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숨진 이서현양의 영정사진. 서현이를 추모해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의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서현이의 영정사진을 만들었고, 지난 11일 저녁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구영리 구영공원에서 49재를 열었다. 울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한겨레] [토요판] 커버스토리
4년간의 폭행과 단 한 번의 신고
울산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되짚다
이서현(8)양의 49재가 열린 12월11일 저녁, 울산시 울주군 범서읍 구영공원에는 눈이 내렸다. 눈발이 날리는 날카로운 바람에도 공원에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렸다. 지난 10월24일 ‘소풍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가 의붓어머니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해 갈비뼈 16개가 부러지며 숨진 서현이를 추모하기 위한 발걸음이었다. 아이가 하늘로 소풍간 기막힌 현실을 위로하듯, 하얀 눈은 그가 살던 동네와 추모하는 사람들을 훑고 만지고 있었다.
“서현이가 너무 불쌍해요.”
주민 박양애(48)씨의 손을 잡고 나온 딸 진현희(8)양은 동갑내기 서현이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오. 아이가 얼마나 아팠을까.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머리가 희끗한 안병주(62)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추모사가 낭독되기 시작했다.
“서현아. 너를 보내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헌화를 하는 손길은 두 시간이 넘게 끊이지 않았다. 모두가 헌화를 마치자, 하늘을 향해 입을 모았다. “서현아. 안녕.”
이서현 사건은 아동학대에 무관심했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 처음 나선 이는 ‘어머니들’이었다. 인터넷에 ‘하늘로 소풍간 아이를 위한 모임’이 만들어졌고, 한달 만에 회원수 1만명을 돌파했다. 회원들은 서현이의 친모와 함께 울산지방법원 앞에서 매일 1인시위를 진행했고, 피의자의 엄벌과 아동학대 특례법 제정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수만장 모았다. 시민들의 관심이 모이자 아동을 사망케 한 피의자가 이례적으로 ‘학대치사죄’가 아닌 ‘살인죄’로 기소됐고, 아동학대 신고의무자들의 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조사도 아동복지법 제정 13년 만에 처음 이뤄졌다. 민주당 남윤인순 의원과 세이브더칠드런, 굿네이버스 등 아동보호단체는 ‘진상조사와 제도개선 위원회’를 꾸렸다. 위원회는 ‘한국판 클림비 보고서’를 내년 초에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영국은 2000년 2월 몸에 128개의 상처를 남기고 사망한 9살 소녀 빅토리아 클림비의 죽음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정부와 의회가 조사단을 꾸려 보고서를 발간했고, 이를 바탕으로 아동법을 개정하고 아동보호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보고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이번 조사의 모든 과정에 마치 클림비가 참여한 것처럼 느껴졌다. 불행히도 그의 죽음을 되돌릴 순 없다. 하지만 다시는 비슷한 운명에 처하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
서현이는 우리에게 숙제를 남겼다. ‘저와 비슷한 운명에 처한 아이가 없도록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