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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문화 종살이의 상징, 광화문 한자 현판

[온바오] | 발행시간: 2013.06.10일 00:10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이대로 왼쪽은 1968년부터 40여 년 광화문에 걸렸던 한글 현판, 오른쪽은 2010년에 새로 만들어 걸었다가 세 달도 안 되어 금이 가는 바람에 새로 만들어 달기로 한 임태영이 쓴 한자 현판 모조품이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나라와 겨레를 빛내겠다는 꿈을 담아 짓게 했으며 세종대왕은 우리 자주 문화와 국방, 산업 들 여러 분야에서 큰 업적을 많이 남긴 위대한 우리 민족의 왕이다. 그래서 세종시대는 우리 겨레 5000년 역사상 최고 문화부흥시대라고도 말한다. 그 업적 가운데 으뜸인 한글은 가장 훌륭한 업적으로서 우리 겨레의 자긍심이고 보물이다. 한글이 태어나고 처음 50여 년은 한글을 살리고 빛내려고 애썼지만 연산군 때부터 200여 년 동안 한글을 천대하고 한문만 섬기다가 나라가 흔들려 임진왜란 때 광화문은 불타버렸다.

200여 년 뒤 고종 때 외세 침략에 시달리던 대원군이 민족정기와 자존심을 되살리겠다고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광화문도 1차 중건했으나 바로 일제 식민지가 되었다. 일제는 경복궁 안에 식민통치를 위한 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에 광화문은 그 자리에서 헐려서 경복궁 동쪽으로 옮겨졌는데 6.25 전쟁 때 불타 사라졌다. 그리고 1968년 대한민국 시대에 광화문을 2차 중건하면서 한글 문패를 달았다. 왜 처음에는 한자 문패였는데 그 때 한글로 달았을까?

그 전에 5.16 군사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김종필 세력은 한일회담을 강행하고 한글로만 쓰던 교과서를 일본처럼 한자혼용으로 만들었다. 이를 본 젊은 대학생들이 국어운동대학생회를 만들고 한글학회와 함께 그 잘못을 일깨워서 1970년부터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펴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표시로 대한민국 얼굴인 서울 광화문을 시작으로 우리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여주 영릉과 아산 현충사, 3.1독립만세 성지인 서울 탑골공원과 여러 유적지들의 문패를 한글로 달았다.

그 한글 문패는 국민이 세종정신과 한글을 되살려 나라를 일으켜달라는 건의를 받아들인 푯대요, 한글로 국민의 지식수준을 높여서 경제와 민주주의를 세계에서 빨리 이룩하고 우리 자주문화를 꽃피워서 오늘날 ‘한류’라는 이름으로 온 세계로 뻗어나가게 한 깃발이었다.

더욱이 당시 세종 때 달았던 처음 한자 문패는 말할 것도 없고 고종 때 다시 지으면서 달았던 한자 문패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대한민국 시대에 지은 광화문에 한글시대정신과 국민의 간절한 한글사랑 꿈을 담아서 한글 문패를 달았으며 이는 우리 민족정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2005년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광화문 한글현판은 박정희 독재정권 유물이라며 떼고 정조대왕이 쓴 한자 글씨체로 바꿔달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는 1990년대에 경복궁 복원계획을 세울 때에 고종 때 모습으로 복원하겠다고 했으니 그 때 한자 현판 글씨를 다는 것이 원칙이라는 핑계를 대고 2010년에 건 한자 현판이 세 달도 안 되어 금이 가버려 다시 한자로 만들어 달겠다고 한다. 한글단체는 정조대왕은 경복궁을 떠나 수원으로 천도하려던 왕이었으며, 한글 현판은 오히려 박정희 정부가 한글을 살려서 나라를 일으킨 민주와 자주정치, 산업시대 상징이라는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 만들어 진 것이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내걸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그들은 문화재 복원은 원형복원이 원칙이라고 했지만 원형은 흔적도 없으니 1차 중권 때 일본인이 찍은 조그만 한자 현판 모조품을 만들어 달았다. 원형 복원이 원칙이라면 2차 중건 때 걸렸던 한글현판이 있으니 그 걸 달아야 한다. 둘째, 40여 년 아무 탈 없이 걸려있던 한글현판을 뗀 것은 정치적 감정에서 나온 역사 파괴 행위이다. 1968년에 왜 한글현판을 달았는지 그 역사를 모르는 데서 저지른 큰 잘못이다. 셋째, 오늘날 중국 천안문이 중국 얼굴이고 상징이듯이 광화문은 이 나라의 얼굴이고 상징이다. 우리 문화의 상징물에 중국 문화 종살이의 상징인 한자 문패를 다는 것은 스스로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격이다.

이 밖에도 국민 여론 조사에도 한글 현판을 바라는 국민이 많고, 광화문은 세종로에서 시작하는 서울 상징거리 출발점에 한글 문패를 다는 것이 당연하고, 한글이 태어난 곳이 광화문 안 경복궁이란 것을 알리고 자랑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차원에서도 한글로 달아야 하는 등 까닭은 많다. 그런데 이 중대한 문제를 한자복원이 문화재복원으로 착각하는 문화재위원 몇 사람들에게 맡긴 게 잘못이다. 한글은 이제 우리만의 글자가 아니고 인류문화유산이다. 이제라도 한글을 빛내어 자주 문화를 창조하고 인류 문화발전에 이바지 하려면 저 부끄러운 한자 문패를 떼고 한글로 바꿔야 한다. 대통령의 용단을 촉구한다. ▲ 2013년 2월 6일 한글단체 대표는 감사원에 문화재청 잘못을 밝혀달라는 국민 감사청구를 했다. 오른쪽부터 송현 한글문화원장, 김종택 한글학회장,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김한빛나리 한글학회 총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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