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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문학상응모] 만진기참호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07.29일 11:34
두만강문학상 응모작


정호원(연길)

2011년 10월 26일, 만진기등반을 치르고야 말았다. 45년만에 치른 소시적 소망의 실현이다. 덕신림업관리소 소장 김성친구가 운전기사로 나섰다. 주청룡, 김홍석학우가 동행했다. 차는 시동을 걸자마자 동남방향으로 숭민, 남양, 부민, 성암 등 촌을 거쳐 곧장 만진기로 다가섰다.

덕신향의 옛이름은 팔도하자이다. 개산툰으로 가는 도중 석돌령 동남쪽엔 첩첩한 메갓을 거느리고 우뚝 솟은 뫼가 있다. 바로 만진기이다. 건촌시기 즉 초창기 무렵, 만진기(满镇基)라는 사람이 거주하고 있어 습관상에서 만진기라고 불렀다.

1899년 음력 2월 18일, 해동되지 않은 두만강 얼음판을 김하규, 문치정, 김정규, 남위언 등 4대 가족과 집단망명으로 월강한 31세의 규암 김약연도 바로 만진기를 지났다. 김약연은 북간도의 자동으로 온후 호천가(회경), 문안골(팔도하자), 만진기 등 곳을 거쳐 지금의 지신진 명동에 정착했다. 토스레적삼, 두루마기, 삿갓, 누더기, 짚신, 돌절구, 종다래끼, 씨오쟁이, 호미, 조롱박•••덕신은 분명 두만강을 건너온 망국노들이 괴나리보짐을 푼 첫 역전이였고 나그네의 쉼터였고 길손행인들의 정착지였다.

우리가 등반을 벼르는 무명산도 그런 인맥에서 작명사가 지어준 이름처럼 산명을 가졌다. 등반코스는 성암 8툰과 석문 5툰으로 직접 오르는 로정도 있다. 만진기는 팔도하자의 제일봉이자 지명으로도 통칭을 가졌다. 내가 시각적으로 숭상하고 맘속으로 높이 모신 만진기는 산봉으로서의 개념명사를 지칭한다.

만진기는 덕신향에 소속된 지방 대명사이자 산 이름인데 함풍(중국 청나라 문종때의 년호로서 1851년부터 1861년까지)초기에 조선에서 천입한 이주민들에 의해 마을이 일떠섰다. 조선어지명에 따르면 연변에 처음으로 건촌과 농사가 시작된것은 함풍초기인 1851년부터 1856년이란다. 이때 조선농민들은 두만강연안을 지나 해란강류역 지대인 덕신지구에 자리잡고 금곡촌, 후동, 석문촌을 세웠다. 광서년 초기 만진기의 아들이 처음 거주하면서 개간한후 조선 부녕(富宁)에서 온 난민들이 처음엔 부령촌이라고 작명했다. 그러다가 1982년 지명조사 때 자동으로 개칭했는데 개산툰에서 서북쪽 3킬로메터 떨어진 위치에 있다. 자동에서 석문이나 성암은 멀지 않은 지대이다. 그러니까 마을과 산 이름을 두루 합쳐 만진기라는 통설이 한결 지배적이다. 만진기봉은 석문과 성암 사이에 위치했다. 바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무예와 사격술을 익혔다는 진위론난의 아지트이다. 문암동(文岩洞)은 룡정시 개산툰 시내 서쪽 부근마을인 회경 6대인데 문안골이 아니라 문암동으로 굳어졌다. 광서년 중기 조선족 문씨가 서당을 꾸려 학생들을 동원해 등산도 하고 산정에 돌성을 쌓았다는 기념으로 광개향 제동 남쪽 1.5킬로메터 곳 구릉지대에 자리 잡은 문암동이다.

만진기에서 안중근의 숨결이 재생되는 현장감에 부풀린다. 1909년 10월 26일이 거사한 날이다. 오늘이 바로 거사 102주년이 되는 날이다. 난 일부러 이 날을 선택했다. 나는 경건한 심정으로 안중근이 활동하였거나 흔적을 남긴 개산툰의 문암동, 덕신향의 만진기, 상우동, 장동골, 지신의 성교촌과 명동촌, 선바위, 화룡 투도구 그리고 훈춘 금당촌 등 지연의 유적지들을 빠뜨릴세라 일일이 체크한다. 그러면서 하나의 등고선에 영웅의 궤적을 점선으로 그려봤다. 이쯤 환상을 달리노라니 안중근이 만진기주봉이나 어느 기슭코숭이에서 륙혈포를 쏘아대며 실탄사격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엉뚱해지고 만다. 고향산천을 중심으로 한 기타 린접지대가 바로 만진기봉우리와 널리 분포된 유허지 산맥줄기와 면면했던 지리적인 인연까닭에서이다.

