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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볼품없는데, 정치인들 예능은 볼만하네

[기타] | 발행시간: 2013.10.12일 06:45

ㆍTV토론·대담 넘어 예능으로 몰려가는 정치인들… 대중 인지도 높아지지만 정책 실종·이미지 정치 우려

지난달 23일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방영된 <적과의 동침>에는 차기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민주당 박지원 의원과 짝을 이뤄 출연했다. 나비 넥타이에 분홍색 셔츠를 입은 모습이었다. 김 의원은 팝아티스트 낸시 랭을 따라 “큐티 섹시 키티 김무성, 앙~”이라고 외쳤다. 같은달 30일 방송분에선 걸그룹 크레용팝의 ‘직렬 5기통춤’을 흉내냈다. 최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교실’에서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겠다”, ‘공권력 확립과 사회안정 달성’ 토론회에서 “법질서를 어기는 시위대는 사회분열·전복을 꾀하는 세력”이라며 입을 앙다물던 때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치인들이 ‘예능’으로 몰려가고 있다. TV 토론이나 대담 프로그램에 나오던 것을 넘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인의 ‘예능 나들이’는 대중과의 거리 좁히기라는 기대 섞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미지 정치’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이 목전의 선거에 이기기 위해 대중적 인기에 목을 매면서 진지한 토론은 생략되고, 사회 위기의 해법을 찾는 정치 본연의 기능은 실종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중앙·정당정치 힘 못쓰자 정치인들 ‘TV정치’에 기대

지난달부터 종편 JTBC에서 방송 중인 <적과의 동침>에는 현직 국회의원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정치 버라이어티 예능’을 표방하고 있다. 지난 9월16일 첫 방송에는 새누리당 남경필·김성태·김용태·박민식 의원과 민주당 김영환·우윤근·민병두·이언주 의원이 여야로 짝을 이뤄 출연했다. 이들은 서로 말꼬리를 잡고 티격태격하거나, 막대과자를 입에 물고 상대 입술이 닿을 때까지 잘라먹는 게임을 했다. 지난 7일 방송에선 여야 의원들이 서로 볼을 맞대고 공중에 뜬 공을 잡는 게임을 벌였다.

정치인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도 전파를 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7월 말~8월 초 정봉주 전 의원, 손수조 새누리당 중앙미래세대위원장, 정은혜 민주당 전 부대변인, 천호선 정의당 대표,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공보 담당 금태섭 변호사, 차명진 전 새누리당 의원,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 전·현직 정치인 7명은 조지아(옛 그루지야)의 산악 지대에서 ‘최후의 권력-7인의 빅맨’ 촬영을 했다. 정치인판 <정글의 법칙> 격인 이 프로그램은 SBS가 창사특집 5부작 다큐멘터리로 기획한 것이다. 출연자들은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리더십에 대해 고찰하는 미션을 수행했다. 오는 11월 첫 방송될 예정이다.

