주위가 갑자기 소란해졌다. 피켓을 든 사람들 50여 명이 모여들었다. 20세기 초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학살한 오스만제국(터키의 전신)과 친(親)터키 정책을 고수하는 미 정부를 규탄하는 전미아르메니아전국위원회(ANCA) 회원들이었다. 시위에 참가한 피터 멜콜로니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전 아르메니아인들의 희생을 '인종 학살(genocide)'로 규정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아직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위대는 확성기를 맨 리더의 선창에 따라 다 같이 구호를 외쳤다. “오바마, 약속을 지켜라(Obama, Honor Your Pledge).” 지켜보는 관광객들에게 유인물도 나눠줬다.

규칙만 지키면 어떤 의사표현이든 자유

 시위 분위기는 진지했다. 하지만 위협적이진 않았다. 확성기 볼륨은 시위대 맨 뒤 사람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만 높였다. 요란한 '운동가요'도 없었다. 대신 시위대 한 명이 색소폰으로 아르메니아 민요를 연주했다. 길 앞에 설치된 폴리스라인(police line, 경찰 저지선)을 넘는 사람도 없었다. 출동한 라파예트 공원경찰과 백악관 경비를 책임지는 비밀경호국(NSSS) 경찰은 잠자코 시위를 지켜봤다. 보스턴 테러가 터진 뒤 며칠 안 된 시점이었지만 그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약속된 규칙만 잘 지킨다면 어떤 의사표현이든 자유다.”(공원경찰 앨런 캐리)

중앙일보

워싱턴DC=김한별 기자

김한별 기자 idst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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