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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문학상응모작] 연변의 첫 하이퍼시집에 부쳐

[기타] | 발행시간: 2013.07.30일 10:22
(연길)최흔

들어가는 말


필자는 흥분된 심정으로 방순애의 시집 《시간은 원이 되여》를 읽었다. 연변의 첫 하이퍼시집이라는데 그 의미가 크다. 중국조선족시단에서 하이퍼시가 싹트기 시작한것은 2006년일것이다. 그후 려순희, 황정인, 심예란, 허옥진, 박장길, 김견 등 시인들이 하이퍼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하이퍼시로 시집을 낸 시인들은 아직 없었다.

다선구조로 된 하이퍼시는 지금 유령마냥 일부 시인들의 시상을 야금야금 잠식하고있다. 방순애시인이 다시점, 다초점, 다주제를 가지고있는 하이퍼시 88수로 시집을 묶었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는 새로운 도전이며 혁신이다. 하이퍼라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여 묶은 《시간은 원이 되여》를 어떻게 읽을것인가에 대하여 필자는 나름대로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도약하는 이미지

방순애시인의 하이퍼시는 도약하는 이미지를 창출해낸것이 하나의 특점이라고 할수 있다. 도약을 통하여 이미지들은 분렬과 집성을 조성하고 한수의 시를 이룩한다. 시인의 시는 산문적인 필치와 운문적인 필치 두가지 형태로 쓰였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산문적인 필치로 쓴 시 한수를 보자.

어떤 바위

스님되여 앉아있다 얼굴부터 새겨진 법글이 쭉 내려오고 몸의 구석진 곳들은 전설쪼각이다 마음속에서 지줄대는 이야기는 강을 따라 흘러가고 무성한 이파리 매달려있는 줄거리들 줄줄 타래진다

구름이 펜을 들고 쉬고있다 눈아래 서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입은 닫겨있다 무거운 입술을 열면 하늘중심에서 우는 천둥이 지심까지 들썩인다

작은 귀뿌리는 점점 커진다 열쇠를 가지고 떠나는 사람들 갇히운 마음을 연다 진펄에 빠지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다

이 시는 시집의 첫수이다. 보는바와 같이 1련은 스님에 대하여 쓰고 2련에서는 구름에 대하여 쓰고 3련에서는 귀뿌리에 대하여 쓰고있다. 스님에서 구름에로 도약하고 구름에서 귀뿌리로 도약하면서 시는 마무리를 짓고있다. 련과 련사이가 큰 도약을 이룩하였을뿐만 아니라 한개 련에서도 도약이 진행되고있다. 1련에서 스님은 전설쪼각이 되고 이야기가 강물처럼 흘러가는가 하면 무성한 이파리와 줄거리가 나온다. 2련에서는 구름이 의인화되면서 여러가지 사실이 나오고있고 3련에서는 작은 귀뿌리, 열쇠가진 사람들이 나오는가 하면 진펄에서 헤매는 발걸음이 나오고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각자 련결이 되는것이 아니라 분리되여있고 각기 존재하며 한 이미지가 다른 한 이미지의 결과거나 원인이 되지 않는다. 이미지들은 중심에 의하여 조직된것이 아니라 중심을 떠나고 있어서 탈중심, 무중심을 이루고있다. 또 이런 이미지들은 현실적사실이 아니라 픽션으로 되여있는 허구이며 가상현실이라고 말할수 있다.

운문으로 된 시 한수를 더 보기로 하자

상아의 노래

재빛나는 바다의 아침/상아는 검은색 옷을 입고/호화로운 요트에 앉아/입술에 노래를 담고있다//멍청한 후렴은 고해의 값을/벌거벗은 자연에 치르고/현기증나는 우수를 /넓은 가슴에 대고 바순다//천개의 북이/물의 정적을 깨뜨리고/하늘속의 기류/바다의 조류를/률동키안에 주어담는다

《상아의 노래》전문이다. 의인화된 상아가 검은 옷을 입고 요트놀이를 한다[1련] 2련은 일년과는 관계없는 멍청한 후렴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3련은 천개의 북에 대하여 노래하고 있다. 한이미지에서 다른 이미지로 가는것을 가히 도약이라고 하거나 뜀질이라고 할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우리가 수백년동안 써오던 시의 구성이랄가 구조랄가 하는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수백년동안 써온 시는 단선구조이다. 단선구조는 하나의 사실을 중심으로 썼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상아, 멍청한 후렴, 천개의 북이 나온다. 이 세가지 이미지는 종적구성을 이를수 없는 서로 대등한 자격으로 등장하는 횡적구성을 이루면서 병렬적으로 배렬되고있어 시인의 시적사유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유의 공간이 확장된다. 하이퍼시가 다시점 다초점으로 된다는것은 이러한 수법으로 쓴 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가.

