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여·52)씨는 10여년 전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우연히 A씨를 만났다. 서로 호감을 느낀 두 사람은 연락처를 교환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가정이 있었지만 부적절한 관계로 발전했고, 이후 10여년간 한 달에 1~2차례씩 만남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유씨는 2009년 2월 “큰딸이 아나운서로 취직하려면 성형수술비가 필요하다”면서 A씨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식당일을 해 형편이 넉넉지 않았던 유씨는 “딸이 취직하면 월급으로 돈을 갚겠다”고 했다.
이에 A씨는 유씨의 딸 통장으로 200만원을 송금했고, 유씨의 딸이 외상으로 수술한 성형외과에서 수술비 300만원도 카드로 결제해 줬다.
유씨는 그러나 이후 돈을 갚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해 여름 유씨가 이별을 통보하자 배신감을 느낀 A씨는 유씨를 사기혐의로 고소했다.
검찰은 유씨가 돈을 갚을 의사도 없으면서 돈을 갚겠다고 A씨를 속였다면서 사기죄로 유씨를 기소했다.
서울동부지법 형사9단독 고승일 판사는 유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연인 사이에 오간 돈은 ‘증여’로 봐야 한다는 유씨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재판부는 “아내와 3자녀를 둔 A씨는 유씨가 돈을 빌릴 때 차용증을 쓰거나 이자 약정도 하지 않았고, 돈을 빌린 다음에도 극장에 함께 가거나 지방 찜질방에서 수차례 함께 밤을 보내는 등 지속적으로 유씨를 만났다”며 “유씨가 만남을 거절하자 3년 6개월이 지나서야 A씨가 고소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는 유씨를 만날 때 연정을 갖고 있었고 유씨가 돈 갚을 능력이 없는 걸 알면서도 큰딸이 취직하면 갚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에 돈을 빌려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