해발고도 771메터에 총면적이 230헥타르에 달하는 만진기는 동으로 두만강을 등에 업고 가슴팍에 소나무와 자작나무수림을 꽉 품은채 백만대군을 거느린 용사답게 우뚝 서있다. 세 개의 봉우리가 등고선마냥 나란히 어깨를 겯고 웅자를 드러낸 가운데 산악인의 등반을 목마 태우고있다. 룡정, 대립자, 동성용, 세전이벌, 오봉산, 말발굽산, 삼봉동, 모아산, 해란강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드디여 만진기를 정복한 만복감에 은근 슬쩍 미소를 머금었다.

해발고도 635메터를 내려올 때 문화대혁명동란 때 파놓았던 참호를 발견했다. 말 그대로 전호를 팠던 흔적이 눈발에 묻혀 기다란 구렁이마냥 떡갈나무, 상수리나무의 활엽수와 소나무, 잣나무, 향나무의 침엽수에 꼬리를 사렸다. 문화대혁명동란 때 파놓은 전호치고는 꽤 신비성을 지녔다. 총칼이 번뜩이는 혈전을 눈앞에 둔 병사의 모습도 떠오른다. 국방변경이라는 특정지리위치가 주는 당년의 공포심은 여전하다. 전호가에 수류탄이 터지고 땅크가 돌진해오는 장면은 영화화면만 아니렷다. 하다면 만진기는 국경보호의 특수한 지대에서 자체의 기능을 부여 받느라 전호설치가 필수적이였던가?! 꽤 아이러니한 반문속엔 시대의 바리케이드(barricade)가 작용하는 몫이 크다. 정치풍운과 돌변당쟁에 말려들수밖에 없었던 참호의 다른 기능이라 하겠다. 태평성대의 나날을 단결과 분렬로 치러야만 하는 전초기지에서 유리한 병력을 휘동해 지휘관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망원경으로 적진을 둘러보면서 고지를 차지한 은페소가 수림에 깃들었다는것을 현실로 감안할 때 무아몽중 소름이 끼친다. 유격대의 각 부대들을 휘동해 방어와 진공으로 전술을 구사하는 참모진이 평화시기 연변산구에 있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한단 말인가?!

성암에 위치한 료금시대 때 토성흔적을 마저 찾고자 걸음을 놀렸다. 바로 만진기기슭에 자리 잡은 료금시기 돌토성이라는 문물이다. 성벽유허를 찾아 답사에 나선 셈이다. 출입이 금지돼 있던 당년의 요새지라는 금애(禁隘)를 무랍없이 입궁하는 셈이다. 력사와 시대와 연혁의 재해석이라는 낱말을 앞세우며 나는 초인간적인 시공을 넘어서는 감에 암연해졌다. 검색창구에 나타나는 문구가 있다면 바로 료금시기 석성(石城)의 경위를 파악할 컨텐츠라겠다. 난 자료출처와 함께 지명위치로부터 적격성 형태로 토성유물을 확보했다. 상상의 날개를 편승한 덕분이랄까?! 동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가상과 현실을 적당히 섞는 설정으로 꾸준한 탐방을 확보했다.

광서년 중기 마을 남쪽 1.5킬로메터 산봉에 료금시대의 성벽이 있다 하여 불리워진 덕신향 소재지 남쪽 3.8킬로메터의 산비탈에 위치한 성암(城岩)이다. 덕신향의 주요 량곡기지중의 하나이다. 말 그대로 돌성을 목표물로 정한 촌명이다. 만진기기슭에서 굽어보면 아득한 구릉지대같고 벌판같은 끝자락에 묻어있는 곳이다. 광서년 말기 큰 산에 의지하고 있다 하여 큰산 마을이라 부른 덕신향 소재지 동남쪽 5.3킬로메터 떨어진 산기슭에 위치한 대산촌(大山村)은 흰 콩크리트패말로 서있다. 세월의 풍운을 몸에 들쓰고 리정표처럼 길가를 지킨다.

