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태풍이 휩쓸고 간 필리핀 중남부 레이테 섬의 주도 타클로반 공항 구내에서 에밀리 사갈리스(21)가 여아를 출산했다.© AFP=News1
파도에 떠내려간 조모 이름 따 베아트리스 조이로 명명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슈퍼태풍 '하이옌'이 추정 사망자 1만명이라는 끔찍한 상처를 남겼지만 새 생명은 어김없이 태어났다.
에밀리 사갈리스(21)가 하이옌이 휩쓸고 간 필리핀 중남부 레이테 섬의 주도 타클로반 공항 구내에서 "기적의 아이"를 출산했다고 AFP통신이 11일 보도했다.
여아는 태풍으로 아수라장으로 변한 공항 구내에 설치된 임시 의료시설에서 태어났다. 산모는 흙이 잔뜩 묻어있고 깨진 유리와 잔해더미가 널부러져 있는 곳에서 출산한 뒤 눈물을 터뜨렸다.
사갈리스는 출산 뒤 "아이가 너무나 예쁘다. 어머니 베아트리스를 생각하며 아이 이름을 베이트리스 조이로 짓겠다"고 밝혔다.
사갈리스는 자신의 모친은 타클로반 인근에 있는 집을 거대한 파도가 덮쳤을 때 휩쓸려 갔고, 이후 생사를 알지못한다고 말했다.
사랄리스는 "아이는 나의 기적이다. 높은 파도가 우리를 덮쳤을 때에 나는 뱃속의 아이와 함께 죽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기억을 떠올렸다.
사랄리스 옆에선 눈가에 눈물이 가득한 신랑 호베르트가 아이를 꽉 껴안고 있었다.
호베르트는 전일 파도가 처음 나무로 지어졌던 집을 덮쳤을 때에 가족들 모두가 밖으로 휩쓸려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마을 전체에 높은 파도가 덮쳐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마을이 일순간에 잔해 더미로 덮힌 폐허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오늘을 기념할 것이다. 하지만 또 죽은 자들을 애도할 것이다"고 심경을 전했다.
호베르트는 물이 잠잠해질 때까지 수 시간 동안 이리저리 휩쓸려가다가 학교 건물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이들 부부와 몇몇 생존자들은 잔해 더미에서 찾아낸 몇 병의 물만 가지고 이날 아침까지 버텼다. 하지만 아내의 출산이 임박했던 것을 알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그는 "새벽 5시에 진통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수킬로미터를 걸은 뒤에 가까스로 지나가던 트럭을 보고 태워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트럭을 타고 공항에 도착한 뒤 사갈리스는 얼마 안가 아기를 낳았다. 출산 소식에 공항 내 생존자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젊은 군의관은 "이런 곳에서 아기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아이는 건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장소가 불결하기 때문에 산모가 세균 감염이나 산욕 패혈증에 걸릴 수 있어 정맥항생제를 투약하고 싶지만 경구용 항생제조차 갖고 있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