정치인들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지난해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 캠프>에는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등 유력 대권주자들이 잇달아 출연하면서 정치인들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이 봇물을 이뤘다. 당시 <힐링캠프> 출연 기회를 얻지 못한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는 tvN <앵그리버스>에 출연했고, 김두관 후보와 정세균 후보도 같은 방송의 <스타특강쇼>와 에 각각 나왔다. 이들의 ‘예능 나들이’는 선거철을 겨냥한 1회성 출연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낯설지 않은 일이 됐을 뿐 아니라 아예 연예인화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강용석 변호사다. 그는 18대 한나라당 의원 시절 아나운서 지망 여대생에게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등 성희롱 발언을 해 물의를 빚자 탈당했다. 1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서울 마포을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이후 그는 tvN <강용석의 고소한 19>와 JTBC <썰전> 등에 고정출연하며 정치인보다 연예인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방송가를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공중파 방송은 아니지만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도 인터넷 팟캐스트 <나꼼수(나는 꼼수다)> 활동으로 현역 의원 시절을 훨씬 웃도는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 방송사 ‘시사+예능’ 전략과도 맞아떨어져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이 빈번해진 것은 정치권과 방송사의 욕구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인들 입장에선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고, 진솔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친근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민주당의 한 의원 보좌관은 “솔직히 우리 의원 같은 경우 지역구민들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며 “그런 자리가 있으면 어디든지 나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여의도 중심의 중앙 정치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정치인들의 방송 출연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희대 이택광 교수는 “중앙 정치가 ‘게토화’되다 보니 정치인들의 평가가 대중적 인기에 좌우되고, 스펙터클한 이벤트에 기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지역구 의원은 TV 출연을 통해 대중적 인기를 얻어 결국 다음 선거를 노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과 민주당 김영환 의원(오른쪽)이 JTBC <적과의 동침>에 출연해 상대의 입술이 닿을 정도로 과자를 잘라 먹는 ‘빼빼로 게임’을 하고 있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정치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건질 수 있는 ‘블루 오션’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종편 등 방송사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방송사는 정치인을 앞세워 특화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셈이다. 대중 역시 TV 예능 프로그램 속 정치인들에게서 인간적인 면모를 확인하고, 의외의 모습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성 정치판의 ‘적대와 공방’ 구도에 피곤해진 시청자들로선 정치인들의 일상적 습관과 취향, 실수, 자기비하적 농담 등을 통해 인간적인 공감과 재미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의 판도가 ‘리얼 버라이어티’(대본과 상관없이 일어나는 실제 상황을 주내용으로 만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시사를 가미한 프로그램 쪽으로 기울고 있는 흐름도 정치인들의 예능 출연을 재촉하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를 알기 쉽고 유쾌하게 풀어내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주는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우리 사회 전체가 ‘예능화’되고 있는 흐름에서 정치권도 이를 따라가고 있을 뿐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경향신문 칼럼에서 “힐링이니 교육이니 건강이니 교양은 물론 심지어 종교나 예술이나 학문까지도 모든 게 예능에 의하고 여야 정치인들까지 등장하여 야단법석이니 바야흐로 한국은 예능만능국”이라고 꼬집었다.

■ 대중과 직접 소통으로 친근함 보여주지만…

정치인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은 정치인이 대중과 직접 소통함으로써 정치인과 대중의 거리를 가깝게 한다는 게 장점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비판적 시각도 적지 않다. 당장 민주당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당 소속 의원들, 특히 당 지도부 의원까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옳은 일이냐는 지적이 비공개회의에서까지 제기됐다. <적과의 동침>이 녹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이 한창 천막당사를 치고 원내외 병행투쟁을 할 때 소속 의원들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간 것이다. 당 관계자는 “당은 서울광장에 천막 치고, 대표는 노숙투쟁을 하고 있는데 당 의원들은 예능에 출연해 웃고 떠들고 ‘빼빼로 게임’이나 하면 민주당의 진정성을 누가 믿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예능은 예능으로 봐달라”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일각에서 시기상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을 만나면 늘 싸우는 모습만 시청자들에게 보여진다. 그런 자리에서라도 서로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도 자신의 방송 출연이 당내에서 논란이 되자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권력을 주제로 한 비중 있는 창사 기획특집의 하나이고, 예능 프로그램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여러 번 고사했지만 주요 당직자들과 의논한 결과 당을 알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이미지 제고만 몰두, 정치 본연의 기능 실종 우려

방송사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인들을 대거 등장시키는 것이 ‘정치인과 국민의 소통’을 꾀한다는 당초 취지와 달리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얄팍한 행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상 출연자에 대한 ‘미화’는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이미지 정치’ 논란도 따라붙는다. ‘정치의 예능화’가 그저 눈앞의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방기할 위험성이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정치의 예능화’가 정치 무관심과 혐오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 냉소를 키우고, 정치의 진지함과 공공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치인의 예능 진출이 한국 정치의 실패를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기존 정당 정치가 행사해왔던 권위들이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정치인들이 TV 정치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진지한 정책보다는 이미지 제고를 노린 상업주의 전략만이 남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택광 교수는 “사회 전체가 예능화되고 있는데 대해 정치가 견제 역할을 못하고 오히려 편승하고 있다”며 “정치인들이 대중의 열망이나 요구에 관계없이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이벤트를 되풀이하는 것은 결국 정치의 존립 기반 자체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우 기자 jwkim@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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