료금시대라면 얼마나 아득한 초매시대인가?! 내 고향 하오동에서 동쪽으로 부민령 하나 넘으면 바로 성암이다. 루대나 성곽, 사찰이나 석탑으로 구축되였을 조형물륜곽을 그려보노라니 징북소리속에 해자(垓字)와 참호를 날아 넘는 군사들의 갈린 목소리가 들려오고 함성속에 창날이 번쩍거리는 쌈터가 안겨온다. 집필중에 있는 다부작의 무대가 바로 이 곳이라는데서 한결 눈시울이 뜨겁다.

력사순위차례로 밝히면 료금시대 돌토성이 바래진 돌각담으로 솟아있고 안중근의 실탄사격 훈련아지트로 제공됐고 동란시기 군사용 전호가 궤적처럼 남아있지 않는가! 모두다 전쟁을 상기시키는 대목과 관계된다. 전투용 련병장으로 충당된 만진기의 평화년대 일화렷다. 게다가 룡정시의 석정, 덕신, 광개향의 접경지에 있는 해발 671메터되는 중국사령(中国师岭)의 전설유래 또한 작히나 귀맛을 돋구는가?! 개척자들은 제동(애끼골)에서 덕신방면, 후동(두텁골)에서 석정, 월청에서 화련리로 넘는 흑산산맥의 령마루에 서낭신을 모신 국사당을 짓고 개간이 순조롭고 해마다 풍년이 들도록 신령께 빌었다. 스스로를 구속하며 자기한테 속힌것은 과거의 아름다운 도박행운이였다. 그런 인식전환을 통하여 행동의 변화와 운명을 변화를 꾀하였던 지혜를 다시 살려 이제 우리는 보다 충실한 삶을 영위해야 하겠다.

만진기에 동굴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지 오래다. 이번 답사에서 유감스럽게도 감두(嵌竇)를 놓친채 보지 못했다. 다음 행보엔 기어코 찾아내리라. 전투기담과 일화로 점철된 만진기의 현대판을 새로 보완한다는 당위성에 근엄해졌다. 그렇다. 만진기는 조약돌이 널브러진 서덜이 아니다. 잡목이 울창한 원시림만 아니다. 이끼가 낀 천고의 옛터만 아니다. 적어도 세기의 풍상을 이겨온 이 강토의 목격자이자 력사의 견증자이다. 피눈물로 얼룩진 세월의 삶을 가장 핍진하게 간직한 메모리이자 유허비이다. 만진기의 참호로부터 시국을 소급해 나는 향토의 다른 냄새를 또 맡았다. 철옹성이나 방공호로 사용한적은 없지만 주둔군장병들과 기간민병 또는 변방부대가 둔 쳤을 당년의 아지트에서 오늘의 행복을 새삼스레 감격할 따름이다. 박격포, 기관총, 수류탄의 굉음이 울리지 않고 적군과 아군의 교전쌍방 총성이 터지지 않았지만 만진기참호를 통해 료금시기의 돌토성을 그려보고 안중근을 떠올리는것만으로도 새날의 평화를 만끽할것 같다.

극성을 부리던 병란사변도 뜨음해졌다. 조우전의 공탈도 각축전의 침범도 사라졌다. 국방건설과 전쟁준비로 철적을 남긴 유물들을 종군기자의 취재로 답사한 심경이다. 태평스럽고 고즈넉한 일상을 이룬 현대사회현실이 한결 사랑스럽다. 비무장지대의 성역인지라 끼끗한 조국과 스마트한 고향의 환경이야말로 지고지결하게 아름답다. 자연 채광으로 극성의 분위기를 유도하는 만진기참호에 말려든 후유증내지 증후군이라면 어떨가싶기도 하다. 그렇다. 평화의 재료는 안정을 사랑하는 근면하고 순진한 사람들에게 의해 성장축조로 완성된다. 시대의 행운아는 화합의 요람에서만 출생이 가능하다.

삶의 비창함은 죽는다는 훼멸감보다 생존기간에 무언가가 우리 내부에서 소멸되고 소실된다는 점이다. 평화도 그렇게 잠식된다면 소리 없는 전쟁은 우리 몸에서 늘 치러짐을 의미한다. 그래도 평화를 잃을손가? 만진기참호에 더 깊이 묻어야 할 평화마비증이다. 자유를 위한 투쟁치고 성스럽지 않은것이 없었던 인류발전사가 아니던가!

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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