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지현 기자] 제 아무리 아름다운 남녀가 사랑을 노래한들, 어울리지 않는다면 멜로가 될 수 없다. 케미(케미스트리, 남녀주인공의 호흡도)가 없는 멜로는 팥 없는 붕어빵이다. 절대 시청자의 마음을 훔칠 수 없다.

지난 25일 종영된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극본 강은경, 연출 신우철)가 24부를 끝으로, 3개월의 대장정을 마쳤다. 최고의 케미를 자랑했던 이승기, 수지는 끝까지 반짝반짝 빛났다. 두 사람의 케미는 끝까지 불 타올랐다.

케미, 이승기와 수지가 만났을 때

결말 함구령은 설레발이 아니었다. 충격과 반전이 속출했다. 이날 담여울(수지)은 악인 조관웅(이성재)의 수하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여울 뿐이었던 반인반수 강치는 인간이 되는데 실패했고, 모든 것이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법. 강치는 422년 후 현재의 서울에 이르렀다. 강치는 환생한 여울과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게 됐다. 밝고 씩씩한 여울의 모습 그대로였다. 두 사람의 다시 사랑이 시작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구가의 서'의 성공의 5할은 이승기, 수자의 케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 연상의 여배우들과 연기했던 이승기는 부담을 덜어내고 능숙하게 수지를 리드했다. 수지 역시 제 옷에 맞는 옷을 입은 듯 국민여동생의 타이틀을 극복했다.

처음엔 우려가 많았다. 두 사람 모두 사극은 처음이었기 때문. 하지만 연기력은 금새 안정을 찾았고, 호흡도 나날이 좋아졌다. 특히 이승기, 수지는 단독샷 보다 커플샷일 때 더 돋보였다. 그림 자체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이승기 수지, OOO타이틀 벗어나다

케미 뿐 아니다. 개인들의 연기력 성장도 괄목할만하다. 이승기에게 밝고 씩식한 강치는 그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전과 미묘하게 달라진 부분이 있었다. 자신만의 연기가 아닌, 전체를 보는 눈이 생긴 듯 했다.

강치는 존재감이 무거운 곤(송준)과 구월령(최진혁)에 비해 가벼운 캐릭터다. 이들은 유독 강치와 붙는 신이 많았는데, 이승기는 두 사람 앞에서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연기를 보태지 않고,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보였다. 상대의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승기에게 더 이상 국민남동생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미 타이틀에서 벗어난지 오래지만, 새삼 그에게 여린 면이 있었다는게 놀라울 정도로 터프해지고, 남성스러워졌다. 부드러움에 강인함을 입혀 새로운 매력을 보탰다.

수지도 성장했다. 수동적이고 연약한 이미지의 국민여동생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 변모했다. 조선이 배경이지만, 여울은 현대에나 있을 법한 캐릭터다. 그런 여울의 모습과 수지의 싱크로율은 상당히 높았다.

영화 '건축학개론'으로 늘 국민여동생 타이틀을 지니고 다니던 수지에게 새로운 이미지가 생성된 것이다. 삼촌들의 보호본능만 자극하는 여동생이 아닌, 자아가 뚜렷한 여인이 됐다. 앞으로 수지가 보여 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성재 유동근, 미존들의 향연

중견배우들의 활약도 대단했다. '악의 축' 조관웅 역의 이성재의 카리스마는 대단했다. 또 이를 견제하는 유동근의 카리스마도 불꽃이 튀었다. 두 사람이 함께 등장할 때 안방극장은 연기파 배우들의 대결로 열기가 뜨거워졌다.

오랜만에 악역에 도전한 이성재는 역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악역이라는 걸 새삼 증명했다.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조관웅은 극도의 이기심을 지닌 인물이다. 이성재의 터질 것 같은 예민함은 조관웅 그 자체였다.

'사극의 대왕' 유동근은 사극이 처음인 배우들 사이에서 묵직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자랑했다. 이순신을 자신만의 연기로 재해석했다. 저음이지만 파장이 넓고, 굵직한 목소리는 그 자체로 위화감을 줄 정도로 힘이 넘쳤다.

신우철 PD, 김은숙 없이도 완벽했다

배우들 못지 않게 빛난 이가 있다. 신우철 PD다. 흔한 장면도 신 PD의 손을 거치면 특별해졌다. 특히 긴장감을 유도하는 방식이 뛰어났다. 마지막까지 강치와 여울 중 누가 총에 맞았는지 알 수 없도록 연출해 몰입도를 높였다.

순간순간 교차 편집을 하는 방식도 뛰어났다. 납치된 여울을 강치가 찾은 것 처럼 편집해 시청자를 안도하게 했지만, 착각이었다. 여울을 찾은 건 관웅의 수하들이었다. 이처럼 신 PD는 편집을 자유자재로 이용했다.

신 PD는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김은숙 작가와 오랫동안 콤비로 활약한 연출가다. '구가의 서'를 통해 거의 처음으로 김 작가로부터 독립했다. 그에게 이 드라마는 하나의 실험대였을 것이다. 그 만큼 각오와 결심히 대단했을 터.

의지는 뛰어난 연출의 산물이 됐다. 생방송에 가까운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 매회 연출에 공을 들였다. 허술한 장면이 거의 없을 정도로 연출과 편집이 완벽했다. CG 또한 빼어났다. 섬세하고 화려한 달빛정원은 그의 야심이 드러난 곳이다.

배우의 새로운 매력을 발굴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이연희는 '구가의 서'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 받았고, 최진혁도 데뷔 후 처음으로 큰 관심을 받았다. 많은 등장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 전혀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은 것도 신 PD의 공이다. 그는 김 작가 없이도 완벽했다. '구가의 서'를 통해 자신의 역사를 새로썼다.

이날 '구가의 서'는 여울의 죽음에도 불구,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다. 현대에서 새롭게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을 예고했다. 시즌2가 기대되는 결말이었다. 강치와 여울의 현대판 러브스토리가 궁금하다.

한편 '구가의 서' 후속으로는 문근영, 이상윤 주연의 사극 '불의 여신 정이' 가 방송된다. 조선시대 최초의 여성 사기장인 백파선의 파란만장한 삶과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오는 7월 1일 밤 9시 55분 첫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