시인은 이미지와 이미지사이에 공간 혹은 간격을 주어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텍스트 다형태성은 텍스트가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있으며, 변화하고 역동적이며, 열린 형태를 갖게 된다는것을 이미한다》(<하이퍼텍스트 3.0>. 167쪽)는 조지p.란도의 말이 떠오르게 된다.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시

재래로 시를 쓴다면 시적계기요 서두요 발전이요 결말이요 조응이요 하는 말들을 잘 살펴보아야 했다. 오늘 시의 현주소도 그런 시가 무더기로 쏟아지고있다. 그런데 방순애시인이 쓴 시는 이런 언어들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고있다. 또 기승전결이라는 언어로 방순애시의 시를 살펴본다는것은 아마 통하지 않는다.

하다면 방시인의 시는 어떤 시인가? 방시인의 시는 대가리도 꼬리도 없는 시라고 함이 타당할것 같다. 《시간은 원이 되여》라는 시집의 시들은 이미지 토막과 토막의 배렬로서 그 토막과 토막들은 시작이자 결말이고 결말이자 시작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것처럼 《시작과 끝이 없고 항상 중간뿐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시작하고 넘친다》.

원이 되여 굴러간다 원에 붙어 달리는 다리 그리고 원을 꺼꾸로 돌리는 개미들 보송보송한 구름이 땅에 내려올 때 갈고리를 바닥에 질질 끌며 걷는 방랑자들 모래위에 집을 짓고 텅빈 갑옷만 입고 너덜거린다 한치도 안되는 삶의 공간은 무대위에서 졸고있다

어두운 밤 잠자는 눈을 움직여본다 문자 없는 필기장에 글을 갈겨본다 환히 밝아진 벽빛을 남의 눈에 주지 말고 나에게 비춰보라 그러면 찌그러졌던 얼굴이 보름달로 변해간다 들끊는 대기는 게으른 손을 잡아준다 활기찬 발걸음은 앞을 재촉한다

-《시간》전문

이 시는 이미지 집성으로 되여있다. 다시 말하면 이미지토막들의 모임이다. 시인은 어떤 고정된 감정으로 시를 쓰고 있는것이 아니라 열린 상상으로 이미지를 편집하고있다. 시간, 원, 다리, 개미, 구름, 갈고리, 방랑자 등 사물들이 독자적인 이미지로 되여 한시속에서 움직인다.

한수의 시라기보다는 한수의 환상곡이라고 할수 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다 자기의 독립적인 토막을 이루고있다. 이 토막들은 또 시인의 배렬처럼 요렇게만 놓이는것이 아니라 누구든 자신의 상상에 의하여 바꾸어놓아도 별문제이다. 어느것이 시작인지 어느것이 결말인지 분명치가 않다. 사실 마지막행을 시작에 가져다 놓아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가 대사막의 가운데 서있다고 하자. 어디가 사막의 시작이고 어디가 사막이 끝인지 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선자리가 사막의 끝이고 시작이라고 해도 되고 연장이라해도 된다.

이 세상의 어떤 사물이나 련계없이 절대적인 고립적으로 존재하는것이 하나도 없다. 어떠한 사물이나 한가지 성분으로만 구성된 사물도 없다. 하이퍼시구성은 자연과 문화와 우리의 사유에 부합될뿐만 아니라 오늘의 글로벌시대와 컴퓨터시대에 부응하는것이라고 필자는 말하고싶다.

1960년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프랑스시인 SJ 생종페르스와 201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토마스도 이러한 수법으로 시를 창작하였다. 21세기에 와서 문덕수, 심상운, 오남구, 김규화 등 한국의 전위적인 시인들의 시들도 이러하다.

폭력적조합으로 된 이미지의 산재

방순애시의 이미지창출은 예측불가능이다. 한 이미지로부터 파생되여 나오는 이미지도 그러하거니와 이미지와 이미지 링크도 느닷없이 새롭게도 돌발적으로 기이하고도 괴상하게 분출되고있다. 하이퍼시의 언어로 명명해 본다면 알렉스이다.

여기서

돌은 하늘이 버렸을 때 침묵의 깃발을 든다 갈대숲은 겨울의 어둠속에서 하얀 불을 지펴 자기를 지킨다

울창한 숲과 새들 그리고 나의 집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달은 구름속으로 숨어버린다 창백한 손은 이곳에서 떠다니는 거품을 거둬내고 무지개의 현에 맞춰 밤의 찬가를 부른다

날개가 없고 얼굴이 없어도 심연의 사색은 새벽 입김위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

《여기서》는 이 시집의 마지막 시다. 《돌은 하늘이 버렸을 때 침묵의 기발을 든다》는 첫구절부터 모순되는 언어들의 집합이다. 《돌은 하늘이 버렸을 때》의 의미가 심장하다. 하늘이 언제는 돌을 품고있었는데 버렸다는것이다. 언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증명할 어떠한 과학가도 고대학자도 없을것이다. 시인이 창출한 이미지는 그로데스크하여 기이하고 괴상한 발상이라고 아니 할수 없다. 이 말을 풀이해보면 하늘이 돌을 버렸다는것이다. 이 허구는 현실이 아닌 가상현실이라고 할수있다. 하지만 너무 폭력적으로 조합했다고 하지 않을수 없다. 그아래 시구도 그렇다 갈대숲이 하얀 불을 켜고 겨울이면 자기를 지킨다고 한다. 갈대꽃을 불로 전의시켰음이 확연하다.

