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왼쪽·오른쪽)과 울산에 설치된 미술작품이나 조형물 등이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수난을 겪고 있다. 목 부러진 말(가운데)은 지난해 다시 정상적으로 설치됐다. 창원=박영수 기자
‘색소폰 속에 넣은, 먹다 버린 치킨’ ‘목이 없어진 말’ ‘전단지 부착대로 전락한 조형물’ 등등…. 지방자치단체가 거리와 공원에 설치한 건축 미술작품과 조형물 등 공공미술(Public Art) 작품이 수난을 겪고 있다.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과, 설치해 놓고 관리하지 않는 사후관리 미비가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뾰족한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 건축물 신·증축 때 설치된 미술작품은 전국에 1만4110여 개에 달한다. 지자체가 설치한 작품이 몇 개나 되는지 파악조차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관리부서도 제각각이다. 설치 후 작품 취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공공미술품의 관리 실태와 개선방향을 점검해 봤다.
지난 21일 찾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 용호동 문화의 거리. 시가 2012년 7월 설치한 ‘색소폰 부는 남자와 아이’라는 제목의 황금빛 조형물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색소폰 부는 남자는 누군가 스티커를 붙였다가 떼내면서 긁었는지 이마와 오른쪽 눈의 칠이 흉하게 벗겨져 있었다. 색소폰 안에는 먹다 버린 치킨이 들어 있었고 팔꿈치에는 이쑤시개가 놓여 있었다. 조형물 설치 당시 아이의 손에 들려 있었던 사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자리엔 구멍만 남아 있었다.
울산 동구가 2012년부터 남목동 일대에 설치한 말 조형물도 마찬가지다. 동구는 남목동에 조선시대 국가 방어용 말을 키운 남목마성이 있었던 점에 착안, 말 조형물 5개를 이 거리 곳곳에 설치했다. 하지만 이들 말 조형물이 사람들에 의해 훼손이 잇따르자 동구청은 지난해 5월 남목삼거리와 남목 12계단길에 설치된 말 조형물 2개를 아예 철거했다. 남아 있는 3개도 목이 잘려 나가거나 귀·갈기 부분의 훼손이 잇따라 동구청이 수시로 보수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옥류로 노거수쉼터에 있는 말 조형물은 지금도 귀 부분이 깨진 채 전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화예술진흥법에 따라 건축물 신·증축 때 의무적으로 설치한 미술작품도 관리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창원시 용호동 문화의거리 한 상가 입구에 설치된 조형물은 바로 옆에 쓰레기장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또 다른 상가 조형물 받침대에는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어떤 것은 작품 일부가 깨져 있었다.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 한 대형상가 1층 입구에 세워져 있던 1억6300여만 원짜리 대형 청동 조형물은 상가 대표단이 지난해 7월 무단 철거해 버렸다. 청동은 고물상에 팔렸고 화강석 받침대만 주차장에 쌓여 있다. 조형물이 서 있던 자리는 유명 커피전문점의 테라스로 변했다. 건물관리인은 “개인 것이면 가꾸고 닦고 할 텐데 공공시설물이어서 방치하다 보니 쓰레기가 쌓이고 빗물이 고이는 등 관리가 안 됐다”며 “흉물스럽게 변해 상가대표단 회의에서 철거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창원시는 이 상가에 원상복구 공문을 보냈지만 법령상 처벌조항이 없어 강력한 행정제재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012년 실시한 경기 안양과 제주 지역에 설치된 건축물 미술작품 실태조사 결과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안양시 동안양 보건소에 1995년 설치된 모자상의 경우 청동 주물 후 도색된 작품인데 오랫동안 야외에 노출돼 타르와 얼룩 등으로 오염됐고 스티커 부착 등 인위적인 손상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양시 평촌 중앙공원에 설치된 쇠똥구리 작품 역시 청동녹, 스티커, 껌이 부착돼 있는 등 손상됐다. 제주 서귀포의 한 호텔에 있는 호피 장막도 유화는 작품이 긁혔고 앞에는 수납대를 놓아 3분의 1 정도 작품을 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건축물 미술작품설치제도는 연면적 1만㎡ 이상 신·증축하는 일정 용도의 건축물에 건축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1% 이하의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함)을 회화, 조각, 공예 등 미술작품 설치에 사용하거나 직접 설치비용의 일정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출연하도록 하는 제도다. 2011년 관계법령 개정에 따라 이전의 건축물 ‘미술장식’이 ‘미술작품’으로 대체됐으며 건축주가 작품을 직접 설치하지 않고 문화예술진흥기금으로 납부할 수 있는 ‘선택적 기금제’가 도입됐다. 그러나 사후관리에 대한 규정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아 방치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부산시는 2010년부터 매년 문화체육관광부에 의무위반 사항에 대해 법적 강행규정 신설을 건의했다.
이처럼 공공미술작품은 시민들이 문화를 향유할 수 있게 설치됐으나 부식 또는 오염됐고 시민의식 부족 등으로 스티커, 껌 등이 나붙어 오히려 흉물로 방치된 경우가 많아 사후관리를 위한 정비·복원 시스템 도입 등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2011년부터 공공미술포털을 만들어 전국 설치작품을 등록하는 등 관리를 시작했지만 사후관리 및 파손 철거 등 규정이 미비하다”며 “기금이 쌓이면 사후관리에 지원하거나 공공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지역 작품에 대한 조사와 정비·복원을 지원하도록 하는 등 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원=박영수 기자 buntle@munhwa.com,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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