《창가의 벽이 피를 흘리고》, 창백한 손은 《무지개의 현에 맞춰 밤의 찬가를 부른다》, 《사색은 입김위에 가는 발자취를 한뜸한뜸 수놓는다》 등등 이러한 이미지조합들은 의미를 전달하려는 일상적인 사유로서는 맞지도 않는 말들의 조합으로서 폭력적으로 강압적으로 억지로 주어맞춘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의 폭력적조합이야 말로 시구를 새롭게 하고 시를 새롭게 하는 현대시의 데크놀로지이다.

읽혀지는바와 같은 폭력으로 창조된 이런 이미지들은 방순애시의 도처에 심심찮게 산재해 있다. 《세상파도는 닫쳐진 막을 열고 깊은 곳에 닻을 내린다》(《웨침》에서) 《대굴대굴 굴러가면 돌아가는 빛은 시계속으로 들어가고 달빛에 용해된 몸은 도시로 들어간다》(《날리는 모래알》에서) 《파란 하늘은 둥둥 달려있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위에/번화한 도시가 앉아있다》 (《성에서》) 등등.

전형적인 언어에 대한 일탈과 새로운 이미지에 대한 창조로 되는 이러한 이미지들은 언어의 흐름을 새롭게 할뿐만 아니라 현실문법을 파괴하는 빛이 찬란하다고 해야 하리라. 시는 언제나 낡은것을 밀어내고 새것을 떠올리는 언어의 화살날림이다. 이런 새로운 언어화살을 날리는것이 없다면 시의 창의성을 무엇으로 말할수 있겠는가.

언어의 폭력적조합이나 이미지의 폭력적조합은 현대시의 문턱이라고 할수 있다. 이 문턱을 넘어서야 현대시에 입문했다고 할수 있으며 하이퍼시에 도착할 가능성이 있는것이다. 이 문턱은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다. 이 문턱은 다리가 길어서 넘어가는 문턱이 아니고 키가 커서 넘어가는 문턱도 아니고 시를 오래 썼다하여 절로 넘어가는 문턱도 아니다. 피타는 노력과 새로운 탐구만이 이 문턱을 넘어서게 할것이다. 방순애시인은 이 문턱을 넘은것 같다.

나오는 말

우리가 걸어온 시문학의 길은 대개 이러하다고 할수 있다. 해방이 되여서부터 문화혁명까지 대아를 내세우는 시를 썼고 개혁개방후에는 자아를 내세우는 시를 썼다.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으며 우리의 일부 시인들은 무아의 시문학을 추구하고있다. 그것이 하이퍼시다. 무아의 시를 추구하는것은 지금은 시내물처럼 조잘대지만 앞으로는 대하로 굽이칠것이다.

방순애의 시집 《시간은 원이 되여》는 하이퍼시로서 우리 시문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놓았다. 이 시집의 시들은 다선구조로 단선구조를 대체하였고 객관이미지로 시인의 독백을 대체하였고 사물을 변형시키고 변형물의 움직임으로 설명과 해설을 대체하였고 이미지의 편집자 자격으로 시에서의 자아를 축출하였다. 고정된 관념에서 일탈하여 무한한 상상을 펼치는 방순애의 시는 읽고 생각하던 시로부터 감각하고 사유하는 시로의 전의를 꾀한것 같다. 하이퍼시는 지금은 갓 태여난 아기에 불과하다고 할수 있다. 하지만 이 아기는 눈을 뜰것이며 말을 할것이며 힘차게 달아다닐것이며 싱싱한 어른으로 자라날것이다.

방순애시인에게 아직도 과제가 없는것은 아니다. 시는 추상성을 버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때가 간혹 보인다.

《시간의 흐름을 령혼에서 맛 보고》(《나비》), 《내부에서 일어나는 순간순간을 피부에 입력한다》(《마음의 그림》), 《몽상도 좋고 환상도 좋다》(《감초의 그림자》>) 《가는 가을날 잡고/가슴에 남은 말을 건네려고 하는데/그리움만 우두커니 세워놓고》(《서쪽달》)와 같은 이러한 시구들은 감각성보다 리념성이 짙어서 머리에 영상이 떠오르지 않거나 희미하게 떠오른다. 앞으로 극복할바라고 생각한다.

방순애시인의 새로운 정진을 기대하면서.

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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